영화 ‘블랙머니’에 검찰은 억울했다…16년만의 론스타 반전

중앙일보

입력 2022.09.0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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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국제소송 판정이 나온 가운데 16년 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매각 과정을 두고 진행됐던 검찰 수사가 재조명되고 있다. 외환은행 매각을 지연시켰다는 이유로 한국 정부가 물어줄 배상금액을 론스타가 요구한 6조 1000억원에서 이자까지 3000억원가량으로 낮추는 데 검찰 수사가 결과적으로 도움을 줬기 때문이다.

2006년 12월 7일 당시 채동욱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획관이 ‘론스타 사건’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 첫 번째가 윤석열 당시 중수부 연구관(현 대통령). 강정현 기자

2006년 12월 7일 당시 채동욱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획관이 ‘론스타 사건’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 첫 번째가 윤석열 당시 중수부 연구관(현 대통령). 강정현 기자

2019년 블랙머니 감독 “검찰 수사 성의 없었다”

중재판정이 나오기 전까지 검찰의 론스타 수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검찰의 미진한 수사로 법원이 무죄를 선고, 결국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인수와 매각에 따른 수조원의 ‘먹튀’를 막지 못했다는 게 비판의 핵심 논리다.

이 같은 비판은 2019년 11월 개봉한 영화 ‘블랙머니’ 등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극중에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론스타 수사를 펼치긴 했지만, ‘모피아(재정경제부 마피아)’들의 외압 끝에 중앙수사부장이 차기 검찰총장 자리를 받는 조건으로 수사를 무마했다고 나온다. 이 영화를 만든 정지영 감독은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론스타 수사에서) 검찰이 수사 성의가 없었던 걸로 본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 ‘블랙머니’ 포스터.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블랙머니’ 포스터.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당시 검찰에선 “현실을 왜곡했다”라며 반발하는 목소리가 컸다. 실제 2006년 대검 중수부의 수사는 네 갈래(외환은행 헐값 매각 및 비자금 조성, 론스타 탈세, 외환카드 주가조작)로 강도 높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월스트리트저널·뉴욕타임스 등 영미권 언론들은 일제히 “마녀사냥” 등의 표현을 쓰며 비판했고, 검찰이 이에 맞서 항의문을 보내기도 했다.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매각한 노무현 정부 역시 검찰 수사를 반기지 않았다.

유회원 전 대표 구속영장 네 번 기각…法·檢 갈등 비화도 

또한 검찰이 유회원 전 론스타 코리아 대표에 대해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영장을 네 차례 청구했다가 법원에 기각됐는데, 이 과정에서 검찰이 항의의 의미로 영장 내용을 한 글자도 고치지 않은 채 재청구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법원은 “증권거래법을 위반했다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다하더라도 구속 사유가 없다. 주거가 일정해 도주 우려가 없고 검찰이 많은 증거를 확보해 증거인멸 우려도 없다”라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4차례 영장 기각에 이어 준항고·재항고까지 기각되자 검찰은 “법원이 수사를 방해하는 게 아니냐”라는 의혹도 제기했었다.

유 전 대표는 결국 론스타가 외환카드를 헐값에 인수하도록 ‘허위 감자(減資)설’을 퍼뜨려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주가조작 재판도 유·무죄가 뒤집히며 롤러코스터를 탔다. 유 전 대표는 2008년 2월 1심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가 4개월 뒤 항소심에선 무죄로 풀려났다. 2011년 3월 안대희 당시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상고심에서 유죄로 다시 파기환송해 결국 6년 만인 2012년 2월 징역 3년형을 확정받았다. 론스타 펀드도 벌금 250억원으로 유죄가 확정됐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과 관련해선 당시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과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이 배임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다만 두 명은 “배임의 고의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헐값 매각과 관련해선 1·2·3심 모두 무죄를 받았다. 이 전 행장이 론스타와 별개로 납품업체로부터 5억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받았을 뿐이다.

특히 핵심 쟁점인 외환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조작을 인정하지 않은 건 이후로도 계속 논란이 됐다. 외환은행 부실을 과장한 BIS 비율이 론스타에 인수자격을 부여한 예외승인의 근거였기 때문이다.

당시 법원은 “최종 BIS 비율 전망치 6.16% 산출에는 대손충당금 542억원 중복 산정 등 부적절한 잘못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면서도 “경영상황 악화를 이유로 한 예외승인을 통해 론스타에게 위법·부당한 방법에 의하여 인수자격을 부여해 주기 위한 배임의 의사에서 이루어진 행위라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했다. 또 “그와 같은 수치가 나올 가능성이 전혀 없음에도 가능한 것처럼 꾸며 만들어졌다고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소위 ‘조작’되었다고까지 평가할 수는 없다”라고 결론내렸다.

이런 복잡한 현실은 영화의 파급력과 개봉 당시 문재인 정부의 대대적인 검찰 개혁 추진 아래 잊혀졌다.

론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8월 31일 법무부에서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판정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론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8월 31일 법무부에서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판정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가조작 유죄’ 10년 뒤…ICSID 론스타 과실 50% 인정

그러다 지난달 31일 과거 수사가 다시 주목 받았다.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중재 판정부가 “한국 정부는 론스타에 외환은행 매각 지연에 따른 손해 2억1650만 달러(약 2855억원)과 이자(185억원)를 배상하라”고 선고하면서다. 결과적으로 검찰 수사 등 덕분에 론스타가 요구한 배상액 6조 1000억원 가운데 4.6%만 인정했다는 취지였다.

중재 판정부는 금융위원회가 하나은행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을 지연해 매각가격이 낮아진 것을 두고 “공정·공평 대우 의무에 위반한다”라면서도 “당시 론스타가 외환카드 주가조작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이 때문에 외환은행의 주가가 낮아졌다”라고 론스타 측에 50% 과실상계 책임을 물었다. 매각가격 하락폭 4억 3300만 달러의 절반인 2억 1650만 달러만 배상액을 인정한 이유다. 주가조작 수사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이동열 법무법인 로백스 대표변호사가 주도했다.

한국 정부 대리인 중 한 명은 “론스타 주가조작뿐만 아니라 본안인 외환은행의 헐값 인수 의혹이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면 이번 투자분쟁에서 한국 정부가 전부 승소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 장관은 이번 중재 판정을 두고 “론스타 청구보다 많이 감액됐지만 수용하기 어렵다”며 120일 안에 ICSID에 판정 취소를 신청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1일 국회에서 중재 판정 취소 인용률이 10%에 불과하단 지적에 “최선을 다해 볼 것이고, 내부적인 판단으로는 충분히 저희에게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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