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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투톱' 권성동·장제원 동반 위기..."윤핵관 지고, 용핵관 뜬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윤석열 대통령이 ‘자중하라’는 메시지를 직접 전한 게 사실인가.
“할 말이 없다.” (장제원 의원)
“허위 사실이다.” (권성동 원내대표)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1일 국회에서 열린 제400회국회 본회의에 참석해 있다. 김경록 기자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1일 국회에서 열린 제400회국회 본회의에 참석해 있다. 김경록 기자

1일 국민의힘 두 ‘원조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 관계자)’은 각각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만난 기자들에게 같은 듯 다른 대답을 했다. 윤 대통령이 두 사람에게 “싸우는 모습을 자제하고 협조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장 의원은 무대응을, 권 원내대표는 정면 부인을 택한 장면이었다.

이들이 같은 자리에 함께 나타난 건 법원의 가처분 결정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긴급하게 소집된 지난달 27일 의원총회 후 닷새만이다. 그 사이 두 사람은 정치적 격변기를 맞았다. 윤 대통령 당선 이후 여의도의 ‘최고 실세’로 통하던 장 의원은 지난달 31일 “윤석열 정부에서 어떠한 임명직 공직을 맡지 않겠다”며 전격적으로 2선 후퇴를 선언했다. 권 원내대표는 하루 전인 지난달 30일 의총에서 재신임을 받았지만 ‘새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전까지’라는 시한부 결정이었다. 사실상 ‘예고 사퇴’인 셈이다. 정치권에선 이러한 상황을 “윤핵관의 퇴조, 신주류의 부상”으로 해석했다. 대선 캠프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거치며 명실상부 ‘윤의 투톱’으로 자리매김했던 두 사람이 동반 위기를 맞은 대신 김대기 비서실장을 비롯한 용산 대통령실 고위 참모진이 ‘용핵관’으로, 윤 대통령의 검찰 출신 측근들이 ‘검핵관’으로 급부상했다는 의미다.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400회 국회(정기회) 1차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성일종 정책위의장이 생각에 잠겨있다. 김경록 기자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400회 국회(정기회) 1차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성일종 정책위의장이 생각에 잠겨있다. 김경록 기자

표면적으로 최근의 여권 상황은 ‘윤 대통령이 구(舊) 측근에 대한 신뢰를 거둬들이고 신(新) 측근에게 힘을 실어줬다’는 구도로 설명할 수 있다. 역대 대통령과 그 측근 그룹이 그러했듯이 아무리 개국 공신이어도 실제 최고 권력자와의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 권력도 함께 멀어지는 역사적 전철을 밟고 있는 모양새다. 윤핵관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의 참모가 된 이들이 윤핵관을 밀어내고 있는 그림이 그려지고 있으니 그럴 듯한 정치적 해석이다. 게다가 윤핵관의 퇴조에 앞서 윤핵관을 통해 대통령실에 입성한 실무진이 먼저 신주류에 의해 ‘솎아내기’를 당했으니 시간적 순서도 맞아떨어진다.

대통령실도 윤핵관 그룹과 관련한 발언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이 권성동·장제원 의원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세간의 평가가 있는데 어떻게 보느냐”는 물음에 “수석이나 대변인이 참석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한다”고 즉답을 피했다. 이를 두고 당내에서는 “‘윤핵관 배제가 맞다’는 여지를 사실상 열어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여권에선 조금 다른 해석도 나온다. “‘용산 대 여의도’라는 단순 대결 구도가 아니다”라는 시선이다. 1일 국민의힘 원내대표실 관계자는 “권 원내대표는 김대기 실장과 법안·정책 등을 놓고 편하게 자주 소통한다”고 전했다. 당·정에서 공식 직함을 맡고 있는 김 실장과 권 원내대표 사이엔 먹구름이 짙지 않다는 취지다. 반면 용산 주변에선 “김 실장과 장 의원 사이에 불편한 기류가 흐른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결국 같은 윤핵관이라도 용산 수뇌부와의 밀접도는 다르는 얘기가 퍼지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오전 경남 창원시 진해구 부산신항 한진물류터미널에서 제7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한 뒤 이어서 '2030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 준비상황 점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강정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오전 경남 창원시 진해구 부산신항 한진물류터미널에서 제7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한 뒤 이어서 '2030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 준비상황 점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강정현 기자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장 의원과 가까운 당내 친윤계 의원들은 이날 “대통령실과 여의도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조직적 음모가 있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친윤 의원은 통화에서 “출처도 없이 대통령실발로 나오는 보도들이 굉장히 불쾌하다”며 “대통령은 민생에 바쁜데, 대통령은 위한다는 사람들이 뒷선을 지키고 있는 사람을 자꾸 흔들어댄다. 오죽하면 (장 의원이) 2선 후퇴를 선언했겠느냐”라고 말했다. 장 의원은 주변에 대통령실과의 갈등설을 부인하면서도 ‘김 실장을 비롯한 대통령실 참모들에 언론 보도 경위를 직접 확인했다’는 취지로 반응했다고 한다.

입당 1년여 만에 당선된 윤 대통령은 이전 대통령들에 비해 기성 정치 접촉면이 좁은 대신, 검찰 출신과 관료 등 정치권 외부 인사에 보다 열린 자세를 유지해 왔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지난 4~5월 대통령실 초대 참모진을 꾸릴 때부터 일찌감치 이런 분위기를 경계하는 시선이 만연하기도 했다. 비주류 초선 의원은 “윤핵관 2선 후퇴는 자신들이 자처한 측면이 있지만, 한편으로 ‘여의도 홀대’가 대통령 최측근 그룹에까지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당장 내년부터 시작될 차기 총선 공천 작업을 앞두고 윤 대통령의 여당 장악력이 약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중진 의원은 “윤핵관을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버리면 앞으로 당내에서 또 누가 윤 대통령을 위해 충성을 다해 일하겠느냐”며 “윤핵관들이 너무 빨리 내쳐졌다”고 말했다.

한때 ‘브라더(형제)’ 사이를 자처했던 권 원내대표와 장 의원을 놓고 당내에선 “두 윤핵관이 서로 연락을 하지 않은지 꽤 됐다”는 말이 돌고 있다. 권 원내대표는 장 의원의 ‘백의종군’ 선언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 질문에 이틀째 침묵으로 일관했다. 두 사람은 이날 본회의장에서 눈인사도 나누지 않은 채 각자의 길로 사라졌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원래 집권 초기에는 내부 권력 투쟁이 벌어지는 법”이라며 “지금은 윤핵관 사이가 다소 멀어졌지만 또 언제, 어떻게 서로 힘을 합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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