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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진 쇄신 요구 초선이 막는다…朴·MB때와 반대인 '거꾸로 여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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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성일종 정책위의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성룡 기자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성일종 정책위의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성룡 기자

당헌 개정 및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복원을 추진 중인 국민의힘 내부에서 “초선과 중진의 역할이 뒤바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 지도부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야 할 초·재선들이 권성동 지도부의 비대위 복원에 적극 동조하는 반면, 3선 이상 중진들이 일제히 “권성동 즉시 퇴진”을 요구하며 지도부 교체·최고위 복원을 요구하고 있는 데 대한 반응이다.

지난 26일 법원의 주호영 비대위원장 직무정지 결정 이후 당 지도부에 대한 비판을 주도한 건 중진그룹이었다. 27일 긴급 의원총회에서 권성동 원내대표를 비롯한 친윤계가 새 비대위를 출범시키는 당헌 개정안을 주도하자, 최다선(5선)인 조경태 의원이 다음날 기자회견을 열어 “불리하다고 당헌·당규를 고치는 건 민주당과 다를 바 없는 내로남불식 처방이자, 윤석열 대통령이 주장했던 공정과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3선의 하태경 의원도 페이스북에 “당이 민주주의도 버리고 법치주의도 버리고 국민도 버렸다”고 썼다.

30일 두번째 의총에서 ‘비상상황’을 규정한 당헌 제96조1항 개정안 강행 움직임이 일자 이번에는 4선 윤상현 의원이 “새 비대위를 구성하는 것은 편법이고 탈법이고 꼼수”라며 “민심을 거스르는 것은 정치도 상식도 아니다”라고 지도부를 직격했다. 당권 주자로 꼽히는 안철수(3선) 의원도 “법원 판단대로 다시 최고위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날 의총은 결국 66명 의원들의 당헌 개정안 박수 찬성으로 마무리됐다. 한 참석자는 “박수 표결에 참석한 대부분이 친윤계 중심 초·재선”이라며 “27일 긴급 의총 때부터 초선 의원 몇몇이 ‘비대위를 이어가야 한다’고 지도부 동조에 앞장섰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철규·정점식·김정재 의원 등 친윤계 재선들은 30일 의총 직후 별도 기자회견을 열어 “일부 중진의원들을 중심으로 대안도 없이 당을 흔드는 언행을 계속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발표했다.

국민의힘 이철규 의원 등 재선의원들이 지난달 30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당내 상황을 조기에 수습하기 위해 조속히 새 비대위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철규, 이만희, 정점식, 송석준 의원. 김성룡 기자

국민의힘 이철규 의원 등 재선의원들이 지난달 30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당내 상황을 조기에 수습하기 위해 조속히 새 비대위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철규, 이만희, 정점식, 송석준 의원. 김성룡 기자

당 안팎에서는 “초·재선들이 차기 총선 공천을 의식해 지나친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관계자) 눈치보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2대 총선 공천을 지휘할 차기 당권 주자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현 지도부나 실세 그룹에 잘못 보였다간 당장 내년에 시작될 공천 국면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초·재선 의원들 사이에 만연하다는 것이다.

익명을 원한 초선 의원은 “대통령실에서 강도 높은 인적 쇄신을 단행하는 와중에 여당 의원 누가 공천 불안을 느끼지 않겠느냐”며 “다들 대세를 따르며 좀 지켜보자는 생각이 강하다”고 말했다.

재선 그룹에서도 “우리 당에서 제일 눈치 잘 보는 게 재선”(PK지역 재선 의원)이란 자조적인 평가가 나온다. 계파 논란으로 출범이 지연되고 있는 당내 친윤계 모임 ‘민들레’(민심 들어볼래) 구성원 90%가량이 당내 초·재선이다. ‘윤심(윤 대통령의 마음)에 따르는 것이 안전하다’는 초·재선 그룹의 기류가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나라당 초·재선 소장파 의원의 모임인 '새로운 한나라' 의원들의 2011년 5월 모습. 당시 비대위의 역할과 위원 구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남경필, 권영진, 정태근, 구상찬, 김성태, 정두언, 김성식 의원. 중앙포토

한나라당 초·재선 소장파 의원의 모임인 '새로운 한나라' 의원들의 2011년 5월 모습. 당시 비대위의 역할과 위원 구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남경필, 권영진, 정태근, 구상찬, 김성태, 정두언, 김성식 의원. 중앙포토

이는 초선이 개혁·쇄신의 상징이던 역대 보수정권의 모습과도 다르다. 이명박 정권 시절인 2010년 6월 김성식·김학용·정태근 등 한나라당 초선의원 6명이 ‘우리의 입장’이라는 한장짜리 연판장을 돌려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수정하라”며 청와대와 당 지도부를 저격한 일이 대표적이다. 당시 중진 그룹이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당일에만 초선 89명 중 절반 넘는 48명이 연판장에 실명을 올려 “청와대 참모진을 개편하고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하라”고 요구했다.

박근혜 정권 초였던 2013년 4월에도 새누리당 초선 정책개발 모임 ‘초정회’가 이정현 청와대 정무수석을 국회로 불러 소통 부재에 항의한 장면이 있었다. 이 수석이 ‘당과 청와대의 소통’을 주제로 1시간 30분간 특강을 했는데, 그걸 들은 초선들이 “부동산 대책을 언론 보고 알았다”, “정무수석만 오지 말고 여러 수석들이 다 와야 한다”고 반발했다.

대세를 따라가는 초·재선들의 모습에 대해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민주당은 수도권에 지도부를 전면 배치하면서 총선 준비가 착착인데, 우리 당은 초선들마저 윤심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며 “이러다 민심과 멀어져 큰일난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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