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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홍성남의 속풀이처방

혐오 문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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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

우리 사회에 혐오 문화가 퍼져나가고 있다. 오래전에는 정치적 혐오가 범람해서 좌파 혐오와 우파 혐오가 사회를 갈라놓았고, 지역 혐오로 인하여 이웃 간에 심리적 괴리감을 만들었다. 그런데 혐오는 시간이 가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장되어 노인들을 틀딱충, 아이 엄마들을 맘충이라고 칭하며 사람을 벌레 취급하는 심각한 혐오 문화가 생겼다. 최근에는 여성 혐오, 남성 혐오, 장애인 혐오까지 심화하여 우리 사회가 문화적 말기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혐오 문화는 코로나바이러스처럼 전염력이 강하고, 인간을 괴물로 만드는 참담한 결과를 낳기에 반드시 막아야 한다. 인종차별과 유사하게 사회를 분열시키고 근거 없는 적개심으로 사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증가하는 것이다.

이성·노인·장애인 등 비하
전염병처럼 번진 혐오증
품위 있는 언행만이 백신
괴물사회 되는 건 막아야

지난달 22일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방문한 관람객이 2차 대전 당시 나치에 희생된 유대인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달 22일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방문한 관람객이 2차 대전 당시 나치에 희생된 유대인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중세 가톨릭의 마녀사냥, 크메르루주의 도시민 학살, 제주의 양민 학살 등 사건들의 이면에 혐오 문화가 존재함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혐오론자들이 혐오를 유발하여 얻는 이득은 무엇인가.

첫째는 범죄 행위의 합리화이다. 히틀러는 유대인들을 가두고 학대하였다. 외적으로 몰골이 망가진 유대인은 독일인의 혐오 대상이 되어서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군은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어떤 사람이나 동네를 제거하거나 철거할 때 혐오스럽게 만드는 술책이 사용되고는 한다.

두 번째는 문제 은폐이다.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을 돌리기 위해 혐오 대상을 만드는 것이다. 일본 우익 정권은 혐한 전술을 끈질기게 사용하는데, 이는 자신들의 실정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서이다. 일본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혐오를 퍼뜨린 것이 그 예이다.

세 번째는 사적 이득이다. 유럽의 남미 원주민 혐오는 남미 수탈을 위한 혐오론이었고, 중세 마녀사냥 역시 마녀로 몰린 사람들의 돈을 노린 혐오범죄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개신교의 빤스목사로 알려진 자는 전 정권을 비난하여 혐오대상으로 만들고 자신은 애국지사인 척하였다. 그러고는 뒷전으로 정치인과 야합하고 사익을 추구함으로써 건강한 목회자조차 고개를 들지 못하게 하였다. 혐오를 이용하여 돈벌이한 것인데 여전히 당당하다.

네 번째, 병적인 자기도취이다. 혐오는 병적인 선민의식을 만들고, 이는 다시 신분상승 욕구를 부추기며 자기기만을 하게 된다. 즉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지 못하고 스스로 만든 것에 도취되어 마치 마약을 투여한 환자처럼 망상 속의 쾌감을 누리고자 한다.

그렇다면 혐오론자들의 병적인 심리는 무엇인가. 역설적이게도 자기혐오이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방문했었다. 지금도 시체를 태운 역겨운 냄새가 가시지 않은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것을 보게 되었다. 독일인 장애인의 유골과 유품이다. 히틀러는 순수혈통을 만들기 위해 독일 장애인을 대량학살하였는데, 이것은 히틀러 자신이 자기혐오가 강한 사람이었음을 입증한다.

이들은 거의 변태 성욕자들이다. 다른 사람을 학대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자들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학대받기를 원하거나 자학이 심하거나 성장 과정에서 학대를 받은 사람들이다. 또한 이들은 자아가 취약하다. 그래서 개인의 소리를 내지 못하고 집단의 소리에 얹혀서 소리를 낸다. 한마디로 찌질한 것들이다.

또한 이들은 방화광과 유사한 심리를 가지고 있다. 방화광은 화재에 의한 인명, 재산 피해에는 무관심하다. 사람들이 피해 입고 재산이 파괴되는 것을 보고 즐긴다. 이들은 만성적인 개인적 좌절을 겪은 자들이며, 평균 이하의 지능을 가진 자들이다. 사회적 루저들이 사람에 대한 혐오감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혐오론자들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누가 나를 혐오하지 못하게 하려면 고개를 숙이면 안 된다. 그들의 공격성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품위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언어도 삶도 품위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사용하는 말이 수준 높으면 아무도 그를 무시하지 못한다. 역으로 아무리 명품으로 도배했어도 사용하는 말이 천박하면 무시를 당한다.

우리는 혐오문화를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을 혐오하는 분위기는 사회적 수준을 하향시키며, 국가 자체를 몰락시킬 수도 있다. 우리도 나라가 침몰하지 않으려면 혐오문화를 제거하고 건강한 문화가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