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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익는 마을 안동…안동소주 말고 120살 막걸리도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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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앞으로는 낙동강이 크게 휘돌고 뒤로는 산이 에워싼 육지 속 섬 안동 맹개마을. 청량산 유랑길의 퇴계가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고 노래한 절경이다. 이 오지 마을에서 국내 유일의 밀 소주가 나온다. 마을에서 키운 유기농 밀로만 소주를 빚는다.

앞으로는 낙동강이 크게 휘돌고 뒤로는 산이 에워싼 육지 속 섬 안동 맹개마을. 청량산 유랑길의 퇴계가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고 노래한 절경이다. 이 오지 마을에서 국내 유일의 밀 소주가 나온다. 마을에서 키운 유기농 밀로만 소주를 빚는다.

경북 안동은 유교의 고장이다. 유교 공동체는 제(祭)를 통해 유지되고 지속했다. 제사에 꼭 오르는 제물이 술이다. 요즘도 안동에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제사를 드리는 문중이 여남은 곳에 이른다. 안동 권씨, 안동 김씨, 안동 장씨, 진성 이씨, 예안 이씨, 영천 이씨, 광산 김씨, 의성 김씨, 풍산 류씨 등… 한두 세대 전만 해도 문중마다 제삿술을 따로 빚었다.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의 자세는 여전히 안동 사람의 일상을 관통한다. 하여 안동의 대표 콘텐트는 의외로 술이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안동의 술도가 네 곳을 소개한다. 마침 전통주 시장이 급성장 중이다. 지난해 전체 주류시장에서 전통주 시장이 사상 최초로 1%를 넘었다(출고금액 기준).

안동으로 떠나는 술 여행

안동으로 떠나는 술 여행

명인 박재서 안동소주

‘명인 박재서 안동소주’는 3대가 함께 소주를 빚는다. 사진은 2대 박찬관 대표(왼쪽)과 3대 박춘우 본부장.

‘명인 박재서 안동소주’는 3대가 함께 소주를 빚는다. 사진은 2대 박찬관 대표(왼쪽)과 3대 박춘우 본부장.

안동 하면 안동소주다. 원래는 집에서 내려 먹었으나 지금은 9개 양조장에서만 만들어 판다. 9개 안동소주 중 양대 강자가 있다. ‘명인 박재서 안동소주’와 ‘민속주 안동소주’다. 두 곳 모두 농림수산식품부의 식품 명인으로 지정됐다. ‘민속주 안동소주’는 안동 음식문화의 대모 고(故) 조옥화(1922~2020) 명인이 빚은 소주다.

‘명인 박재서 안동소주’의 18년 숙성 소주.

‘명인 박재서 안동소주’의 18년 숙성 소주.

안동 음식 하면 조옥화 명인이지만, 시방 안동소주는 박재서 명인이 앞선다고 말해야 한다. 식품 명인에 박재서 명인은 1996년 6호로 지정됐고, 조옥화 명인은 2000년 20호로 지정됐다. ‘명인 박재서 안동소주’가 ‘명인’ 타이틀을 앞세우는 이유다. 무엇보다 박재서 명인의 소주가 더 잘 팔린다. 현재 안동소주 시장은 ‘명인 박재서 안동소주’가 40% 정도를 차지하고, 나머지 60%를 8개 양조장이 나눠 갖는다. ‘명인 박재서 안동소주’는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때 만찬주로 선정돼 평양에 간 적도 있다.

‘명인 박재서 안동소주’는 3대가 함께 빚는다. 박재서(85) 명인이 1대고, 양조장을 운영하는 박찬관(64) 대표가 2대고, 대학에서 미생물을 전공한 뒤 가업을 잇고 있는 박춘우(35) 본부장이 3대다. 박찬관 대표는 “전통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시도한 변화”를 성공 요인으로 꼽는다. 그의 말마따나 ‘명인 박재서 안동소주’는 젊은 입맛을 겨냥해 22도와 35도 안동소주도 만든다. 안동소주는 45도가 기본이다.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양조장에서 체험장도 운영한다. 체험장에서만 18년 숙성 안동소주를 15만원에 판다. 여느 안동소주보다 5배 비싸다.

264청포도 와인

‘264청포도와인’은 이육사의 시 ‘청포도’에서 비롯된 술이다. 안동 북쪽 시인의 고향 마을에서 키운 포도로 와인을 빚는다. 사진은 와이너리의 이동수 대표. 육사의 조카뻘 된다.

‘264청포도와인’은 이육사의 시 ‘청포도’에서 비롯된 술이다. 안동 북쪽 시인의 고향 마을에서 키운 포도로 와인을 빚는다. 사진은 와이너리의 이동수 대표. 육사의 조카뻘 된다.

안동에는 술이 된 시도 있다. 이육사(1904~44) 시인의 대표작 ‘청포도’의 첫 두 행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 이 시구에서 술이 나왔다. 시인의 고향 마을에서 포도나무를 심어 포도를 키우고 그 포도로 와인을 만든다. ‘264청포도 와인’은 시가 낳은 술이다.

육사는 퇴계 이황(1501~70)의 후손으로, 본명은 원록이다.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배달사건에 연루돼 1년 7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그때 수인번호가 ‘264’였고, 그 수인번호를 시인은 필명으로 썼다. ‘264청포도 와인’의 숫자 ‘264’도 여기에서 나왔다.

‘264청포도와인’ 와인 상자에 적은 이육사의 시 구절.

‘264청포도와인’ 와인 상자에 적은 이육사의 시 구절.

‘264청포도와인’은 세 종류로 모두 화이트 와인이다. 세 와인 이름도 육사의 시에서 따왔다. 광야, 꽃, 절정. ‘광야’가 가장 당도가 낮고 ‘꽃’이 당도가 제일 높다. ‘절정’은 13.5도로 도수가 가장 높다. 세 와인 상자에는 시구를 옮겨 적었다. 이를테면 ‘절정’에는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라는 구절이 있다.

육사의 조카뻘 되는 진성 이씨 이동수(61)씨가 와이너리를 맡고 있다. 원래는 와이너리 옆 마을에서 수박 키우는 농부였는데, 와인학교 다니며 소믈리에 자격증도 땄다. 포도는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청수’ 품종을 쓴다. 와이너리 주변 약 3만㎡ 면적에서 10개 농가가 포도를 키우고, 이들 농가의 포도만으로 와인을 빚는다. 하여 와인 생산량이 한정돼 있다. 올해는 포도 28톤을 수확해 750㎖ 기준 2만6000병을 생산할 예정이다. 와이너리, 도산서원, 퇴계종택, 이육사문학관 모두 근처에 모여 있다.

진맥소주

‘진맥소주’ 빚는 맹개마을에 들어가려면 트랙터 타고 낙동강을 건너야 한다.

‘진맥소주’ 빚는 맹개마을에 들어가려면 트랙터 타고 낙동강을 건너야 한다.

‘진맥소주’는 국내 유일의 밀로 빚은 소주다. 2019년 출시하자마자 전통주 시장에서 파란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애주가들의 호기심이 발동했고, 이내 술맛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해외 술 품평회에서의 잇단 수상 소식은 ‘진맥소주’ 바람을 한층 부추겼다.

‘진맥소주’는 안동에 정착한 IT 사업가 박성호(53) 대표의 작품이다. 안동 북쪽 끄트머리, 낙동강이 에워싼 육지 속 섬 같은 마을에 정착해 밀 농사를 짓고 그 농사지은 밀로 소주를 만든다. 도시 생활에 지친 박 대표가 찾아낸 오지 마을의 이름은 맹개마을. ‘진맥소주’ 빚는 ‘맹개술도가’의 이름도 거기에서 나왔다.

‘맹개술도가’ 박성호 대표. 프리미엄 밀 소주를 빚어 전통주 시장에 파란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맹개술도가’ 박성호 대표. 프리미엄 밀 소주를 빚어 전통주 시장에 파란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밀 소주가 낯설긴 하지만,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광산 김씨 집안에서 500년 가까이 내려오는 요리책  『수운잡방』에 밀로 빚는 소주에 관한 기록이 등장한다. 이 책에서 나오는 밀 소주의 이름이 ‘진맥(眞麥)소주’다. ‘진맥’은 밀을 뜻한다.

‘진맥소주’는 모두 다섯 종류다. 22도, 40도, 53도와 오크 숙성 40도와 54.5도. 모두 비싸다. 53도 200㎖가 온라인 쇼핑몰에서 5만원이 넘는다. 그래도 없어서 못 산다. 박 대표는 “주문받은 양이 이미 1년 치 생산량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손수 키운 유기농 밀만으로 소주를 빚는 데다, 발효 시설에도 한계가 있다.

맹개술도가는 ‘팜스테이’로도 유명하다. 맹개마을에서 TV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촬영한 뒤 명소가 됐다. 맹개마을에 들어가려면 박 대표가 모는 트랙터를 타고 낙동강을 건너야 한다. 객실이 모두 7개 있는데, 주말에 이용하려면 두 달 전에는 예약해야 한다.

회곡 생막걸리

올해 120주년을 맞은 ‘회곡 생막걸리’의 권용복 대표.

올해 120주년을 맞은 ‘회곡 생막걸리’의 권용복 대표.

안동에는 120년 역사의 막걸리가 있다. ‘회곡 생막걸리’다. 1902년 시작한 양조장이 3대에 걸쳐 내려온다. 198년 가업을 물려받은 주인공은 권용복(53) 대표. “전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변화를 게을리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양조인이다.

하여 ‘회곡 생막걸리’는 제품이 다양하다. 막걸리 양조장에서 안동소주도 만든다. 안동소주는 45도가 기본인데 42도, 32도, 22도 안동소주를 만든다. 독주에 약한 젊은 세대를 겨냥한 전략이다. 안동 쌀 ‘백진주’ 품종을 쓴 약주 ‘예미주’와 안동 자색고구마를 넣은 약주 ‘고백주’도 만든다. 물론 주력 상품은 생막걸리다. 하루에 3000~4000병 생산한다.

‘회곡 생막걸리’ 양조장에 있는 녹슨 간판은 50년이 넘었다.

‘회곡 생막걸리’ 양조장에 있는 녹슨 간판은 50년이 넘었다.

안타깝게도 경북 이외 지역에서는 ‘회곡 생막걸리’를 마시기 어렵다. 안동·영주·의성·군위·예천 등 경북에서만 판매해서다. 권 대표는 “막걸리 한 병 팔면 100원 남는데 심한 요구를 하는 유통업자가 많다”며 “믿을 만한 유통업자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생막걸리는 길어야 한 달이 유통기한이다.

‘회곡 생막걸리’를 못 먹어봤어도 ‘회곡 생막걸리’ 본연의 맛은 이미 경험했을지 모른다. ‘회곡 생막걸리’는 누룩 대신 쓰는 입국(당화 효소제)을 다른 양조장에 판다. 120년 세월이 발효와 함께한 시간이었으니, 누룩이든 입국이든 발효에 관한 한 자신이 있다. 권 대표는 “서울·경기도·충청도·경상도 등 전국 30여 개 양조장이 우리가 만든 입국을 쓴다”고 말했다.

‘회곡 생막걸리’는 탄산이 많지 않다. 톡 쏘는 맛은 덜한 대신 술술 잘 넘어간다. 너무 달지 않아서 좋았다. 10월 21일 120주년 기념행사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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