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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서울에선 못 마시나요…120년 안동 막걸리, 맛은 젊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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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술 기행④ 회곡 생막걸리 

Prologue

“안동을 상징하는 문화 콘텐트는 의외로 술입니다. 안동이 유교의 고장이기 때문입니다. 유교 공동체는 조상께 올리는 제(祭)라는 의식을 통해 유지되고 지속될 수 있었지요. 제사에서 반드시 필요한 제물이 술입니다. 요즘도 안동에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제사를 드리는 종가가 열 곳이 넘습니다. 안동 권씨, 안동 김씨, 안동 장씨, 진성 이씨, 예안 이씨, 영천 이씨, 광산 김씨, 의성 김씨, 풍산 류씨 등등... 한두 세대 전만 해도 문중마다 제사에 올리는 술을 따로 빚었었지요. 접빈객의 문화도 여전합니다. 손님이 오시면 술을 내는 전통이 안동에는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더욱이 안동은 소주의 도시입니다. 소주는 고려 시대 몽골이 들여왔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몽골군이 대규모로 주둔했던 지역, 그러니까 안동·개성·제주에 증류식 소주 문화가 내려오는 게 증거이지요. 안동을 이해하려면 안동의 술을 이해해야 합니다.”

경북 안동의 한국정신문화재단 권두현(56) 관광연구지원센터장이 십수 년 전부터 해오던 말입니다.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전통 문화의 핵심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오느냐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침 전통주 시장이 최근 들어 고속 성장 중입니다. 지난해 전통주 시장이 사상 최초로 전체 주류시장의 1%를 넘었다지요(출고금액 기준). 추석 명절을 앞두고 안동의 술을 소개하는 연재기획을 준비했습니다. 안동에는 안동소주만 있는 게 아닙니다. 개발한 지 3년 밖에 안 된 와인과 국내 유일의 밀 소주는 없어서 못 팔 정도입니다. 명인이 빚는 안동소주부터 120년 묵은 막걸리까지 안동의 술 네 개를 차례로 소개합니다. 오늘은 마지막 순서로 120년 역사를 자랑하는 회곡 생막걸리를 마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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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시 풍산읍 풍산농공단지 '회곡 생막걸리'에는 손 때 묻는 물건들이 많이 있다. 권용복 대표가 회곡 양조장 간판은 50년 가까이 된 것이라고 기억했고, 녹슨 철간판은 그 보다 더 오래된 것이라고 했다.

안동시 풍산읍 풍산농공단지 '회곡 생막걸리'에는 손 때 묻는 물건들이 많이 있다. 권용복 대표가 회곡 양조장 간판은 50년 가까이 된 것이라고 기억했고, 녹슨 철간판은 그 보다 더 오래된 것이라고 했다.

안동은 소주의 고장이다. 이 명제는 하도 강력해 안동이 막걸리의 고장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종종 잊게 한다. 전통 방식으로 소주를 빚으려면 막걸리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누룩 빚고 고두밥 지어 만드는 소위 ‘밑술’의 정체가 막걸리다. 밑술 위에 뜬 맑은 술을 살살 떠내면 동동주고, 밑술을 끓여 순백의 독한 알코올을 추출하면 소주다. 안동이 소주의 고장이라는 명제는, 안동이 막걸리의 고장이라는 전제 없이 성립할 수 없다. 좋은 막걸리가 있어야 좋은 소주가 나온다. 소주의 고장 안동에 120년 묵은 막걸리 양조장이 아직도 건재한 이유가 예 있다. 120년 역사를 읊는 막걸리의 맛은 생각보다 젊었다.

거룩한 족보

'회곡 생막걸리' 권용복 대표. 환하게 웃는 표정이 막걸리 맛처럼 순하다. 권 대표 주변에 있는 항아리가 옛날에 술을 담아두던 100년 넘은 술독들이다.

'회곡 생막걸리' 권용복 대표. 환하게 웃는 표정이 막걸리 맛처럼 순하다. 권 대표 주변에 있는 항아리가 옛날에 술을 담아두던 100년 넘은 술독들이다.

“할아버지가 1902년 양조장을 처음 시작하셨어요. 1937년 돌아가시고선 큰아버지가 물려받으셨고, 이어서 아버지(고 권재동씨)가 하셨어요. 아버지가 너무 일찍 돌아가셨어요. 1974년이었으니까 제가 여섯 살 때였네요. 그때부터 어머니(김숙자씨) 혼자 양조장을 맡으셨어요. 고생이 많으셨지요. 홀몸으로 막걸리 내리며 7남매를 키우셨으니까요. 1998년 IMF 외환위기 때예요. 옛날처럼 사람들이 막걸리를 마시지 않았고, 경기도 나빠졌을 때 어머니 건강도 안 좋아졌어요. 양조장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어머니가 고집을 꺾지 않으셨어요.”

‘회곡 생막걸리’ 권용복(53) 대표가 들려준 회곡 양조장 120년 약사(略史)다. 권 대표는 3대를 걸쳐 내려온 양조장의 다섯 번째 주인이다. 서울에서 직장생활하던 그는 24년 전 어머니의 긴급 호출에 기꺼이 낙향을 결심했다. 스물아홉 살 때였다.

“제가 7남매 중 여섯째이거든요. 형도 있고 남동생도 있는데, 어머니가 유난히 저에게 일을 많이 시키셨어요. 고두밥 푸고 풍로 돌리고 누룩 띄우고 이런 일들이요. 누룩 띄우는 날이 제일 힘들었어요. 누룩 띄울 땐 온도를 잘 맞춰야 하거든요. 2시간마다 누룩을 뒤집어줘야 해요. 누룩 띄우는 날은 거의 잠을 못 잤어요. 학교 다닐 때는 자전거 타고 부지런히 배달을 나갔었지요.”

발효 중인 밑술. 술을 걸러내고 남은 찌꺼기를 안동에선 '찌깨미'라고 한다. 권용복 대표가 어렸을 적 몰래 먹다 취해 쓰러졌다는 그 '불량한' 주전부리다.

발효 중인 밑술. 술을 걸러내고 남은 찌꺼기를 안동에선 '찌깨미'라고 한다. 권용복 대표가 어렸을 적 몰래 먹다 취해 쓰러졌다는 그 '불량한' 주전부리다.

다행히 어머니는 여전히 정정하시다. 요즘도 가끔 양조장에 들러 한바탕 잔소리를 퍼붓고 돌아가신단다. 어렸을 적 권 대표는 꼬리꼬리한 누룩 냄새가 싫지 않았을까. 그는 외려 “친구들한테 인기가 많았었다”며 활짝 웃었다.

“‘찌깨미’라고 아십니까? 막걸리 만들 때 걸러내고 남은 찌꺼기요. 요게 달달하니 먹을 만하거든요. 옛날에 주전부리 마땅치 않을 때 친구들이랑 몰래 찌깨미 좀 먹었지요. 친구들이랑 찌깨미 먹고 취해서 아무 데서 자다가 깜깜한 밤에 들어간 날도 있었네요. 죽도록 혼났습니다.”

10월 21일은 ‘회곡 생막걸리’ 120주년 기념식이 열리는 날이다. 10월 21일이 120년 전 양조장을 개업한 날은 아니다. 정확한 개업일을 몰라 추석 명절 보내고 하회탈춤페스티벌도 치르고 한갓진 날을 잡았다고 한다. 120년 세월을 자축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얘기로 이해했다.

전통의 재발견

'회곡 막걸리' 사무실에 손때 묻는 옛날 양조장 물건들을 모아놨다. 오른쪽 주전자처럼 생긴 게 소주 내릴 때 쓰던 소주고리다.

'회곡 막걸리' 사무실에 손때 묻는 옛날 양조장 물건들을 모아놨다. 오른쪽 주전자처럼 생긴 게 소주 내릴 때 쓰던 소주고리다.

시방 ‘회곡 생막걸리’는 회곡에 없다. 원래 풍산읍 회곡리에 양조장이 있어 회곡 막걸리였는데, 2014년 풍산읍 괴정리의 풍산농공단지로 옮겨왔다. 회곡에서 약 10㎞ 외곽에 있다. 양조장 주변 지역이 수자원 보호구역으로 묶여 어쩔 수 없었다. 농경단지로 이사올 때 옛날 양조장 물건들을 챙겨왔다. 녹슨 간판과 깨진 소주고리, 낡은 술독들. 100년 넘은 술독은 공장 마당에 모아뒀다.

농공단지로 이전한 지 3년 만에 ‘회곡 생막걸리’는 일대 전환을 모색한다. 안동소주를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100년 넘게 밑술 만들던 양조장이니 소주 내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옛날에 아버지가 막걸리 내리는 틈틈이 소주를 내려 먹기도 했었단다. 앞서 말했듯이 막걸리가 좋아야 소주도 좋다.

“전통은 지키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다고 변화를 게을리해서도 안 됩니다. 기존 제품은 기존 제품대로 만들고, 저는 새 제품에 계속 도전하고 있습니다. 안동소주를 45도가 아니라 42도로 만드는 건, 독주에 약한 요즘 입맛을 고려해서입니다.”

‘회곡 생막걸리’는 의외로 제품이 다양하다. 안동소주도 42·32·22도 세 종류가 있고, 안동소주에 국화를 우려낸 ‘국화주’도 도수에 따라 세 종류가 있다. 여기에 찹쌀처럼 찰기가 있는 안동 쌀 ‘백진주’ 품종을 쓴 약주 ‘예미주’와 안동 자색고구마를 넣은 약주 ‘고백주’가 더해진다. 물론 주력 상품은 생막걸리다. 하루에 3000∼4000병 정도 생산한다.

'회곡 생막걸리'애서 만드는 약주 라인업. 왼쪽 '예미주'는 '백진주'라는 안동 쌀을 쓴 약주고, 오른쪽 검은 병의 술이 안동 자색고구마를 넣은 '고백주'란 약주다.

'회곡 생막걸리'애서 만드는 약주 라인업. 왼쪽 '예미주'는 '백진주'라는 안동 쌀을 쓴 약주고, 오른쪽 검은 병의 술이 안동 자색고구마를 넣은 '고백주'란 약주다.

안타깝게도 서울에서 ‘회곡 생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안동을 비롯한 영주·의성·군위·예천 등 경상북도 지역에서만 판매해서다. 권 대표는 “막걸리 한 병 팔면 100원 남는데 심한 요구를 하는 유통업자들이 많다”며 “믿을 만한 유통업자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생막걸리는 길어야 한 달이 유통기한이다.

‘회곡 생막걸리’를 못 먹어봤어도 ‘회곡 생막걸리’ 본연의 맛은 이미 경험했을지 모른다. ‘회곡 생막걸리’는 누룩 대신 쓰는 입국(당화 효소제)을 다른 양조장에 판다. 120년 세월이 발효와 함께한 시간이었으니, 누룩이든 입국이든 발효에 관한 한 자신이 있다. 권 대표는 “서울·경기도·충청도·경상도 등 전국 30여 개 양조장이 우리가 만든 입국을 쓴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이 있어요. 손님이 오면 절대로 그냥 보내지 말라고. 술이 없으면 물이라도 대접하라고. 그런 마음으로 평생 술을 빚으셨어요.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으로요.”

안동에 오면 자주 듣는 얘기다. 접빈객(接賓客). 안동 사람의 일상을 지배하는 문화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걸리 양조장에서도 들을 줄은 몰랐다. 안동은 안동이다.

회곡 생막걸리

회곡 생막걸리. 모델이 유오성 배우다. 권용복 대표와 형 동생 하는 사이여서 출연료 없이 모델을 해줬다고 한다.

회곡 생막걸리. 모델이 유오성 배우다. 권용복 대표와 형 동생 하는 사이여서 출연료 없이 모델을 해줬다고 한다.

‘회곡 생막걸리’는 탄산이 많지 않다. 권용복 대표는 “막걸리를 완전 발효하기 때문에 탄산이 적다”고 말했다. 하여 막걸리 특유의 톡 쏘는 맛은 덜하다. 대신 술술 잘 넘어간다. 달지도 않다. 대신 맛이 깔끔하고 뒤끝이 없다. 경북 지역 마트에서 1병에 1600∼1800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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