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시평

공공부문 개혁 핵심은 인사보상제도 재정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조윤제 서강대 명예교수·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조윤제 서강대 명예교수·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세계 여러 싱크탱크들이 각국의 경쟁력, 삶의 만족도, 생활환경 등을 평가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들의 평가결과는 꼭 같지 않지만 대개 공통점이 있다. 한국은 먹고 사는 형편은 괜찮지만 국민들의 삶의 만족도는 매우 낮다는 것이다.

영국의 레가툼연구소(Legatum Institute)는 경제, 기업환경, 교육, 보건, 안전·안보, 개인의 자유, 사회적 자본, 자연환경 등 12개 부문 분석을 통해 그 나라가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지를 평가하고 있다. 2021년 한국의 총체적 번영지수는 167개국 중 29위로 매겨져 있다. 부문별로는 안보안전 37위, 투자환경 19위, 경제의 질 9위, 보건의료 3위, 교육 2위, 자연환경 56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가장 큰 개선을 보인 부분은 53위에서 43위로 오른 ‘개인의 자유’ 부문이다.

사회적 자본 축적은 시대적 과제
한국은 삶의 만족도 낮은 나라
선진화는 사회적 자본 없이 안돼
공공부문 개혁으로 시작해야

우리의 의료보험제도, 평균수명 등을 고려할 때 보건의료 3위는 수긍이 가고 자랑스럽다. 교육 2위는 고개를 좀 갸우뚱하게 하지만 사교육을 통해 아이들 진을 빼 가면서 이룩한 한국 부모들 교육열의 성과다. 어쨌든 한국학생들이 해외의 또래들에 비해 학업성취도가 높고, 대학진학률이 세계 최고인 것이 사실이다. 투자환경도 이 보고서뿐 아니라 다른 보고서들에서도 우리나라가 상위권에 속해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비교에서 2019년 141개국 중 13위를 차지했다. 2022년 IMD 국가경쟁력보고서에서는 63개 조사대상국 중 27위였다. 인구 2000만이 넘는 27개국 중에서는 9위였다.

레가툼 평가에서 특히 주목하게 되는 부분은 ‘사회적 자본’이란 부문이다. 우리의 순위는 167개국 중 147위다. 불행한 근대사를 겪어온 유산이기도 하겠으나 심각하다. 지난 10년간 오히려 악화되어 왔다. 좀더 세부적으로 들여다 보면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세계 최하위,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도 최하위 수준이다. 사법시스템(검찰과 법원)에 대한 신뢰는 2019년 166위에서 그나마 2021년 158위로 좀 올랐으나 세계 최하위권이다. 정치인과 정부, 군에 대한 신뢰는 각각 111위, 110위, 145위이다.

이 평가들이 갖는 나름의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이는 지금 우리나라가 집중해야 할 시대적 과제들이 무엇인지를 제시해 주고 있다. 사회적 자본을 ‘자본’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경제적 자본과 마찬가지로 그 것이 부족해서는 지속적 국가사회의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세계사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깊은 불신은 이 기관들의 법집행이 공정하거나 정의롭지 못하며, 전관예우라는 관행에 젖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불공정이 이어지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피의자들이 막대한 수임료를 지불해 가며 현직 후배들에게 영향력 있는 갓 퇴임한 고위 검사나 판사를 찾아 다니는 이유는 단순히 그 분들의 법률지식이 탁월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다른 정부부처들도 비슷한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조직내부의 묵시적 담합을 통해 주요 보직을 돌려가며 맡고 모두 고위직까지 승진해서 퇴임 후 공공기관장이나 간부로 취업하려는 인사관행을 유지하고 있다. 한 자리에서 실력을 키우고 오래 머물기 어렵다. 비슷한 능력과 자질을 보유한 다른 직장의 동창들에 비해 훨씬 낮은 보수를 퇴임 후 보상받으려 하는 인사관행이다. 적재적소, 능력우선이라는 공공이익 관점에서의 인사원칙 보다 조직이익을 우선하는 인사관행으로는 국민 신뢰뿐 아니라 정책의 질도 떨어뜨리게 된다.

사회적 자본의 축적을 위해서는 우선 공공부문 개혁부터 해 나가야 한다. 다행히 이번 정부는 공공기관 혁신을 주요과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발표된 내용을 보면 주로 예산과 인력을 감축하고 군살을 빼겠다는 것이다. 그 것이 핵심은 아니다. 이는 국민들에게 일시적 환영을 받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 공공기관의 인력과 업무의 질을 떨어뜨려 국민들의 불신을 더 키우는 길이 될 수도 있다. 공공부문 개혁의 핵심은 인사보상제도의 근본적 재정립에 있다. 엄격하고 공정하며 투명한 인사제도를 확립하고 그 직을 담당할 자격과 경험을 가진 자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 그래야 조직 내 담합에 의해 퇴임 후를 보장받으려는 유인도 줄고 외부에서 유능한 전문가와 관리자들을 영입할 수도 있다. 직업공무원들에게 희생만을 요구해서 될 일은 아니다. 인사제도개혁만큼 중요한 것이 새로운 인사관행의 확립이다. 여태까지 어떤 정권도 잘 해내지 못했다. 대통령의 각별한 의지와 노력, 지속적 점검 없이는 개선되기 어려운 과제다.

주목해야 할 또다른 부분은 교육수준 2위와 사회적 자본 147위라는 사실이다. 선진국들은 이 둘이 대체로 비례한다. 교육의 목적은 단순히 정답 잘 맞추고, 돈 잘 벌게 하는 것만은 아니다. 사설 학원은 사회적 협력, 타인에 대한 배려, 인성 교육을 하는 곳이 아니다. 이는 가정과 학교의 몫이다. 공교육 정상화가 절실하다. 그러나 이 또한 정부와 공공부문에 대한 신뢰라는 자산 축적과 함께 가야 이룰 수 있는 과제다.

조윤제 서강대 명예교수·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