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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주정완의 시선

답답한 국회, 혼란스런 납세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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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주정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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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세금전쟁’의 1라운드가 막을 내렸다. 종합부동산세법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전이다. 양쪽이 팽팽한 줄다리기만 하다가 알맹이가 빠진 반쪽짜리 결론밖에 내지 못했다. 무능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 사이에서 납세자만 혼란스럽다.

공제금액 제외한 종부세법 합의 #알맹이만 쏙 빠진 반쪽짜리 결론 #공동명의 1주택 12만명 대혼란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보자. 종부세는 지난 3월 대선에서도 뜨거운 이슈였다. 적어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점에선 여야 정치권이 공감했다. 규제 일변도였던 더불어민주당의 부동산 정책 기조도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종부세로 인한 억울함이 없도록 개선하겠다”고 공언했다.

 이후 민주당에선 다주택자의 종부세를 덜어주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지난 5월 말이었다. 의원총회를 거쳐 당론으로 종부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다주택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투기꾼으로 몰아붙이는 건 실책이었다고 시인한 셈이다. 대선 패배 과정에서 부동산 민심과 조세 저항의 무서움을 체감한 효과였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자 분위기가 다시 달라졌다.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협상파의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

 이번 종부세법 공방전에서 가장 큰 쟁점은 다주택자도 아니고 1주택자였다. 종부세를 매길 때는 과세대상에서 빼주는 금액(공제금액)이 있다. 올해 1주택자의 공제금액을 얼마로 하느냐를 두고 여야가 맞섰다. 현재 1주택자는 11억원, 다주택자는 9억원이다. 공제금액이 많아질수록 세금이 줄어든다. 올해는 한시적으로 1주택자의 공제금액을 14억원으로 올리자고 정부와 여당이 뜻을 모았다.

 야당이 ‘부자 감세’라고 반발하자 여당이 한발 물러섰다. 1주택자 공제금액을 14억원이 아니라 12억원까지만 올리자고 절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입장 차이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지난달 31일 여야 지도부의 대화는 양쪽의 분위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종부세 문제에 대해 가급적 협력적 입장을 가지라고 당에 얘기는 했다. 그렇다고 (여당이) 과도한 욕심은 내지 말라”고 말했다. 협상의 문은 열어두겠지만 여당이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지는 않겠다는 얘기다.

 결국 공제금액을 제외한 나머지 내용만 법안에 담아 정기국회 첫날인 1일 간신히 상임위 문턱을 넘었다. 시험에 비유하면 어려운 문제는 손대지 않고 쉬운 문제만 풀어서 답안지를 제출한 셈이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결코 좋은 성적을 줄 수는 없다.

 공제금액에 대한 여야 합의가 불발되면서 가장 혼란스러운 쪽은 부부 공동명의로 1주택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12만 명이 넘는다. 이들이 종부세를 계산할 때 부부가 따로 공제(1인당 6억원)를 받는 게 유리한지, 1가구 1주택자로 공제를 받는 게 유리한지가 여전히 불확실하다. 조세의 예측 가능성이란 관점에서 보면 낙제점이다. 만일 1주택자 공제를 원한다면 이달 말까지 국세청에 별도로 신청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기존 종부세법(1주택자 11억원)에선 부부가 따로 공제를 받는 쪽이 유리했다. 그런데 여당의 개정안(1주택자 14억원)대로 하면 1주택자 공제를 적용받아야 세금을 더 아낄 수 있다. 만일 여야가 절충안(1주택자 12억원)에 합의한다면 어느 쪽이든 같은 금액을 공제받는다. 납세자를 헛갈리게 하는 문제는 이게 전부가 아니다. 장기보유 특별공제(5년 이상 보유)와 고령자 특별공제(60세 이상)까지 고려해야 한다. 부부 공동명의는 장기보유나 고령자 공제를 받을 수 없다. 같은 집을 오래 보유한 고령자 부부라면 공동명의가 불리할 수 있다. 이런 것까지 따지다 보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부동산 세금전쟁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지난 7월 정부가 발표한 종부세 개편안이 '뜨거운 감자'다. 내년부터는 어떤 기준으로 종부세를 매길 것이냐를 두고 여야의 치열한 공방이 예고돼 있다. 핵심 쟁점은 다주택자에 대한 차등 세율의 폐지다. 예컨대 20억원짜리 집 한 채를 가진 사람과 10억원짜리 집 두 채를 가진 사람에게 똑같은 세율을 적용하자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공평 과세라고 주장하지만 야당은 부자 감세라고 반발한다. 야당이 국회 과반수를 차지한 상황에서 종부세법 개정안이 정부 원안대로 통과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최악의 상황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질질 시간만 끄는 것이다. 예측 가능한 조세를 고려하면 이번 정기국회에서 결론을 내야 한다. 여야가 진정으로 민생을 생각한다면 늦기 전에 반드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