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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3%의 소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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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4호 30면

박신홍 정치에디터

박신홍 정치에디터

밥상 민심이 심상찮다. “장보기가 두렵다”는 원성은 이미 구문이고 최근엔 ‘상추’가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동네를 다 돌아다녔는데 상추를 파는 가게가 딱 한 곳이더라. 그나마 너무 비싸 살 엄두도 못 냈다” “식당에서 보쌈을 시켰는데 상추는 ‘금상추’라며 리필해줄 수 없다더라”는 경험담도 잇따르고 있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상추 가격은 올 들어 131%나 뛰었다. 배춧값은 52%, 시금치값은 무려 356% 급등했다. 그러다 보니 올 추석 차례상 비용도 31만8045원으로 사상 처음 30만원을 넘어섰다. “그러잖아도 얇아진 지갑 사정에 차례상에 올릴 음식마저 차례차례 줄여야 할 지경”이란 탄식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요즘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밥상 물가에 대한 주부들의 불만과 불안감이 날로 커가고 있음에도 난관을 헤쳐 나가려는 정부 관료들의 모습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서는 최근 공직 사회 내부에 “지금은 납작 엎드려 있는 게 상책”이라며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팽배한 데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잖다. 어차피 경제 위기 등 국내외 환경이 워낙 좋지 않은 상황에서 괜히 열심히 일했다가 성과가 나지 않으면 모든 책임을 다 뒤집어쓰기 십상이니 ‘불가항력’이란 말로 면피하는 데만 급급해한다는 지적이다.

밥상 물가 급등에 차례상도 걱정인데
정부 여당은 복지부동에 몸만 사릴 뿐

물론 요즘처럼 민감한 시국에 공직자의 말 한마디가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신중함과 몸조심은 하늘과 땅 차이다. 지금 국민의 눈에 비치는 고위 관료들의 행태는 열심히 일하면서도 최대한 신중을 기하는 게 아니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상황이 좋아지기만 기다리는 복지부동의 전형적인 모습일 뿐이다. “노련한 관료들의 자리 지키기 신공이 또다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란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심지어 윤석열 대통령이 “물가와 전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총력 대응을 독려했음에도 총리와 장관·수석 등은 전장에 뛰어들긴커녕 참호 속에서 몸만 잔뜩 웅크리고 있는 형국이다.

눈치만 보고 있는 건 여당도 마찬가지다. 점입가경의 당 내홍 속에 초선부터 중진까지 의원들 대다수는 민생은 뒷전인 채 권력의 향배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있을 따름이다. 우리 사회의 복지병(福祉病)을 경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당정의 주요 인사들이 정작 자신들부터 습관적으로 복지부동하는 ‘복지병(伏地病)’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위중한 상황에, 고위 공직자들이 솔선수범해도 부족할 판에 일선 공무원들의 고통 분담만 요구하고 있으니 이래서야 영이 제대로 설 수 있겠는가.

이번 주 세간의 화제는 단연 전국노래자랑의 새 MC를 개그맨 김신영씨가 맡게 됐다는 소식이었다. SNS에서도 “절묘한 선택” “모처럼 마음에 와닿는 인사”라는 호평이 줄을 이었다. 더욱 공감을 부른 건 그가 밝힌 각오였다. “제 인생 모든 걸 바치겠다. 전국 팔도에 계신 많은 분과 소통하며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뛰겠다.” 국민이 듣고 싶은 얘기가 바로 이런 거다. 대통령 말처럼 전쟁 같은 상황에서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뛰는’ 모습을 국민의 공복들에게 바라는 게 그토록 무리한 요구인가. 아무 일도 안 하고 자리만 보전할 거면 공복은 왜 맡겠다고 나선 것인가.

바닷물이 썩지 않는 건 3%의 소금 때문이다. 장관급 이상 30여 명 중 단 한 명만 소금 역할을 제대로 해도 국민은 참고 기다려줄 텐데 지금 정부엔 정녕 3%의 소금조차 없단 말인가.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란 말인가. 이념도, 세대도, 지역도 밥상 민심 앞엔 장사 없다는 게 동서고금의 진리다. 다음 주는 추석 연휴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어떤 얘기를 나누게 될지는 이제 총리와 장관들 하기에 달렸다. “대중은 이슈 자체보다는 이슈를 다루는 태도를 보고 지지 여부를 결정한다.” 현대 민주주의를 관통하는 오랜 경험칙은 오늘날 한국의 밥상 민심에도 똑같이 유효하다.

박신홍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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