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땅 속 물 관리 ‘구멍’나 싱크홀 생겨, 땜질 처방 땐 대참사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04호 24면

인문학자의 과학 탐미

11년 만에 장만한 집이 500m 싱크홀 속으로 추락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한국영화 ‘싱크홀’(2021)의 한 장면. [사진 쇼박스]

11년 만에 장만한 집이 500m 싱크홀 속으로 추락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한국영화 ‘싱크홀’(2021)의 한 장면. [사진 쇼박스]

영화 ‘싱크홀’(2021)에서 5층짜리 빌라 한 채가 도심에서 통째로 땅속에 꺼져버린다. 주인공 ‘동원’은 11년 만에 서울에 있는 이 주택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대출이 한 몫 든든히 했다. 그런데 이사한 첫날 그 집에서 이상 징후들이 보였다. 아들의 유리구슬이 한쪽으로 계속 구르는가 싶더니 창문은 뒤틀려 열고 닫기가 영 불편했다. 건물과 길가에는 수많은 균열들이 실핏줄 내돋치듯 목격됐다.

불안감에 빠진 ‘동원’은 구청에 안전검사를 요청한다. 구청에서는 하자보수에 대한 입주자들의 동의를 얻어야 안전검사를 할 수 있단다. ‘동원’은 회의를 열어 건물이 기울고 있다고 설명한 뒤 의견을 모아달라고 한다. 집집마다 더 많은 징후들을 들으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전부터 살았던 주민들은 시큰둥하다. 이상 징후에 무관심한 거주자들의 심리 상태를 추측할 수 있는 대사가 이어진다. “우리 집은 괜찮지? 괜히 하자 문제 소문나면 집값만 떨어져요.”

한 사람만 자신의 집 창문이 뻑뻑하다고 눈치 보며 말할 뿐 다들 건물의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미 폭우가 쏟아진 밤에 빌라 입구에 있는 유리문에 금이 갔고 그 유리문이 산산조각 나는 사고도 있었지만 건물이 기운다는 것과 연관시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빌라 한 채가 싱크홀에 빠지는 대참사가 발생한다.

그런데 최근 픽션으로만 여겼던 이런 일이 현실에서도 벌어지는 것은 아닐지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8일 있었던 폭우 이후 강원도에서 편의점이 땅으로 갑작스럽게 기울어지는 뉴스 보도에 이어 서울 주택가와 학교 운동장에서 지반이 무너져 내렸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이번의 많은 비가 지하에 흘러들면서 우리가 서 있는 땅 아래선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큰 사고로 이어지는 ‘하인리히 법칙’

싱크홀(Sink Hole)은 원래 지하수의 영향을 많이 받는 석회암 지대에서 자주 발생한다. 석회암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지하수에 의해 오랜 세월 용해되면 수많은 구멍이 생긴다. 이와 같은 석회암층을 카르스트 지형이라고 하는데, 전 세계 육지의 20%에 해당한다. 카스트 지형은 시간이 지나면서 빈 공간이 형성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석회암 동굴이 바로 그 공간이다.

지하에 텅 비어 있던 석회암 동굴은 위쪽에서 누르는 지층들의 압력을 견디어 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더 이상 감당치 못하고 무너지고 만다. 그러면 연쇄적으로 지층들이 가라앉으면서 지표면이 붕괴되는데, 이것이 바로 싱크홀이다. 이밖에도 지진과 같은 지각 변동, 그리고 한파·폭염과 같은 기후 변화를 겪으면서 지하수의 흐름이 바뀌어도 싱크홀이 일어난다.

하지만 최근 국내에서 문제가 되는 ‘땅꺼짐’ 현상은 이것과는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지질의 경우 석회암으로 되어 있는 강원도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기반암이 화강암과 편마암이다. 분명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싱크홀은 위에서 말한 자연적인 싱크홀과는 다른 현상이다. 그렇다면 어떤 용어를 사용해야 할까. 국토교통부는 2022년 1월 28일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이하 ‘지하안전법’) 시행에 따라 “지하개발 또는 지하시설물의 이용·관리 중에 주변 지반이 내려앉는 현상”을 지반침하로 정하고 있다. ‘지반침하’나 ‘지반함몰’은 일반적으로 지반이 각종 원인에 의해 침하하는 모든 현상을 포괄하는 것으로 그 까닭을 살피자면 자연적 요인 외에도 인위적 요인이 있다. 하지만 이 법령에서는 ‘싱크홀’을 자연적 땅꺼짐으로, ‘지반침하’를 인위적 땅꺼짐으로 구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싱크홀을 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하는데 자연적·인위적 땅꺼짐에 대해서 모두 싱크홀이라 부르는 것에 익숙하다. 이런 사실은 2018년 국토교통부가 싱크홀 발생 기준을 “면적 1m² 이상 또는 깊이 1m 이상이거나 이로 인한 사망·실종·부상자가 발생한 경우”라고 밝혔던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최근 국내에서 발생하는 싱크홀은 자연적 요인보다는 인위적 요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나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인 도심을 중심으로 지반이 침하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반침하의 발생 요인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자면 지하수 때문에 생기는 토양의 지지력 상실, 지하에 존재하는 동공, 지하수의 수위 및 흐름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지난 8월 3일 강원 양양군 낙산해수욕장 인근 신축공사 현장 근처에서 대형 싱크홀이 생겨 주변 편의점 건물이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지난 8월 3일 강원 양양군 낙산해수욕장 인근 신축공사 현장 근처에서 대형 싱크홀이 생겨 주변 편의점 건물이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첫째, 지하의 토양이나 암석은 물의 영향을 받으면 지반침하를 일으키게 된다. 국회입법조사처의 ‘도심지 지반침하의 원인과 대책’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7년~2021년 6월) 전국에서 지반침하가 1176건 발생했고 그중 절반을 넘는 635건이 상하수관로 노후화가 원인이었다. 구체적인 과정을 살피면 낡은 상하수도관로의 연결부가 헐거워지거나 균열이 생기면 구멍이 뚫리는데 그때 누수가 일어나면서 관로 주위의 흙에 물이 유입된다. 토양은 고체입자와 그 사이에 있는 지하수로 성분이 구성돼 있다. 이 토양에 물이 흡수될 때마다 고체 입자는 지지력, 즉 유효응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면 관로는 하중을 견디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지표면 위 무거운 구조물에 의해 관이 결국 부서지면서 지반 자체가 무너져 내린다.

둘째, 지하의 빈 공간이 지반침하의 요인이 된다. 건설·토목공사가 진행되면서 지하 터파기 및 퍼올리기(양수) 등으로 지하수위가 낮아지면 지하 수량을 맞추기 위해 다른 곳의 지하수가 그곳으로 급격하게 흐르게 되고 지하수가 있던 다른 곳에는 빈 공간이 생기게 된다. 결국 지층들이 연쇄적으로 지하 동공으로 무너져 내리면서 급기야 지표면이 내려앉는다.

셋째, 위에서 잠깐 언급한 지하수위 변화가 지반침하를 일으킨다. 지하수위 저하 때문에 생기는 지하수의 흐름은 지하 물길을 다른 곳으로 돌릴 경우나 지하수를 지나치게 많이 빼낼 때 격렬해진다. 예를 들어, 저수지를 만들거나 땅과 하천 따위의 수로를 바꾸고, 강이나 바다를 흙으로 메꾸어 토지를 개발하며 육지와 바다에 터널을 뚫는 것, 그리고 생수 판매를 위한 지하수의 과잉양수 등이 지하수 흐름에 변화를 가져온다.

다량의 지하수를 정도 이상으로 끌어올리면 우물의 원천수가 있는 대수층(帶水層)의 성분이 바뀐다. 원래 지하수를 다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대수층은 오랜 세월동안 눈과 비를 흡수하면서 저장소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인간의 물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지하수가 과다하게 끌어올려져서 대수층은 지하수 고갈 문제를 심각하게 겪고 있다. 해안 가까이 있는 대수층은 이런 경우 해수로 채워지기도 한다.

지반침하 관련 지침·감독기관 제각각

그런데 만일 대수층에서 지하수가 자체적으로 충전되는 속도보다 양수되는 속도가 빠르다면 토양이나 암석의 유효응력은 크게 상실되어 그동안 감당했던 지하의 압력을 대수층이 전부 받게 된다. 곧 땅속 지층이 연쇄적으로 가라앉으면서 싱크홀이 발생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싱크홀의 위험은 지하수의 수량이 적어지고 수위가 낮아질수록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지하수는 무한정 끌어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위와 수량, 그 흐름 등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그래서 환경부는 ‘지하수법’ 제13조 3항에서 “지하수의 수위 저하, 수질오염 또는 지반침하 등 명백한 위험을 가져오는 행위”를 “지하수보전구역에서의 행위 제한”으로 정하고 있다.

국내에선 지금 지반침하와 관련된 징후들과 사고들이 계속되고 있다. 이상 징후들과 경미한 사고, 그리고 큰 사고의 상관관계를 통계적으로 분석한 사람이 있다.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는 산업재해의 예들을 분석하다가 1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큰 사고는, 그 전에 동일 원인으로 경상자 29명, 부상을 입을 뻔한 300명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을 그는 ‘1:29:300의 법칙’이라고 했다. 우리는 흔히 그의 이름을 따서 ‘하인리히 법칙’이라고 한다. 마치 영화 ‘싱크홀’에서 건물이 기우는 징후들과 커다란 유리문이 깨지는 사고가 이어지는 것처럼 대참사는 우연히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300번의 이상 징후들과 29번의 소규모 사고들 속에서 일어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징후들은 대참사를 막을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그 기회를 만들기 위해 여기저기 작은 지반침하가 생길 때마다 흙으로 그저 매우고 아스팔트로 덮는 땜질 처방보다는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지반침하와 관련된 법령만 보아도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지하수법’ ‘초고층 및 지하 연계 복합건축물 재난관리에 관한 특별법’ ‘지하공공보도시설의 결정·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 ‘도시철도법’ 등 많은 지침이 있는데, 그 강조점이 다를 뿐만 아니라 관할 감독기관도 제각각이다. 사건이 터졌을 때 책임을 전가하게 될까봐 우려가 앞선다.

이번 폭우로 우리 땅속 지하수는 어떻게 흘러가고 또 그 수위는 어떻게 바뀌었는지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모른다. 지반침하의 위험성이나 발생 규모만 자극적으로 알려지기보다 그 원인이나 대처 방안 등이 중점적으로 관리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그것을 위해서 시·군·청의 지방자치 단체에서만이 아니라 중앙정부가 나서서 발생 사건들의 연관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대책을 세워야 할 때다.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한 번의 대형 사고가 터지기 전에 동일 원인으로 발생하는 300번의 이상 징후와 29번의 사고가 있다. 우리는 이상 징후들, 그리고 관련 사건들을 종합하고 있을까? 영화 ‘싱크홀’에서처럼 자신들의 이득(집값)만을 위해 산다면 이번에도 눈 가리기식 처방의 유혹에서 벗어나기가 힘들 것 같다. 설령 그런 눈가림으로 우리 당대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결국 우리 후손들에게 끔찍한 싱크홀이 발생할 것이다. 자,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29번의 사소한 사고들과 별 관심 없었던 300번의 이상 징후들을 헤아려 보자. 

김동훈 인문학자, 서양고전학자·철학자.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희랍과 로마문학 및 수사학, 철학을 공부했다. 희랍어와 라틴어 및 고전과 인문학을 가르친다. 인문학의 서사를 담아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퓨라파케’ 대표. 『인공지능과 흙』 『브랜드 인문학』 『키워드 필로소피』  『별별명언』  등을 썼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