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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둘 두고 "누가 더 죽기 직전인가"…코로나 영웅 '슬픈 싸움'

중앙일보

입력

“‘누가 더 죽기 직전인가.’ 이 질문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스스로 묻고 또 답하며 몇 달을 보냈다.”
서울대병원 내과 박연수 전공의는 위기대응중환자실(DICU)에서 보낸 3개월을 이렇게 기억했다. 코로나19 최중증 환자를 돌보는 서울대병원 DICU는 지난 2020년 봄부터 운영됐다. 사태 초기 대구·경북 확진자가 급증했을 때 대구·경북서 이송된 코로나19 이외 중환자를 받으려 문을 열었는데, 이후 코로나 환자가 폭증하면서 코로나 중환자를 돌보는 곳이 됐다.

서울대병원 코로나19 백서 담긴 수기 보니

전공의 박씨는 지난해 델타 변이가 기승을 부릴 당시 이곳에서 3개월 머무르며 중환자를 지켰다. 그의 수기(手記)는 서울대병원이 1일 펴낸 ‘2년 4개월의 기록’이란 이 병원의 코로나19 백서에 담겼다. 이 백서에는 국가중앙병원으로서 코로나 대응에 앞장서 온 서울대병원 수많은 영웅의 노고와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정시 퇴근 석달 간 5번도 안 돼”

박씨는 에크모(체외막산소공급장치)를 달고 에피네프린을 주입하는 등 위중한 상태의 환자 2명이 이송됐을 때를 떠올리며 “당장 필요한 처치를 하지 않으면 심폐소생술(CPR)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라며 “한 대의 초음파로 둘 중 어떤 환자에게 투석용 중심정맥관을 먼저 확보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고 썼다. ‘다른 중환자실에 남는 CRRT(지속적 혈액투석기계)가 있을까’라는 고민을 기계적으로 하면서 누가 더 급한 환자인지를 동료와 확인했다고 회상했다. 의료진과 의료기기는 한정된 상태서 중환자가 연일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때였다.
 이런 상황이 매일같이 이어졌다. “당직이 아닌 날에도 기록과 오더를 정리하고 환자를 다 보면 새벽 3시가 다 되어 당직실에서 쪽잠을 자고 다시 출근했다. 그러면 다른 비슷한 하루가 또 시작됐다.”
생사를 오가는 환자를 지키느라 끼니를 놓치는 게 다반사였다.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코로나19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사진 서울대병원 제공.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코로나19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사진 서울대병원 제공.

박씨는 “밥 먹을 시간이 없어 세 끼를 다 굶었고 자정이 지나 다음날이 되어서야 라면을 하나 먹을 수 있었다”라며 “하루 세끼를 다 굶고 과자로 때우는 날이 더 많았고, 정시에 퇴근한 날은 석 달 동안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고 적었다.

그러면서도 “소생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던 환자들이 굳건히 회복하는 것을 볼 때 안도와 감사를 느꼈다”라며 “몇 번을 경험해도 무뎌지지 않는 감동이었고, 젊은 내과 의사로서 느끼는 가장 큰 기쁨이었다”고 했다. 그는 환자들이 “종일 밥을 못 먹고, 밤을 지새워도 버티게 해주는 아드레날린이자, 다크서클이 짙게 드리운 초라한 몰골로도 언제나 당당할 수 있던 자부심의 원천”이라고 했다. 박씨는 “최선을 다하면 환자 스스로, 또 시간이 많은 부분을 해결해준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라며, 폐 이식까지 고려할 정도로 길고 힘든 몇 달간의 투병을 거친 뒤 건강을 회복하고, 손녀의 탄생까지 지켜보게 된 한 노인 환자의 사연을 언급했다.

박씨는 “환자는 의지와 회복력으로 고비들을 다 이겨냈다. 수없이 반복했던 ‘눈을 떠 보라’는 말에 환자가 처음 정말 눈을 떴을 때의 기쁨을 기억하고 내 손을 처음 잡았을 때의 기쁨을 기억한다”고 적었다. 그는 “좋은 의사였다고 자부하기에는 많이 부족하지만 필요한 의사였다고 생각하기에 스스로도 고생했다는 위로의 말을 남기고 싶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39병동에 근무했던 남미소 간호사는 ‘7년 차 간호사의 또 다른 도전’이란 제목의 수기에서 “활력징후 측정과 투약, 석션, 식사 보조, 체위변경 후 기저귀까지 갈아드리고 땀에 절어 나오자마자 날 다시 찾는 콜벨 소리,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가 이렇게 잔인한 음악이었나 싶었다”라고 적었다.

서울대병원 위기대응중환자실(DICU) 모습. 사진 서울대병원 제공.

서울대병원 위기대응중환자실(DICU) 모습. 사진 서울대병원 제공.

그러나 그의 지난 시간 속 주인공은 자신보다 더 힘겨운 싸움을 이겨낸 환자들이었다. 그 속에 코로나19로 폐렴까지 온 70대 고령 환자가 있었다. 남씨는 “하루에도 10번 이상 벨을 누르는 70세 할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면서도 “환자에겐 치료제와 고압 산소뿐 아니라 정서적 지지와 공감 또한 필요했다. 혼자 있기 불안하다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우는 모습을 보고 오랫동안 달래준 기억이 난다”라고 했다. 이어 “원망의 마음은 곧바로 죄책감으로 변했고 이런 양가 감정을 매일같이 느꼈다”며 “환자가 먼저 손을 건네고 안면보호구 너머로 따스한 눈길을 보내는데 위로를 받았다”라고 적었다.

그래도 환자…“회복이 보람이자 기쁨”

환자의 회복이 모든 힘듦을 씻겨준 건 남 간호사만의 얘기가 아니다.
응급실의 장유선 간호사는 “환자의 회복이 일하는 보람이자 기쁨”이었다고 했다. 한번은 환자를 데리고 온 보호자가 갑자기 숨이 차다고 하더니 상태가 악화해 결국 기관내삽관에 이어 에크모까지 했다고 한다.
장씨는 “보호자로 왔다가 중환으로 중환자실에 입원 간 환자는 에크모까지 하고 치료받다가 결국 걸어서 퇴원했단 소식을 듣고 반갑고 감사했다”고 했다. 자신을 신규 간호사로 소개한 민현지 간호사 역시 ‘성장일기’라는 제목의 글에서 “가장 뿌듯할 때는 건강이 회복된 환아가 웃으면서 인사해주거나 퇴원할 때였다”라며 “컨디션이 좋아진 환아가 작은 손으로 색종이 하트를 접어준 적이 있는데 격리구역 밖으로 나올 수 없어 아쉬웠다”고 썼다.

서울대병원 위기대응중환자실(DICU) 모습. 사진 서울대병원 제공.

서울대병원 위기대응중환자실(DICU) 모습. 사진 서울대병원 제공.

선별진료소에서 9개월간 근무했다는 최현진 간호사는 “검사하러 온 환자가 집에서 써온 손편지와 포장한 사탕을 주고 갔다”라며 “잠깐 스쳐 갈 뿐인데 그런 정성에 모두가 감동한 잊지 못한 순간이었다”고 했다. “선별진료소 업무가 단순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지를 느끼는 보람 있는 순간이었다”는 게 그의 얘기이다.

각종 민원에 시달린 보안원의 이야기도 있다. 병원 비상계획과의 김대곤 보안원은 “통제를 하면서도 민원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딜레마적인 상황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고 적었다. 유증상자의 출입을 제한하고 면회를 금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민원을 떠올리며 “통제를 강제할 권한이 없고 경찰 또는 구청 소속 직원 같은 공권력의 도움도 한정적이라 통제에 불응하는 경우가 많았다”라면서 “의도와는 다르게 불친절이라는 오해를 낳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서울대병원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 사진 서울대병원 제공.

서울대병원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 사진 서울대병원 제공.

병동 통째 비워 소아 환자 받아…1667명 거쳐가 

서울대병원은 국내 코로나 첫 환자가 나온 2020년 1월 20일부터 국가지정입원 치료병상 체제로 전환한 뒤 1월 30일부터 환자 치료를 시작했다. 코로나19 전담병상을 운영해 2020년 1월 7개이던 병상은 올해 88개까지 늘었다. 1월 30일 첫 환자를 받은 이후 올해 5월 31일까지 2년 4개월간 1271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이외로도 오미크론 유행 이후인 지난 2월 21일부터는 선제적으로 음압격리 치료 원칙을 깨고 일반병동에서 무증상·경증이지만 기저질환 치료가 필요해 퇴원이 어려운 환자를 돌봤다. 4월 30일까지 두 달간 310명이 거쳤다. 소아 경증 환자를 받기 위해 어린이병원 병동 하나를 통째로 비워 86명을 또 치료하는 등 28개월간 1667명(실인원 기준)의 환자를 돌봤다.

서울대병원 비상계획과 보안원이 출입구를 지키고 있다. 사진 서울대병원 제공.

서울대병원 비상계획과 보안원이 출입구를 지키고 있다. 사진 서울대병원 제공.

 김병관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재난의료본부장은 “서울대병원이 코로나19를 겪으며 해왔던 많은 역할 중 ‘당연한 것’은 단 한 가지도 없다”라며 “낮에는 기존 환자에 코로나19 중환자 치료까지 더해지고 밤에는 경증환자 진료를 위해 생활치료센터 당직 파견도 감수하고 희생해주었던 모든 진료과, 의료진, 교직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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