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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중국 수출, 에너지 수입에 휘청…8월 무역적자 역대 최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22일 부산항 감만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2일 부산항 감만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수출·수입 가릴 것 없이 무역 전선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8월 무역수지 적자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5개월 연속 적자의 늪에 빠졌다. '수출 효자'로 꼽히는 반도체와 대(對) 중국 수출이 역성장하고, 수입은 에너지 가격 급등 속에 역대 1위를 찍었다. 당분간 뚜렷한 반등 요인이 없어 무역적자 추세는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8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은 566억7000만 달러, 수입은 661억5000만 달러로 잠정 집계됐다. 수출은 전년 동월보다 6.6% 늘었지만, 수입 증가 폭이 28.2%로 훨씬 컸다.

이에 따른 무역수지는 94억7000만 달러(약 12조8000억원) 적자로 나타났다. 무역 통계 작성 이래 월 기준 최대치다. 또한 4월부터 다섯달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다. 2007년 12월~2008년 4월 이후 14년 만이다. 올해 누적 무역적자(1~8월)는 247억3000만 달러(약 33조5000억원)로 1996년(206억 달러)을 훌쩍 넘겨 연간 최대 기록을 세우고 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수출액은 지난해 8월(531억7000만 달러)을 넘어 역대 8월 최고 실적을 경신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수출 증가율은 전년 동월 대비 6.6%로 6월(5.3%), 7월(9.2%)에 이어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특히 국내 수출 1위 품목인 반도체가 심상치 않다. 전 세계적인 수요 약화 등으로 1년 전보다 수출액이 7.8% 줄었다. 2020년 6월 이후 26개월 만의 역성장이다. 앞으로 신규 CPU 출시 지연, 재고 축적 등에 따른 가격 하락 가능성까지 크다. 올 1분기 3.41달러였던 반도체 D램 가격은 4분기엔 2.5달러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글로벌 수요 둔화 속에 반도체뿐 아니라 디스플레이, 무선통신, 컴퓨터 등 ICT(정보통신기술) 수출 전반이 내림세를 보였다.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의 수출 기상도도 계속 흐리다. 지난달 대중 수출은 1년 전보다 5.4%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6월(-0.8%), 7월(-2.7%)에 이어 3개월 연속 감소세다. 대중 무역수지도 3억8000만 달러 적자로 넉 달째 '마이너스'를 이어갔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30년만에 처음이다. 상하이 등 대도시에 대한 코로나19 봉쇄 조치 이후 경기가 빠르게 살아나지 않는 데다 중국 기업의 기술 경쟁력 강화 등이 겹쳤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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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반도체·석유화학 등의 수출이 주춤하는 모양새다. 문동민 산업부 무역투자실장은 "중국 수출 감소엔 반도체 수출 감소가 같이 맞물려 있다. 대중 수출에서 (비중이) 제일 큰 품목이 반도체인데 중국 내 수요가 둔화하는데다 국제 반도체 가격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에너지·중간재가 밀어 올린 수입은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660억 달러를 넘긴 지난달 수입액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가운데, 6개월 연속으로 600억 달러대를 상회하고 있다.

특히 한 달 동안 원유·가스·석탄 3대 에너지원을 수입한 금액은 185억2000만 달러로 지난해 8월(96억6000만 달러)보다 91.8% 뛰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유가와 LNG(액화천연가스), 석탄 가격 등이 모두 급증해서다. 여름철 폭염 등으로 에너지 수요까지 늘면서 수입 규모는 더 커졌다. 1년 새 3대 에너지원에서 늘어난 수입액(88억6000만 달러)이 월 전체 적자 규모와 맞먹는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전체 수입액을 끌어올리고, 늘어난 수입액이 무역적자 폭을 키우는 셈이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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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에너지발(發) 무역수지 악화는 다른 나라들도 겪고 있다. 한국처럼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일본과 이탈리아, 프랑스 등도 수입액 급증에 따라 적자가 심화하고 있다. 일본은 12개월 연속 적자가 발생했고, 이탈리아와 프랑스도 올 상반기 에너지 수입 증가율이 수백%에 이르렀다.

앞으로의 수출입 전망이 더 어둡다는 점에서 정부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금리 인상과 강(强)달러, 글로벌 경기 침체, 에너지 가격 인상 등 대외적 여건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무역적자는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문동민 실장은 "현 수준의 에너지 가격이 유지되면 연간 누계 무역적자는 지금보다 확대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올해) 남은 기간 연간 기준 흑자로 전환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무역적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에너지 수입 불안이 큰 변수로 꼽힌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난방에 쓸 가스·석탄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어서 북반구가 추워지는 11월부터 수입액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겨울이 끝나는 내년 2월까지는 에너지 대란이 개선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입 전선이 심상치 않자 정부는 지난달 31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 비상민생경제회의에서 수출 경쟁력 강화 전략을 발표했다. 수출 기업에 대한 무역금융 지원을 351조원으로 확대하고, 139건의 수출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극적인 무역수지 반등을 이뤄낼 뾰족한 수는 보이지 않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대통령이 수출 확대를 강하게 독려하는 등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한 범정부적인 의지를 더 보여야 한다. 무역수지가 개선돼야 원화 약세가 빨라지는 환율 시장도 안정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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