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한 시, 여전히 네온사인으로 밝은 거리 옆 강변에는 승객들을 태운 크루즈가 여유롭게 항해하고 있으며, 야시장에는 사람들로 붐빈다. 한 관광객은 거리 양쪽을 빼곡히 채운 네온사인을 가리켜 “마치 한때 인기 많던 일본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홍등거리 같다”고 말했다.
코로나19도 막지 못한, 중국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이곳은 바로 중국 도시 '창사(長沙)'다.
도시 평균 기온이 38도에 육박하는 올여름에도 창사 밤거리는 시민과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신소비, 신외식, 차옌웨써(茶顏悅色) 등 꼬리표가 더해지면서 창사는 일약 ‘왕훙(網紅)도시’로 부상했다. '야간경제'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 창사의 인기비결은 무엇일까?
중국서 손꼽히는 ‘야간경제’ 영향력 높은 도시
중국에서는 ‘왕훙도시’라고 하면 대부분 ‘창사’를 떠올린다. 올여름을 맞아 중국 SNS 샤오훙수(小紅書) 대학생 이용자 중 절반은 창사에, 나머지 절반은 충칭(重慶) ‘통신원’으로 활약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네티즌들은 창사 현지인조차 모르는 여행 코스를 공유하기도 했다. 특히 창사의 제팡시(解放西)는 베이징 싼리툰(三里屯), 홍콩 란콰이퐁과 함께 거론되는 나이트라이프 핫 플레이스다. 창사의 제팡시는 뉴욕 시간에 맞춰 돌아간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올해부터 자오리젠(趙立堅) 외교부 대변인은 두 차례에 걸쳐 개인 SNS 계정을 이용해 세계에 창사를 알리는 글을 업로드했다. 장칭웨이(張慶偉) 후난(湖南)성 서기는 젊은 친구들을 초청해 창사 명물인 차옌웨써를 방문하고 원허유(文和友)에서 맛집을 탐방했다. 또 샤오롱샤(小龍蝦)를 맛보고 제팡시를 여유롭게 산책하며 창사를 소개했다.
창사는 수년 전에 ‘전국 왕훙도시 8강(强)’ 중 하나이자, 중부 지역 1위를 기록한 이후 ‘왕훙도시’란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올해 1월, ‘2021년 중국 도시 야간 경제 영향력 10대 도시 목록’이 발표되었는데, 창사는 전국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또 ‘중국 10대 아름다운 삶의 도시’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으며, 14년 연속 ‘중국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 목록에 오르는 등 창사의 인기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졸업여행 소비 트렌드 보고’에 따르면 창사는 2022년 여름방학 중 졸업생에게 가장 환영받는 여행지로 나타났다.
이처럼 많은 중국인에게 사랑받는 창사지만, 혹자는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관광 중심지가 아니었던 평범한 창사가 ‘왕훙도시’로 될 수 있었던 원인은 도대체 무엇인가?” “왕훙도시의 인기는 지속될 수 있을까?”
이에 업계는 차옌웨써, 원허유, 싼둔반(三頓半, 캡슐커피·드립커피 등으로 유명한 프리미엄 인스턴트 커피 브랜드) 등 신생 브랜드의 ‘굴기’가 창사를 ‘신소비 브랜드 제조기’라는 타이틀을 얻게 했다고 분석했다.
최근 2년간 신소비의 빠른 발전에 힘입어 각 브랜드는 창사에 수많은 화젯거리를 불러왔다. 이와 함께 이들 브랜드는 ‘창사’ 꼬리표를 붙여 자사 제품에 ‘서민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딩쥔제(丁俊杰) 중국전매대학(中國傳媒大學) 학술위원회 부주임은 창사의 매력은 바로 이 ‘서민적인’ 모습에 있다고 설명했다. 수많은 도시가 고층 빌딩을 내세울 때, 창사는 특유의 거리감 없는 친근한 이미지로 대중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게 딩 부주임의 주장이다.
이는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21년 신(新)1선 도시 Z세대 청년 소비 동향 보고’에서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특정 도시를 좋아하는 원인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응답자 중 70% 이상이 “여유로운 삶, 강한 소속감, 현실 냄새가 나는(사람 사는 느낌이 나는) 곳”을 최우선 요소로 꼽았다.
산업 발전도 도시 이름 알리는 데에 ‘한몫’
창사가 유명 도시로 부상할 수 있었던 데에는 산업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창사는 지난 10년간 문화 콘텐츠, 관광, 건설기계, 자동차 및 관련 부품, 전자정보, 신소재, 식품 등 7개 분야에서 수천억 위안 규모의 산업 클러스터를 형성했다.
20년 전부터 후난웨이스(湖南衛視)로 대표되는 지역 방송은 창사가 속한 후난성의 문화 소프트 파워를 중국 전역을 넘어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 덕분에 창사는 UN에서 선정한 ‘세계 미디어 예술 도시’에 이름을 올렸다. 2020년 창사의 규모이상 문화(및 관련 산업) 기업 매출액은 1588억 9000위안(30조 6927억 8130만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 증가했다.
창사는 역사·문화와 우수관광도시로도 유명하다. 명절 기간 ‘전국 10대 인기 여행지’로 매번 선정된다. 2020년 창사의 관광 수입은 1661억 3000만 위안(32조 863억 4820만 원)으로 이는 전국 국내총생산(GDP)에서 13.7%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2021년 1~3분기 창사의 관광 수입은 1383억 5000만 위안(26조 7209억 1900만 원)으로, 그중 국내 관광 수입만 1383억 4000만 위안(26조 7162억 2080만 원)에 이른다.
건설기계의 경우 1978년 제1기계공업부건설기계연구소가 창사로 이전되면서 이곳은 중국 건설기계 연구기지가 되었다. 2000년, 후난성 정부가 건설기계 산업을 14대 중점 지원 산업으로 거론하면서부터 이 분야의 발전에 속도를 올리게 된다.
건설기계를 시작으로 창사는 2차 산업 발전에 초점을 둔다. 가전제품, 전자·제조, 무역, 소프트웨어 개발 등 여러 분야에서 이름난 일류 제조 기업이 창사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여기에 대형 선도 기업이 속속 진입해 설계, 연구·개발, 제조, 애프터서비스 등 대규모 산업 클러스트를 형성했다.
2010년 건설기계는 창사에서 첫 번째 1000억 위안(19조 3120억 원) 규모 산업 클러스터로 성장했으며, 산업규모는 전국 최대였다. 이후 현재까지 발전을 거듭해온 덕분에 창사에는 세계 50대 건설기계 기업 4곳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창사 건설기계 총생산액은 전국 33%, 세계 8.5%를 차지하고 있다.
건설기계로 대표되는 제조업의 고품질 발전은 창사 지역 발전의 기반이 되었다. 2022년 상반기 기준 창사 규모이상 공업 부가가치는 전년 동기 대비 8.6% 증가해 전국 평균 3.4%를 웃돌았다.
이 밖에도 창사는 자동차, 인공지능(AI) 및 로봇(센서 포함), 첨단 에너지 소재 및 생물 의약(유전기술 포함) 등 22개 산업 체인을 육성했다. 노력의 결실로 창사의 스마트 제조 설비 산업 클러스터는 첫 번째 국가 전략 신흥 산업 클러스터로 선정되었다.
창사는 전정특신(專精特新, 전문화·정밀화·특색화·참신화) '작은 거인(小巨人·강소기업)’을 육성하는 데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 창사 국가급(级), 성(省)급, 시(市)급 ‘작은 거인’은 각각 69개, 533개, 502개로 집계되었다.
이처럼 소프트 파워와 하드 파워의 ‘쌍끌이 성장’이 창사가 인기 명소로 거듭날 수 있었던 배경이라는 분석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창사는 인재 유치에도 힘을 쏟았다. 지난 수년간 창사는 산업 확대, 집값 조정, 인재 관련 정책 등을 통해 중국 청년들에 ‘취업·창업에 최적화된 꿈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심었다. 즈롄자오핀(智聯招聘)과 쩌핑훙관(澤平宏觀)이 공동으로 발표한 ‘중국 도시 인재 흡인력 랭킹’에 따르면 창사는 2021년 기준 중국에서 인재 유치력이 뛰어난 10번째 도시로 선정되었다.
‘젊은 세대를 사로잡는 곳이 천하를 얻는’ 시대인 요즘, GDP 1만 억 위안 이상, 인구 천만 명을 뛰어넘는 중부 도시, 창사는 ▲풍부한 문화 콘텐츠 ▲탄탄한 경제 기반 ▲새로운 소비문화로 젊은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차이나랩 이주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