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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만에 1달러=140엔…日 '역주행 통화정책' 부른 엔화 추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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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의 엔화와 달러화.연합뉴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의 엔화와 달러화.연합뉴스

엔화의 잠 못 드는 밤이다. 엔화가치가 1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140엔까지 떨어졌다.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8월 이후 24년 만에 가장 낮다. 엔화값의 하락 속도도 가파르다. 올해 들어서만 18%(25엔) 하락했는데, 이런 속도는 1979년(19%) 이후 43년 만이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2일 오전 11시 30분 기준 엔화는 달러당 140.10엔에 거래 중이다.

엔화 가치가 하락의 주요 요인은 일본은행(BOJ)의 '역주행' 통화정책이다. 미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연이어 인상하며 긴축의 고삐를 단단히 죄고 있지만, 일본은행은 여전히 완화적 통화정책을 펼치고 있어서다. 블룸버그는 “미국과 일본의 통화정책 수장의 발언이 매(통화 긴축)와 비둘기(통화 완화)로 분명하게 대비된다”고 분석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이사회(Fed) 의장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잭슨홀 미팅에서 “지금은 금리 인상을 중단하거나 멈출 때가 아니다”며 “역사는 통화 정책을 조기 완화하면 안 된다고 강력히 경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지난 7월 말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소폭의 금리 인상으로 엔화 하락을 막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며 “금리 조정을 통해 엔화 약세를 막으려면 엄청난 폭의 금리 인상이 필요할 것이며 이는 경제에 심각한 피해를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일본의 통화정책 디커플링은 더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각종 경제지표가 호조를 보이면서 미국이 긴축의 속도를 낮출 가능성은 옅어지고 있다. 1일(현지시간) 미국 제조업 관련 지표가 나오면서 이런 차이는 더 뚜렷해졌다. 공급관리협회(ISM)의 8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월가의 예상치 51.8을 웃돈 52.8을 기록했다.

게다가 미국의 주간 신규 실업보험 청구자 수는 3주 연속 감소했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집계한 주간 신규 실업보험 청구자 수는 전주보다 5000명 감소한 23만2000명이다. 월가는 24만5000명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보다 고용 상황이 더 좋았다.

Fed가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금리 인상을 지속할 여력이 더 있는 셈이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1일(현지시간) 3.295%까지 올랐다. 블룸버그는 “투자자들이 일본보다 미국에서 더 매력적인 수익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에 엔화 약세가 가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엔화 가격의 급격한 하락에도 전문가들은 일본이 완화적 통화 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소한 구로다 총재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4월까지 이런 (완화적) 통화 정책은 이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엔저(엔화 약세)에도 일본 기업들은 과거와 같은 부양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수출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보다 원자재와 에너지 수입 비용이 더 크게 늘어난 탓이다. 블룸버그는 "일본제철은 엔화 가치 하락에 따른 원자재 비용 급등과 씨름하고 있다”며 “국제 원자재 급등에 엔화 가치가 하락까지 더해지며 일본 기업이 부담하는 철강값은 지구상에서 가장 높다”고 보도했다.

일본 다이와증권 아베 겐지 수석 전략가는 “달러당 1엔씩 엔화 가치가 떨어질 때마다 상장사의 경상이익이 0.4%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1일 “코로나19 방역 문제 때문에 엔저에도 일본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지 않고 있다”며 “엔저 국면에서 일본 경제를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지 일본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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