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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서열 3위' 리잔수 9월 방한 조율…'펠로시 패싱' 尹, 이번엔 만날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리잔수(栗戰書)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김진표 국회의장의 공식 초청으로 이달 중순 방한하는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지난달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을 만나지 않아 '패싱 논란'을 일으켰던 윤석열 대통령이 같은 급의 리 위원장은 직접 만날지 주목된다.

리잔수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중국 신화망.

리잔수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중국 신화망.

"의장 공식 초청…예우 만전"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1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달 아시아 순방 일정의 일환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 때와 달리 이번 리 위원장의 방한은 국회의장의 공식 초청 일정”이라며 “펠로시 의장 때와 달리 이번엔 의장실 차원의 외교 의전 등 예우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한국의 공식 초청으로 방한하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김 의장과의 공식 회담 외에도 윤 대통령과의 면담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중국 측이 윤 대통령 예방 일정을 우선 조율한 뒤 최종 방한 일정이 확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상무위원장은 한국의 국회의장 격으로, 시진핑(習近平) 주석, 리커창(李克强) 총리에 이어 중국 공산당 서열 3위다. 중국 상무위원장의 방한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장더장(張德江) 전 위원장 이후 7년만이다.

리 위원장은 시 주석을 비롯한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7인 중 하나다. 중국은 시진핑 시대 이후에 집단 지도 체제의 성격이 많이 퇴색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대부분 결정은 정치국 상무위에서 내리는 구조다. 리 위원장은 과거부터 한국 주요 인사와 각별한 인연을 맺고 한국에 대한 이해, 호감도가 상당하다고 한다.

리잔수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장. 신화통신.

리잔수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장. 신화통신.

尹 면담 성사가 관건

국회의장실과 전인대 측은 리 위원장이 오는 15~17일 방한하는 데 잠정 합의하고 구체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이는 윤 대통령이 19~20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 참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일정이라고 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2일 방한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으로부터 유엔 총회 참석 요청을 받았다.

리 위원장 측이 윤 대통령의 해외 출장까지 고려해 방한 일정을 겹치지 않도록 조율하는 건 그만큼 윤 대통령과 면담 상사에 주안점을 둔다는 의미다. 이번 방한은 공식적으로는 지난 2월 박병석 전 국회의장의 베이징 올림픽 계기 방중에 대한 답방 성격이자 한ㆍ중 수교 30주년을 기념한 협력 강화 목적이다. 다만 실제로는 윤 대통령 취임 후 시 주석과의 첫 한ㆍ중 정상회담에 대한 사전 조율이 핵심 의제라는 분석이다.

이광재 국회사무총장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경우에 따라 방한 일정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을 확정하게 될 다음달 16일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 전후가 될 수도 있다”며 중국 측이 정상회담 조율을 위한 윤 대통령과의 면담을 강하게 요청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일각에선 리 위원 방한에 이어 문재인 정부 내내 성사되지 않았던 시 주석의 방한이 연달아 이뤄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중국의 국가 주석과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연달아 방문할 가능성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과거에는 집단지도체제 최상부를 형성하는 정치국 상무위원의 경우 한 국가에 한 해에 한 명만 간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최근 몇 년 새 그런 원칙이 많이 유연해졌다"고 설명했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지난달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김진표 국회의장과의 회담에서 모두발언을 하는 모습. 우상조 기자.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지난달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김진표 국회의장과의 회담에서 모두발언을 하는 모습. 우상조 기자.

만나도 고민, 안 만나도 고민

외교가에선 “미ㆍ중 갈등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방한하는 리 위원장을 만나든, 만나지 않든 양쪽 모두 정치ㆍ외교적 부담을 안는 딜레마에 빠졌다”는 말이 나온다.

딜레마의 핵심은 리 위원장이 지난달 방한했던 펠로시 미 하원의장과 국가 의전 서열상 ‘동급’이라는 점이다. 당시 윤 대통령은 휴가를 이유로 펠로시 의장과 만나지 않는다고 밝혔다가, 뒤늦게 자택에서 전화 통화로 면담을 대신했다. 당시 펠로시 의장의 방한은 2002년 데니스 해스터드 전 의장 이후 하원의장으로는 20년만이었다.

당시 펠로시 의장의 아시아 순방국 가운데 국가 정상과의 면담이 이뤄지지 않았던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펠로시 의장이 한국에 오기 직전에 대만을 전격 방문해 중국의 강한 반발을 산 게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더해 펠로시 의장이 한국에 도착했을 때 한국 측 인사가 아무도 공항 영접에 나서지 않으면서 국내에서 ‘동맹 홀대론’이 불거졌고, 미국 측에서도 내심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외교적ㆍ정치적 동시 부담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리 위원장과는 별도 면담을 진행할 경우 당장 펠로시 의장 때의 전례와 직접 비교가 될 수밖에 없다. 김흥규 아주대 미ㆍ중정책연구소장은 “만약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았던 윤 대통령이 리 위원장만 만나게 될 경우, 중국은 ‘미국을 상대로 한 외교적 승리’라는 프레임으로 여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리 위원장과의 만남은 중국과 경쟁 전선을 확대하는 미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외교적 부담은 물론, 국내적으로도 자칫 윤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보수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있어 정치적으로도 부담이다.

리 위원장과 만나지 않는 선택지 역시 쉽지 않다.

1992년 한ㆍ중 수교 이후 방한했던 차오스(喬石)ㆍ리펑(李鵬)ㆍ우방궈(吳邦國)ㆍ장더장(張德江) 전 위원장 등 중국의 상무위원장들은 당시 대통령과 별도 면담을 했다. 만약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리 위원장과 만나지 않을 경우 상무위원장급 면담이 불발된 첫번째 사례가 된다. 또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방한한 고위급 인사를 대통령이 만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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