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꾼 정원에 이름난 꽃 많듯, 존재 알아줄 때 성과 만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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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4호 16면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서광원 칼럼

서광원 칼럼

무릇 모든 이름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그렇게 부르는 이유가 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물푸레나무라는 이름도 그렇다. 사람들은 대체로 이 나무가 물가에 살 거라고 생각한다. ‘물’이라는 음절이 주는 이미지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물’은 물가에 살아서 붙은 게 아니다. 잎이 달린 가지를 물에 넣으면 물이 푸르게 변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물가에도 살지만 산등성이에서도 자주 볼 정도이니 이름에서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르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들은 일화가 있다. 소설가 문순태씨가 소설가 지망생이던 시절, 자신이 쓴 글을 원로 소설가 김동리 선생에게 보여 드리곤 했는데, 언젠가 애써 쓴 원고를 가져갔더니 그걸 읽다가 홱 던져버리더라는 것이다.

“이름 모를 꽃이 어디 있어? 네가 모른다고 이름 모를 꽃이냐!”

소설 속의 ‘마을에 들어서자 이름 모를 꽃들이 반겼다’는 표현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그런 세상의 속성을 깊숙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작가라면 모름지기 제대로 알고 써야 하고, 모르면 알아보고 써야지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쓰면 안 된다는 말이었다. 『사하촌』으로 유명한 작가 김정한도 누군가 ‘이름 모를 꽃’이라고 하면 아프게 한마디씩 했다고 한다. 김동리는 순수문학, 김정한은 참여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인데 비슷한 일화를 남긴 걸 보면 소설의 본질에 충실 하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하긴 시인 김소월이 ‘영변의 약산/ 이름 모를 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우리가 다 아는 시가 되기는커녕 그야말로 ‘이름 모를 시’가 되었을 것이다. 이름이 없으면 이미지 역시 막연하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그래서 시인 김춘수는 ‘꽃’이라는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을 것이고.

언젠가 만난 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항상 주머니 속에 작은 쪽지 같은 걸 넣고 다녔다. 그런 다음, 자투리 시간에 그걸 꺼내서 보곤 했다. 우연히 그 모습을 보고 물었더니 회사 직원들 이름과 사진이라며 700명쯤 되는 직원들 이름과 모습을 외우는 중이라고 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했더니 이런 얘기를 했다.

“제가 대리 시절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새로 온 사장님이 순시를 나왔길래 또 바람처럼 지나가겠지 했죠.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서 있는데 글쎄, 사장님이 제 이름을 부르는 겁니다. ‘아, OOO 대리, 몇 달 전에 그 뭐더라, OO 관련 아이디어를 제출한 그 주인공이구만!’ 이러시는 거예요. 세상에, 사장님이 제 이름과 제가 뭘 했는지 알고 있다니! 이럴 수도 있구나 싶었어요. 줄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제가 다음날부터 어떻게 했겠습니까? 사장님 눈에 또 띄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숱한 밤을 새웠죠. 덕분에 사내 제안왕이 되기도 했고요. 지금의 저를 만든 겁니다. 물론 이제는 알죠. 현장을 방문할 땐 미리 인사 기록 카드를 보면서 외운다는 걸. 그리고 지나면 다 잊어버린다는 걸. 하지만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기우는 게 사람이잖아요.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자신을 알아준다는 게 어떤 건지 알거든요. 사람 마음 다 똑 같은 거 아닙니까?”

세상은 참 많이, 그리고 빠르게 변하지만 이런 정성은 언제나 공감을 받는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런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외부 파견을 자주 나가던 한 회사의 차장이 어느 날 CEO를 만났다. 부임한 지 두 달쯤 된 CEO가 점심을 사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식당에 나타난 CEO가 그동안 이런저런 일로 안면이 있는 과장들을 알아보며 반가워하면서도 정작 그 위인 차장을 쓱 지나쳤던 것이다. 파견 근무 때문에 얼굴을 익히지 못했던 것이다. 옆에 있던 한 과장이 얼른 소개를 했지만 지나간 반가움은 돌아오지 않았다. CEO는 “아, 그래?”하면서 눈길 한 번 던지더니 그대로 자기가 하던 말을 이어갔다. 몇 달 후 이 차장은 회사를 옮겼다.

“딱 내동댕이쳐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회사에 있고 싶지 않았어요. 남들이 하고 싶어 하지 않는 파견 근무까지 후배들 내보내지 않으며 일했는데 인정해주기는커녕 내부에 있는 사람을 더 알아주는 회사에 왜 있어야합니까?”

거친 들판일수록 이름 모를 꽃이 많고, 잘 가꾼 정원일수록 이름난 꽃들이 많듯 좋은 조직과 나쁜 조직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이름을 알아준다는 건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존재와 능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면 조직에는 아름다운 꽃(성과)이 만발한다.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왜 이름 대신 번호로 부르는가. 죄를 지었으니 존재를 온당하게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세상이 무섭게 변하면서 조직 역시 갈수록 파편화되어 가고 있다. 깜박 지나치는 곳에 ‘이름 모를 꽃’이 있지 않는지 잘 살필 필요가 있다. 화단에 있는 어떤 꽃이 언제 어떻게 꽃을 피우는지 모르는 정원사는 제대로 된 정원사가 아니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araseo11@naver.com 경향신문과 중앙일보 이코노미스트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2005년부터 자연의 생존 전략을 연구하며 지속 가능한 생명력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지를 탐구하고 있다.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등의 책을 냈고,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지식탐정의 호시탐탐’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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