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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살인’ 공소장 바꾼 검찰…‘가스라이팅 살인’ 흔들리나

중앙일보

입력

 '계곡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은해(왼쪽)씨와 조현수씨가 지난 4월 19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계곡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은해(왼쪽)씨와 조현수씨가 지난 4월 19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수영을 하지 못하는 피해자로 하여금 이른바 ‘가스라이팅’을 통해 물속에 뛰어들게 한 다음 피해자에 대한 구호조치를 적기에 하지 아니함으로써 범행이 완성됐다. 피고인들의 살인 고의 및 살해 방법을 명확히 하고자 구호조치를 하지 아니한 사실을 공소사실에 추가하고자 한다”(검찰 관계자)

이번 달 말 결심 공판을 목표로 진행 중인 ‘계곡살인 사건’ 재판이 전환점을 맞았다. 1일 인천지법 형사15부(이규훈 부장판사)가 진행한 13번째 심리에서 검찰은 피고인 이은해(31)씨 등에 대한 공소장을 변경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부작위에 의한 살인도 염두에 두라”는 재판부의 요청에 따른 조치다. 재판부가 검찰의 공소장 변경 신청을 허가하면서 법조계 일각에선 ‘가스라이팅에 의한 살인’이라는 검찰의 논리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날 검찰이 추가한 공소내용엔 2019년 6월 30일 가평 용소계곡에서 피해자 윤모(당시 39세)씨가 계곡물에 빠진 뒤 이씨 등이 구호 조치를 하지 않은 구체적 상황이 담겼다. 검찰 관계자는 “피고인들은 살인 계획에 따라 피해자가 물에 뛰어든 직후 ‘악’ 소리를 내면서 허우적대는 모습을 목격했다”며 “이씨는 위 계곡의 모래톱에 구명조끼가 3벌 있었고, 조씨에게 튜브가 있어 즉각 피해자를 구조할 수 있었음에도 (동행한)A씨를 구명튜브를 가지러 가자고 유인해 계곡에서 약 58m 떨어진 곳에 비치된 구명튜브를 가지러 가는 방법으로 현장에서 이탈시키고 피해자에 대한 구호 조치를 적기에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씨에 대해선 “피해자와 약 5m 거리에서 튜브를 착용하고 있었음에도 피해자에게 튜브를 던져 주지 않았다”며 “피해자가 물속에 잠겼음에도 즉시 피해자가 빠진 위치 인근으로 다가가 물에 잠긴 피해자를 수색하여 물 밖으로 인도하는 등의 구호 조치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씨 등에게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도 적용할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표현이다.

그러나 검찰은 “부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혐의를 변경하는 것이냐”는 이씨 측 변호인의 질문엔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검찰 관계자는 “피고인들의 살인 행위와 관련된 사실관계를 명확해야 하기 위해 공소장을 변경했다”며 “검찰은 여전히 작위에 의한 살인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사건 당시 구체적 상황을 언급하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피해자가 물속에 빠짐으로써 피고인들에게 구호 의무가 생겼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은 부작위와는 달리 피고인들은 당초부터 피해자를 살해한 후 보험금을 취득하기 위한 살인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다”며 “두 건의 살인 미수 범행과 6월 30일 자 살인 범행은 그 이전의 살인 계획에 따른 행위였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작위적 요소와 부작위적 요소가 결합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볼 땐 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앞서 이 부장판사는 지난달 30일 “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기소한 검찰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공소장 변경도 검토해 달라”며 “검찰과 피고인 양측은 부작위에 의한 살인도 염두에 두고 (증인) 심문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이에 검찰은 “(현재 공소장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며 “필요하다면 서면으로 제출하겠다”고 답했다. 법이 금지한 행위를 직접 실행한 상황에는 ‘작위’, 마땅히 해야 할 행위를 하지 않은 경우에는 ‘부작위’라고 한다. 통상 작위에 의한 살인이 유죄로 인정됐을 때 부작위에 의한 살인보다 형량이 훨씬 높다.

“모른다”고 일관한 ‘키맨’

이은해씨와 조현수씨. 사진 인천지검

이은해씨와 조현수씨. 사진 인천지검

이날 재판에선 살인 및 보험사기방지특별법위반미수 혐의를 받는 B씨에 대한 증인심문이 진행됐다. 2019년 6월 이씨 등이 가평 용소계곡에 갈 때 동행했던 그는 이번 사건의 키맨으로 꼽힌다. 불구속 상태로 검찰수사를 받는 그의 증언이 공개된 건 이 날이 처음이다.

그날 이날 검찰 질문에 대부분 “알지 못한다, 모른다”는 답변으로 응수했다. B씨는 “윤씨가 물에 빠졌을 당시 현장에서 무엇을 했나”라는 검찰의 질문에 “수영을 잘하지 못하는데 경황이 없었고 물이 무서워서 물에 들어가질 않았다. 현장 주소를 몰라 인근 펜션으로 가서 주인에게 주소를 묻고 계속 개인 휴대전화로 소방대원과 통화했다”고 답했다. “‘이씨 등이 윤씨를 담그려고 한다. 돈 많은 양반이 있는데 사망하면 보험금 8억원이 나온다’는 말을 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그런 말을 한 적 없다”고 말했다. 피해자 윤씨의 수영 실력을 알았는지를 묻는 말엔 “수영을 잘 못 하는지 몰랐다”고 했다.

이날 법정엔 이씨의 동창도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이씨로부터 윤씨를 술에 취하게 만든 뒤 다른 여성과 스킨십을 했다고 속여 헤어지려는 계획에 참여하라는 제안을 받았으나 가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씨 등에 대한 다음 재판은 이번 달 22일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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