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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하는 김재형 대법관,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 법적 해결 고민할 뿐”

중앙일보

입력

6년 임기를 마친 김재형(57·사법연수원 18기) 대법관이 2일 대법원을 떠났다. 김 대법관은 “입법으로 해결해야 할 모든 문제를 사법부가 나서서 해결하려 해선 안 된다”며 “대법관을 보수 혹은 진보로 분류해 한쪽에 가두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김재형 대법관이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   pdj

김재형 대법관이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 pdj

민사법 전문가 김재형 “정치·입법 문제가 법원 오는 일 많아져”

김 대법관은 퇴임을 이틀 앞두고 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입법이나 정치의 영역에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사안임에도 법원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치적 갈등을 타협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사법부의 힘을 빌리는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 현상에 대해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대법관은 입법과 사법에 대해 ‘정의’라는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는 두 수레바퀴와 같은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도 “국회의 입법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는 문제에 입법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국민이 권리 구제를 받지 못하거나 불필요한 소송으로 이어져 사회적 낭비를 초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꼬집었다.

특히 대법관을 정치적 성향으로 분류하는 것은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대법관은 “대법관을 보수 혹은 진보로 분류해 어느 한쪽에 가두어 두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법관이 보수와 진보를 의식하게 되면 법이 무엇이고 정의는 무엇인지를 선언하는 데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저는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 중간도 아니다”라며 “제가 한 판결이 여러 의견을 검토해 최선을 다해 내린 타당한 결론이기를 바랄 뿐”이라고 했다.

김 대법관은 법원 숙원인 상고심 제도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대법관은 “대법원은 중요한 사건에 집중해 충분한 숙고를 거쳐 의미 있는 판결을 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면서도 “대법원이 신속·공정하게 처리하면서도 전원합의체와 공개변론을 더욱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대법원 구성원 노력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상고심 제도의 개선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형 대법관이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

김재형 대법관이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

‘미쓰비시 자산 매각 명령’ 등 주심 결정 못 내리고 떠나

이날 김 대법관이 퇴임하면서 그가 주심이었던 일본 미쓰비시의 국내 자산을 강제 매각(현금화)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배상금 지급을 신청한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은 기약 없이 미뤄지게 됐다. 그는 ‘미쓰비시 관련 결정을 못 하고 떠난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취재진 질문에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김 대법관 퇴임 전 결론이 안 난 것은 해당 사건에 대해 대법관 간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법원 소부 사건은 주심 대법관 1명 외 다른 대법관 3명이 합의를 통해 결론을 내린다.

'日강제징용 현금화' 판결 대체 언제? 주심 김재형 대법관 퇴임

전북 임실 출신인 김 대법관은 명지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92년 판사 생활을 시작한 김 대법관은 1995년 법복을 벗고 서울대 법대로 자리를 옮겨 20년 넘게 강단에 섰다. 파산법과 도산법 등에 정통하고 여러 교과서를 저술해 민사법학계의 권위자란 평가를 받았다.

오는 4일 공식 임기가 종료되는 김 대법관의 후임으로는 오석준(59·19기) 전 제주지방법원장이 임명제청 됐다. 오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는 지난달 29일 열렸지만,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은 이날 오전까지도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의 대법관 임명 절차가 미뤄지면서 대법원 업무 공백이 우려된다는 법조계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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