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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주면 판교 취업" 이런 시절 끝났다…코딩 배운 문과생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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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달 29일 찾은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A 컴퓨터 학원. 학원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모니터에는 ‘개발자 학원으로 가는 직장인들’ ‘개발자 모시기 전쟁’ 등의 문구가 나오는 영상이 잇따라 흘러나오고 있었다. “개발자로 구직하려한다”고 상담을 요청했다. 주변에 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 두 명 더 있었다. 상담자로 나온 사람은 “진입 장벽도 낮고 연봉 조건도 나쁘지 않아 비전공자들이 상당히 문의하고 있다”며 “6개월 만에 취업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 반에 비전공생이 30%는 된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학원들의 감언이설과는 달리 현실은 녹록지 않다. “판교에 취업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개발자에 도전했지만 많은 이들이 구직시장에서 고배를 마시고 있다. 특히 인문학, 사회과학 등을 전공한 비전공자 출신 개발자 준비생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회학을 전공하고 프론트엔드(웹페이지 등 사용자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부분을 구현하는 일) 직군 취업을 원하는 박모(29)씨는 세 번이나 부트캠프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취업하지 못했다. “20곳 넘게 이력서를 보내고 채용 면접도 봤지만 마땅한 자리를 구하지 못했다”며 “작년에 신입채용을 한다고 해도 대대적으로 홍보하던 기업도 올해는 소식이 뚝 끊겼다”고 말했다.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몰려있는 경기도 성남시 판교 테크노밸리의 모습. 김남영 기자.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몰려있는 경기도 성남시 판교 테크노밸리의 모습. 김남영 기자.

개발자 인기에 전직 도전 문과생 고배 

부트캠프 업체들은 “비전공자도 취업 가능하다”며 온라인에서 광고하고 있다. 사진 네이버 캡처.

부트캠프 업체들은 “비전공자도 취업 가능하다”며 온라인에서 광고하고 있다. 사진 네이버 캡처.

지난해 ‘개발자 구인난’ 이 이슈화되면서 문과 출신 직장인‧취업준비생들이 대거 학원‧부트캠프(단기 코딩교육 프로그램)를 디딤돌 삼아 전직 시도에 나섰지만 갑작스러운 한파로 궁지로 몰렸다. 개발자 입도선매 경쟁에 나섰던 정보기술(IT) 기업들이 경기침체 전망이 뚜렷해지자 채용범위를 신입이 아닌 경력직 또는 고학력 전공자 중심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단기간에 누구나 개발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은 학원가의 메아리가 된 셈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부 부트캠프는 비전공생이어도 8주, 16주 교육이면 취업이 가능하다고 홍보한다.

서울 4년제 대학에서 미디어 관련 전공을 한 신모(30)씨는 사무직으로 2년 일하다 개발자 전직을 결심했다. 올해 5개월 동안의 부트캠프를 끝냈으나 여전히 구직 중이다. 신씨는 “취업이 잘되고 처우도 좋다고 해서 개발자 전직을 준비했던 건데 구직시장이 많이 얼어붙었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에 “경력·유관 전공 우대”

그래픽=김현서 기자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기자 kim.hyeonseo12@joongang.co.kr

실제로 IT 부문 채용 시장의 경력자 우대 경향은 올해 들어 뚜렷해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가 지난 7월 발간한 소프트웨어산업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소프트웨어 부문 채용예정 인원은 신입직은 5700명, 경력직은 1만600명이었다. 2021년(신입직6600명·경력직8900명)에 비해 전체 채용 규모는 늘었지만, 신입 채용이 감소한 것이다.

비전공 신입 개발자도 닥치는 대로 뽑던 지난해의 분위기 찾아볼 수 없다. 올해 실적 저하와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업계는 인건비 부담 증가에 경계심을 보이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해 1100명에서 올해 700명 수준으로 채용 규모 줄일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회사 베스파는 지난 7월 90% 이상의 직원을 권고사직케 해 뉴스가 됐다. 비전공자 출신으로 앱 개발 분야에 구직 중인 장모(29)씨는 “면접까지 갔지만 대놓고 경력이 부족해 어렵겠다는 말도 들어봤다”고 말했다,

공급은 초급, 수요는 고급…“학원 출신 거른다”

애초부터 학원가의 홍보와 기업 현장의 번지수가 달랐다는 지적도 나온다. 단기 교육을 통해서 노크할 수 있는 분야는 진입장벽이 낮은 프론트엔드, 앱 개발 분야 등으로 한정되지만, 업계에선 고숙련 기술이 요구되는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분야 등의 즉시 전력감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IT업계 관계자는 “필요 이상의 초급 개발자들이 쏟아지고 있어 학원 출신, 부트캠프 출신 개발자는 일단 거른다는 말도 있다”고 말했다.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대학원 교수는 “개발자라고 하면 무조건 억대 연봉일 것이라는 환상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고숙련 개발자들과 저숙련 개발자 처우가 완전히 이원화돼 있다”며 “정부도 개발자들 사이의 임금 차이, 처우 등에 대한 정보가 구직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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