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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고통, 없으면 불안...인류에게 '일'이 늘 그랬던 건 아닌데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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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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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역사

제임스 수즈먼 지음
김병화 옮김
박한선 감수
알에이치코리아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을 뜻하는 워라밸은 현대인의 생활신조가 되다시피 했다. 특히 세계적인 워크홀릭으로 유명한 한국의 일 중독자들이 가장 열광하는 신조어가 워라밸이 아닐까 싶다.

 인류학자인 옥스퍼드대 제임스 수즈먼 교수가 지은 『일의 역사』는 인류가 무엇을 하며 삶을 사용했는지를 탐구한 역작이다. 사람들이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했던 ‘일’이 인류사에서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를 최대한 객관적 시각에서 바라봤다. 한국인들이 약간은 지긋지긋하다고 여겨 왔던 '일'에 대한 학문적인 고찰이다.

 호모 사피엔스 출현 이후 30만 년의 역사 가운데 95%가 넘는 기간 동안에 인류는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왔다. 1960년대 마셜 살린스와 같은 일부 학자들은 수렵채집종족들이 지속적 기아 상태에서 살지 않았으며 대체로 영양 상태가 양호했고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가 드물었다고 주장한다. 휴식과 여가로 보내는 시간의 비중이 커 어떤 의미에선 ‘게으르면서도 풍족한 삶’, 워라밸을 누리고 살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일, 즉 노동이 명실상부한 고통이 된 것은 신석기혁명 이후다. 지은이는 인류가 일의 개념을 어떻게 정립해 왔는지를 설명하면서 일에 대한 사전적 개념을 세운 코리올리, 열역학법칙을 통해 에너지를 투여하는 일에 대한 개념을 소개한 볼츠먼, 기계적 개념에 가까운 노동시스템을 구축한 테일러 등의 이론과 현대 과로사의 피해 사례 등을 소개하며 과연 우리에게 ‘일’이란 무엇인지 되새겨본다.

 사람들은 고된 일을 해야 했지만 막상 일이 없으면 불안해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인 지금에 와서는 인공지능(AI)과 로봇의 등장으로 편리한 삶을 누리게 됐지만 이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급속히 대체하고 있다. 그토록 일에서 해방되고 싶었던 인류가 오히려 실업과 노동시간 단축 그리고 이에 따른 소득 감소를 두려워하게 되는 모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전통적 경제학의 영역을 넘어 사회인류학적 시각에서 접근해 보는 일에 대한 역사는 일을 즐기든, 꺼리든 간에 일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른 한국인 독자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일하지 않는 삶은 생각할 수도 없지만 일 자체가 목적일 수도 없다. 결국 중요한 건 공생이며 균형을 어떻게 찾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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