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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전 평양에 골프장이?…캐디 찍힌 골프장 흑백사진 '깜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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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과거 평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조선시대부터 평양의 변화과정을 고스란히 담은 자료집이 발간됐다.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산하 평양연구센터가 30일 출판기념회를 한 『평양의 옛지도』 표지. 『평양의 옛지도』는 1590년부터 20세기 초까지 평양의 모습을 담은 지도 65점을 수록했다. 『평양의 옛지도』표지.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산하 평양연구센터가 30일 출판기념회를 한 『평양의 옛지도』 표지. 『평양의 옛지도』는 1590년부터 20세기 초까지 평양의 모습을 담은 지도 65점을 수록했다. 『평양의 옛지도』표지.

옛 지도와 회화 형식으로 평양의 시각 자료를 한군데 모아 놓은 것이다.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산하의 평양연구센터(운영위원장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전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는 지난달 30일 『평양의 옛지도』 출판기념회를 하고, 최초의 평양 지도 자료집을 공개했다.

정 위원장은 “그동안 평양과 관련해선 자료 접근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평양에 대한 연구, 즉 평양학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기초 연구자료를 수집하는 차원에서 국내외 박물관에 산재한 자료를 모아 기초 연구 자료집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평양의 옛지도』 는 1590년에 제작된 ‘평양관부도’(平壤官府圖)부터 일제시대에 제작된 지도까지 65점의 자료를 담았다. 현재 접할 수 있는 평양 관련 지도를 총망라했다는 평가다. 자료집 편찬에 참여한 박정애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연구교수는 “지도는 한 시대를 읽을 수 있는, 그리고 시대를 전하는 가장 강력한 물적 증거”라며 “이번에 발간한 자료집은 평양의 인구가 늘어나고 도시 규모가 커지는 등 발전상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다”고 말했다.

 1590년 목판화로 발간된 평양관부도. 관찰사 집무실인 상아(上衙, 네모) 등 관공서가 표시돼 있다. 원본은 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사진 『평양의 옛지도』촬영

1590년 목판화로 발간된 평양관부도. 관찰사 집무실인 상아(上衙, 네모) 등 관공서가 표시돼 있다. 원본은 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사진 『평양의 옛지도』촬영

 1730년에 제작된 평양관부도. 과거 평안도관찰사가 머물던 '상아'(上衙)의 위치에 부관찰사인 서윤의 집무실 이아(二衙, 원)가 들어서고, 상아는 상영(上營, 네모)으로 바뀌었다. 원본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사진『평양의 옛지도』촬영

1730년에 제작된 평양관부도. 과거 평안도관찰사가 머물던 '상아'(上衙)의 위치에 부관찰사인 서윤의 집무실 이아(二衙, 원)가 들어서고, 상아는 상영(上營, 네모)으로 바뀌었다. 원본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사진『평양의 옛지도』촬영

1590년 제작된 평양관부도엔 관찰사의 집무처였던 상아(上衙)의 위치가 대동문(평양 내성의 동문)을 중심으로 평양 내성 왼쪽에 표시돼 있다. 그러나 1730년 제작된 평양관부도엔 상아가 상영(上營)으로 명칭이 바뀌고 위치도 평양 내성의 북서쪽으로 이동했다. 대신 상아가 있던 자리엔 평양 서윤(부시장)의 집무실인 이아(二衙)가 들어서 있다. 조선 중기 평양에 있던 관청의 위치가 변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또 1804년 평양에 대화재가 발생해 주요 건물이 소실됐을 때 평양 8경 중 하나였던 애련당도 화재 직후 제작된 지도에는 그려지지 않다가 1890년 이후에 다시 등장하는 것도 주요 시설물의 설치 시점을 확인할 수 있는 예다.

 19세기말~20세기 초에 평양의 모습을 담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기성전도(箕城全圖). 제목에 '평양'대신 '기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 지도에는 종로3가와 종각, 냉면가 등이 기재돼 있다.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산하 평양연구센터가 지난 30일 중앙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기성전도 등을 담은 『평양의 옛지도』 자료집을 출간했다. 사진『평양의 옛지도』촬영

19세기말~20세기 초에 평양의 모습을 담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기성전도(箕城全圖). 제목에 '평양'대신 '기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 지도에는 종로3가와 종각, 냉면가 등이 기재돼 있다.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산하 평양연구센터가 지난 30일 중앙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기성전도 등을 담은 『평양의 옛지도』 자료집을 출간했다. 사진『평양의 옛지도』촬영

무엇보다 조선 후기에는 ‘평양’이나 ‘유경’보다 ‘기성’이라는 표현이 대거 등장하는 점이 눈길을 끈다. 박 교수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평양의 지도 제목이 기성전도(箕城全圖)라고 돼 있다“며 ”이는 당시 사람들이 평양보다는 기성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19세기말~20세기 초에 평양의 모습을 담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기성전도(箕城全圖). 제목에 '평양'대신 '기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 지도에는 종로3가와 종각(큰 원 안), 냉면가(작은원) 등이 기재돼 있다.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산하 평양연구센터가 지난 30일 중앙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기성전도 등을 담은 『평양의 옛지도』 자료집을 출간했다. 사진『평양의 옛지도』촬영

19세기말~20세기 초에 평양의 모습을 담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기성전도(箕城全圖). 제목에 '평양'대신 '기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 지도에는 종로3가와 종각(큰 원 안), 냉면가(작은원) 등이 기재돼 있다.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산하 평양연구센터가 지난 30일 중앙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기성전도 등을 담은 『평양의 옛지도』 자료집을 출간했다. 사진『평양의 옛지도』촬영

특히 이 지도에는 대동문 인근에 ‘종로3가’와 ‘종각’(현 승리거리로 추정)이라고 적시해 조선시대 평양에도 종로와 종각이 있었던 사실을 보여준다. 또 이 지도의 하단(대동문 남쪽)에는 냉면가(冷麵家)라고 적어놔 이미 당시에 평양에 냉면 식당이 유행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1930년 전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평양부 안내지도. 지도와 함께 실린 사진에는 두 명의 캐디를 대동한 인사 2명이 평양골프장에서 골프를 즐기고 있다. 원본은 서울시립대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사진『평양의 옛지도』촬영

1930년 전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평양부 안내지도. 지도와 함께 실린 사진에는 두 명의 캐디를 대동한 인사 2명이 평양골프장에서 골프를 즐기고 있다. 원본은 서울시립대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사진『평양의 옛지도』촬영

자료집은 일본이 청나라와 전쟁을 위해 1894년 9월 제작한 평양전투도와 영문으로 제작된 평양 안내지도 등도 담고 있다. 1930년 전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어판 평양 안내도엔 2명의 인사가 2명의 캐디를 대동하고 골프를 즐기는 흑백사진이 실렸다.

조유현 평양연구센터장은 ”이번에 발간한 『평양의 옛지도』는 평양학을 연구하기 위한 연구총서의 첫 번째 결과물“이라며 ”지역학적인 관점에서 평양의 도시적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한 심층 연구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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