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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과 소고기덮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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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이영희 도쿄특파원

이영희 도쿄특파원

지난달 24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교세라 창업주·명예회장은 손님을 접대할 때 소고기덮밥 체인점 ‘요시노야(吉野家)’를 이용했다고 한다. 덮밥 한 그릇에 500엔(4900원) 이하인 저렴한 식당이다. 정치인과 식사할 때도, 교세라가 후원하던 J리그 교토퍼플상가(현 교토상가FC)에 일본 국가대표였던 라모스 루이를 데려오려 만났을 때도 장소는 요시노야였다. 덮밥을 각자 한 그릇 시키고 소고기 토핑을 추가해 나눠 먹었는데, 마지막 남은 고기는 무조건 상대에게 권했다.

직원들과도 자주 밥을 먹었지만 보통 한 끼 만원이 넘지 않는 식사였다. 보통 상사가 이런 식당에서 밥을 샀다면 “장난하냐” 부글부글 했겠지만 그와 함께한 사람들은 ‘부담스럽지 않게 대접받는 기분’이라고 했다. 돈이라면 넘칠 만큼 있는 대기업 회장이지만, 스스로 워낙 검소한 생활을 한다는 걸 직원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평생 절약하며 살았고 대부분의 재산을 사회에 기부했다.

지난 2012년 하나은행 행사에서 강연하는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당시 명예회장. [중앙포토]

지난 2012년 하나은행 행사에서 강연하는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당시 명예회장. [중앙포토]

일본 언론이나 소셜미디어(SNS)에 등장하는 이나모리 회장의 부고를 읽으며 놀라게 된다. 20대에 창업해 대기업을 일궜고, 파산 직전이던 일본항공(JAL)을 살려내 ‘경영의 신’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사람들은 그를 ‘유머 있고 소탈한 아저씨’로 기억했다. “기업인이기에 앞서 인간으로서 무엇이 올바른 행위인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 그는 경영 현장에서도 이를 최대한 실천하려 노력했다고 한다. ‘독점은 좋지 않다’는 철학으로 기업인으로는 드물게 자민당이 아닌 야당을 꾸준히 응원해왔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개인적으로는 수십 권의 책을 남긴 저술가로 그를 기억한다. 한국에도 많은 책이 번역됐는데, 일하는 자세를 다룬 『왜 일하는가』는 지금도 널리 읽힌다. “인간은 자신의 내면을 성장시키기 위해 일을 하며 그러니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어쩌면 ‘꼰대스런’ 이야기지만 60년 경영 현장에서 끌어올린 깨달음이라 울림이 있다. 이런 구절이 있다. “‘저 친구는 참 안 됐어.’ 사람이란 모름지기 이런 말을 들을 정도로 불행한 상황에 한 번쯤은 놓여보는 것도 좋다. 겨울이 추울수록 그 겨울을 견뎌낸 나무가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듯, 지독한 고민과 고통을 겪어본 사람이 크게 성장할 수 있다.”

일본 트위터엔 ‘이나모리씨 장례를 국장(國葬)으로’란 말이 떠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아니라, 이나모리 회장 같은 인물이 국장에 합당하다는 생각이다. 정작 그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러졌고, 회사 측은 장례가 끝난 후에야 그의 죽음을 공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