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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수출 긴급 진단] 대중 무역적자 고착화 막으려면, 기술 아닌 혁신경쟁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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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4호 09면

SPECIAL REPORT

5월 코로나19로 인한 부분 봉쇄로 인적이 끊겨 한적한 중국 상하이 예원 일대 거리. [연합뉴스]

5월 코로나19로 인한 부분 봉쇄로 인적이 끊겨 한적한 중국 상하이 예원 일대 거리. [연합뉴스]

한·중 관계는 태생적으로 서로 다른 정치 시스템 속에서 경제적인 상호협력과 발전으로 지난 30년을 버텨왔다. 1992년 수교 당시 양국의 교역 규모는 64억 달러 정도였으나 지난해에는 3015억 달러를 넘어섰다. 약 47배 증가한 것이다. 특히 한국의 대(對)중 수출은 1992년 10억 달러에서 2021년 1629억 달러로 162배 급성장했다.

그러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이슈와 미·중 간 신냉전이라는 외생변수, 정치·사회·문화적 차이로 인한 상호불신이라는 내생변수까지 가중되면서 양국 간 경제협력의 기반도 흔들리고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는 글로벌 경기 둔화와 공급망 붕괴로 인한 물가 상승, 중국경제 둔화까지 겹치면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최근 4개월간 이어진 대중 무역적자는 한국경제 성장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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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무역적자가 일시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이런 추세가 고착화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매우 뜨겁다. 일단 최근의 무역수지 적자는 대내외적 악조건이 중첩돼 나타난 단기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상반기 상하이·광저우·선전 등 중국의 핵심 거점도시가 코로나19로 봉쇄되면서 중국경제 성장이 둔화했기 때문이다. 중국 내 생산·수요의 감소한 데다 글로벌 공급망 차질로 중국산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면서 대중 수입액이 늘어난 것이다.

교역 품목 5448개 중 70.4%가 적자

그런데 문제는 지난 4개월이 아니다. 대중 무역적자 시그널이 한·중 양국 간 교역 생태계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상반기 대중 교역 품목 5448개 가운데 적자 품목 수는 3835개로 70.4%에 이른다. 이는 단기적인 요인이 해소되더라도 한·중 교역 패턴과 구조의 변화가 향후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원인과 배경은 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첫째, 중국이 빠르게 노동집약형 산업에서 벗어나면서 과거 한·중 간 가공무역 형태의 교역이 축소되고 있다. 중국 내 우리 제조공장이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로 이전하면서 과거 중국투자공장과 한국법인 간 무역거래가 감소해 전체적인 한·중 거래 규모가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대중 수출은 원자재와 자본재 등 중간재가 88%를 차지한다. 소재·부품·장비 등 중간재 중심의 가공단계별 수출의 하락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 중국의 대한 수입 증가율 통계를 보면 지난해 한국으로부터 수입한 중간재 증가율은 2017년 대비 21.7% 하락했다.

둘째, 중국 국산화 전략의 중장기 마스터플랜인 ‘차이나밸류체인(CVC)’이 더욱 고도화되면서 컴퓨터와 같은 한국의 정밀기기나 정밀화학 등 고부가가치 산업의 대중 수출은 더욱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CVC 전략은 시기별로 크게 5단계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3단계(2015~2025년)를 기점으로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추세다. 중국의 CVC 전략 고도화에 따른 조선·철강·화학·디스플레이 등 우리의 대중 10대 수출 품목이 점차 중국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이 역시 이미 통계로 확인할 수 있다. 컴퓨터·통신장비·전자부품 등 정보통신 제품의 수출 비중은 2017년 20.5%에서 2021년 17.9%로 감소했다.

셋째, 중국산 중간재·자본재에 대한 수입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가격·기술 경쟁력을 중국산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제품이 한국으로 역(逆)수출되고, 반대로 대중 수출은 빠르게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특히 중국의 빅데이터·AI·사물인터넷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에 기반한 ‘메이드인 차이넷(Chinet)’ 소비재·중간재의 진격이 더욱 빨라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무역적자 구도가 더욱 고작화할 수 있는데, 최근 중국 기업의 한국 투자가 늘고 있는 것이 이 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나 한·유럽연합(EU) FTA,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을 통해 세계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인 중국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중국의 산업고도화와 미·중 간 첨단기술 탈(脫)통조화로 앞으로 한·중 간 교역구조는 협력과 경쟁 메커니즘이 혼재되면서 빠르게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우리 정부와 기업 차원의 철저한 대응과 준비가 필요해 보인다. 무엇보다 대내외 변수와 불확실성이 혼합돼 있어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크게 3가지의 정책 방향을 고려할 수 있다. 우선 기존의 공급사슬(supply chain) 구조의 교역 패턴을 점차 가치사슬(value chain)과 산업사슬(Industry chain)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한·중 공급망 협력 강화 노력도 절실

공급사슬은 제조 기업 입장에서 ‘어떻게 공급 원가를 절감할 것인가’하는 관점이다. 과거 우리 기업은 생산비 절감 차원에서 중국을 활용해 왔고, 이에 따라 우리의 대중 수출도 함께 성장했다. 그러나 중국이 노동집약형 산업에서 탈피하고 있는 만큼 우리는 부가가치가 높은 영역으로 선택과 집중하고, 정부 차원의 일관된 방향성과 촘촘한 기업 지원이 수반돼야 한다. 이와 함께 미래성장산업 분야의 경우 양국 간 공급망 구조가 쌍방향이 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 다음으로는 미·중 간 냉전 심화에 따른 경제적 나비효과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반도체·희토류 등 전략 물자를 넘어 점차 그 영역이 확대되면서 우리 기업들은 미국의 가치 규범과 중국의 시장 실용주의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이 반도체에 이어 정보통신 기술이나 석유 등 에너지 분야의 공급망 복원 작업에 본격 나서면 그 만큼 대중 수출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향후 미·중 간 치열한 대립 구도는 한·중 관계를 벼랑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높다. 필자가 최근 미국에서 만난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미·중 간 충돌이 심화할수록 한·중 간 경제 협력의 공간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마지막으로 ‘기술경쟁’이 아니라 ‘혁신경쟁’으로 초격차 유지 전략을 견지해야 한다. 향후 한·중 간 산업구도는 협력보다 경쟁 프레임이 더욱 강하게 나타날 것이다. 자금력과 인적자원에서 우리보다 앞서 있는 중국과 단순히 기술로 경쟁하는 것은 버거울 수 있다. 창조적이고 유연한 혁신 경쟁력 제고를 위해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향후 우리의 대중 수출 하락, 중국산 제품 수입 증가는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 혁신 경쟁력은 다른 게 아니다. 규제를 풀어 기업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이후 정부는 소방용 재난 로봇 연구를 진행했다. 성공적으로 모든 연구를 완료했지만 2021년 7월 쿠팡 물류창고 화재사고, 2022년 1월 평택물류창고 화재 때 재난 로봇을 화재 현장에 투입하지도 못했다. 관련 규제를 함께 풀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수백여 건에 이르는 관련 규정을 고치려다 보니 이해 당사자의 반대가 심했기 때문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규정과 제도를 바꾸어야 하고 규제도 풀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우리의 정책이 현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코로나19로 멈춰 있던 한·중 경제장관회의가 2년 만에 열렸다. 한·중 양국 간 공급망 협력 강화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향후 공급망 이슈를 논의할 국장급 조정 협의체를 신설하기로 했다. 막혀 있는 정부 및 민간 차원의 경제협력 소통채널 복원을 통해 양국 간 개방형 공급망 협력을 더욱 강화하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수출 및 수입 다변화는 단시일 내 실현할 수 없다는 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정부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박승찬 ㈔중국경영연구소장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 주중국 대사관 경제통상전문관 및 중소벤처기업지원센터 소장을 역임했다. 미국 듀크대 방문학자와 함께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미주리 주립대학에서 ‘미·중 기술패권’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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