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거품 끝나는 소리? 펑 아닌 쉭"…그래도 8·16대책 필요한 이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안장원 기자 중앙일보 기자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8·16 주택공급 확대 대책

안장원 부동산선임기자

안장원 부동산선임기자

“버블(거품)이 끝나는 소리는 ‘펑’이 아니라 ‘쉭’이다."

거래 절벽·매물 증가에 가격 급락 #고금리·고물가로 매수 여력 달려 #값규제 불확실, 공급축소 가능성 #‘안정적인 공급기반’ 계속 다져야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금융위기 3년 전인 2005년 8월 뉴욕타임스에 쓴 글이다. 요즘 국내 주택시장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거래 절벽, 매물 증가를 넘어 거래 가격이 억대씩 떨어진다는 소식이 들린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지난달 16일 새 정부 주택공급 확대 대책인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정부는 집값 하락세가 짙은 가운데 앞으로 5년 간 이전 문재인 정부보다 13만 가구 많은 270만 가구를 공급하기로 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지난달 16일 새 정부 주택공급 확대 대책인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정부는 집값 하락세가 짙은 가운데 앞으로 5년 간 이전 문재인 정부보다 13만 가구 많은 270만 가구를 공급하기로 했다.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하는 아파트 실거래가가 전국·서울 모두 지난해 11월 하락세로 돌아선 뒤 10개월 가까이 내리막이다. 정부 공인 통계인 한국부동산원 주택가격동향조사도가 전국·서울 모두 지난 2월부터 이달(추정)까지 7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이다. 민간 KB국민은행 조사도 전국 7월부터, 서울 8월부터 약세다.

2006년 이후 거래량 역대 최저

집값 약세가 장기화하면서 일시적인 조정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집값이 상승세를 타던 문재인 정부에서도 2018년 말과 2019년 상반기 내린 적이 있지만 무엇보다 2018년 9월의 고강도 규제 대책 영향이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번 하락세의 진원지는 경제다. 원인이 더 복합적이고 근본적이다. 약 3년 만의 금리 인상으로 촉발된 고금리·고물가와 경기 침체 불안이 맞물려 굳어지는 분위기다. 일단 금리 위력이 거세다. 역대 가장 빠른 속도의 수직 상승이다. 이자가 늘면 빌릴 수 있는 돈이 그만큼 줄어든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대출 가능 금액이 1억원가량 줄어들었다. 금리 ‘로켓’은 집값을 더욱 멀리 날려버렸다. 금융 비용을 제외한 연간 소득 대비 서울 집값(PIR)이 6월 기준으로 17.6배에 달한다.(KB국민은행) 대출 금융비용까지 고려하면 집값은 더욱 비싸진다.

경제 전반의 심리도 급속 냉각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주택가격전망지수가 전국·서울 모두 70대다. 70대는 조사를 시작한 2013년 1월 이후 처음이다. 100을 기준으로 낮을수록 전망이 어둡다는 뜻이다. 경기·금리·물가 전망도 거의 역대 최악 수준으로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진 시점과 비슷하다.

최근 통계인 7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1028건으로 통계를 시작한 2006년 1월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8월 거래량은 역대 처음으로 1000건 미만으로 예상된다. 매물은 쌓였다. 아파트 정보 사이트 아실에 따르면 인터넷에 올라온 서울 아파트 매물이 6만여 건으로 1년 전 4만 건 정도보다 50% 늘었다.

조만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다. 금리 상승의 집값 하락 효과는 이제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효과가 누적된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초 발표한 ‘주택시장 리스크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0.50%포인트 오르면 2년 뒤 집값이 1.4%까지 떨어질 것으로 분석됐다.

거래가격 억대 하락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단기 급등 부메랑이다. 억대로 낮추더라도 몇 년간 오른 금액보다 적어 매도자 입장에선 그래도 남기 때문이다. 전셋값도 매맷값과 동반 약세여서 전세보증금을 끼고 사는 ‘갭투자’도 어렵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주택 구매의 지렛대(대출)가 부러지고 디딤판(갭투자)도 무너졌다"고 말했다.

주택시장 환경을 종합하면 집값 하락 압력이 2008년 금융위기보다 더 셀 수 있다. 금융위기 전 집값도 지금과 비슷한 폭으로 올랐지만 그땐 가구 소득도 꽤 올라 소득 대비 집값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금융위기 직후 11.9였으니 직전엔 12~13 정도로 추정된다. 기준금리가 지금보다 높았어도 금융위기 이후 빠르게 내려갔고 큰 변동 없이 유지됐다. 전문가들은 과거 추이를 본다면 PIR이 14 이하가 적정할 것으로 본다.

“양산은 날씨 흐릴 때 만들어 둬야”

주택시장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을 구체화한 정부의 주택공급 확대 대책이 베일을 벗었다. 지난달 16일 정부가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을 발표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첫 부동산 공약 때 1호에 올린 지 1년, 윤 정부 출범 이후 3개월 만이다.

시기적으로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다 흐려진 뒤 나온 양산 장수처럼 어색하다. 문 정부의 공급 억제로 인한 집값 불안을 잠재울 묘안으로 대대적인 주택공급을 들고 나왔는데 발표도 하기 전에 집값이 꺾인 것이다. 일부에선 이 시점의 주택공급 확대가 집값 하락을 더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흐릴 때 양산을 제대로 만들어둬야 한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8·16대책 발표 때 “주택공급 하락기 이후 상승 사이클을 맞이할 때 공급 부족으로 주택가격 폭등을 맞았던 실패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런데 아쉬운 점이 눈에 띈다. 우선 물량부터 보자. 정부는 당초 공약 250만 가구에서 270만 가구로 20만 가구 늘렸지만 넉넉하지 않다. 문 정부 5년간(2018~2022년) 257만 가구(정부 추정)와 별 차이가 없다. 문 정부가 지난해 2·4대책 등 공급 대책 효과로 예상한 2021~2030년 연평균 공급량이 전국 56만3000가구다. 5년이면 280여만 가구다.

공급 계획이 시장에 실제로 공급되는 준공이 아닌 착공 전 인허가를 기준으로 한 물량이다. 인허가 물량이 모두 준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지난 10년간 준공 물량이 인허가의 전국 80%, 서울 90% 정도다. 실제로 250만 가구를 시장에 공급하려면 인허가 '누수'를 고려해 인허가 물량은 300만 가구 정도 돼야 한다.

윤 정부는 ‘공급정책 전면 혁신’이라며 문 정부와 선을 그었지만 문 정부 대책만 제대로 추진해도 공급량 상당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 문 정부 공급 수치가 인허가에 앞선 사업부지 기준이기 때문에 확보된 부지의 인허가만 진행하면 된다. 상품 공급을 좌우하는 가격 신호가 분명하지 않다. 계획에서 완공까지 5년 이상 걸리는 주택시장에서 장기적인 가격 전망을 가늠할 수 있는 정부의 가격 정책이 관건이다.

정부는 민간 사업장의 분양가상한제 가격 규제를 어물쩍 넘어갔다. 지난 6월 일부 현실화하는 수준에서 가격을 찔끔 올릴 수 있는 여지를 만든 것 외에 이번 대책에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7월 공사비 상승을 반영해 상한제 건축비 산정 기준인 기본형건축비를 3월보다 1.5%, 지난해 9월 대비 4.2% 올리는 비정기 고시를 했을 뿐이다. 이것도 실제 비용 상승에 한참 못 미친다. 지난해 9월 이후 주거용 건물 건설공사비 상승률이 8.8%다.

민간 사업장 상한제는 정부가 상한제 지역으로 지정한 곳에서 운영되는데 어떻게 될지 불확실하다. 문 정부가 2019년 상한제 지역을 지정할 때 기준으로 삼은 게 집값과 분양 물량이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은 집값 상승 지역으로 분류했지만 분양이 없어서 제외했다.

앞으로 윤 정부에서 주택 사업이 늘어나면 상한제 지역도 대폭 확대될 수 있다. 1기 신도시 재정비로 분양 물량이 쏟아질 분당 등과 정부가 이번 대책에서 도입하기로 한 '주택공급촉진지역' 등이다. 업계 관계자는 "언제, 어디서 상한제 규제를 받을지 모른다"며 "곳곳에 상한제 리스크가 널려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공공택지 축소 재연?

정부는 주택시장의 가장 큰 문제로 지목한 '비싼 집값'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저렴한 주택 공급에 인색했다. 기존 상한제보다 저렴하게 '건설원가'로 공급하는 새로운 주택을 내놓기는 했다. 도심 역세권 첫집과 공공택지 청년원가주택이다. 공공택지에선 올해 3000가구를 분양할 예정이지만 도심에선 요원하다. 대상이 무주택 청년, 신혼부부, 평생 집을 가진 적이 없는 사람이어서 제한적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집값을 핑계로 주택공급 확대 정책에서 후퇴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8·16대책에서 재건축 안전진단 개선방안을 연내 마련하되 적용 범위와 시행 시기는 “시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해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집값을 자극할 것 같으면 적용 범위를 축소하고 시행 시기를 미루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내년까지 15만 가구 내외의 공공택지 후보지를 발표하겠다고 하면서 2024년 이후는 “시장 상황을 고려하겠다”고 했다. 금융위기 이후 집값 하락세가 지속하자 공공택지 개발을 대폭 축소한 박근혜 정부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윤 정부가 누차 강조한 '안정적인 공급기반'을 제대로 마련하길 바란다. 집값만이 아니라 정치에 흔들리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