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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원의 전격 2선 후퇴…윤핵관에 실망한 尹심 반영됐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비공개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비공개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가처분 정국’ 속에서 침묵하던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31일 “윤석열 정부에서 어떠한 임명직 공직을 맡지 않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2선 후퇴 선언이다.

장 의원은 이날 오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최근 당의 혼란상에 대해 여당 중진 의원으로서, 인수위 시절 당선인 비서실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무한 책임을 느낀다”고 썼다. 그러면서 “저는 이제 지역구 의원으로서의 책무와 (국회) 상임위원회 활동에만 전념하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장 의원은 최근 불거진 ‘장핵관’(장제원 의원 측 핵심 관계자) 논란을 의식한 듯 “계파 활동으로 비춰질 수 있는 모임이나 활동 또한 일절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가 '계파 모임'을 언급한 건 앞서 자신이 친윤계 공부 모임 ‘민들레’ 창설을 추진하면서 당내에서 파열음이 난 걸 의식했다는 해석이다.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관계자)그룹이 분화해 '장핵관'과 '권핵관'(권성동 원내대표 측 핵심 관계자)로 세력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시각도 있었다.

장 의원은 “언론과 정치권 주변에서 사실과 다르게 말하거나 과도하게 부풀려져 알려진 것들이 많이 있지만 모든 것이 저의 부덕”이라며 “당이 갈등을 최소화하고 빨리 정상화됨으로써 윤석열 정부를 성공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게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간 당 상황에 대해 직접 언급을 자제해왔던 장 의원이 이같은 입장문을 낸 건 이례적이다. 장 의원은 앞서 이준석 전 대표가 자신에 대해 ‘삼성가노’ 등 원색적인 비난을 할 때도 직접 대응을 하지 않았다. 지난 25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 국민의힘 연찬회에선 현안 언급은 삼간 채 윤석열 대통령이 도착하기 전 먼저 자리를 뜨기도 했다.

이날 장 의원이 전격적으로 입장문을 낸 건 최근 대통령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규모 감찰과 관련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 인적쇄신 대상 대부분이 장 의원 등 윤핵관들이 추천한 인물들이고, 대통령실 수뇌부도 "윤 대통령이 아닌 자신을 추천한 이들에게 충성해온 사람들을 솎아 내겠다"고 공공연히 밝혀왔다. 장 의원이 대통령실의 감찰 드라이브에 부담을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이 감찰 결과와 관련해 윤핵관에 대한 극도의 실망감을 표출했다는 얘기도 여권에서 돌고 있다. 윤 대통령이 윤핵관들에 대해  "당이나 나라를 위한 정치보다 자기 정치만 하는 것 같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이런 경고가 당사자들에게도 전달됐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노코멘트"라며 부인도 시인도 하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이날 장 의원의 2선 후퇴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핵심 관계자는 "장 의원의 2선 후퇴와 권 원내대표의 사퇴 자체는 윤 대통령의 현재 생각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 방향”이라고 윤심(윤 대통령의 생각)이 이들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열어뒀다.

 전날 의원총회에서 분출된 ‘윤핵관 2선 후퇴론’도 장 의원의 결단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당시 비공개 의총에선 일부 비윤계 의원들이 “윤핵관도 이 사태에 책임이 있으니 2선 후퇴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친윤계 의원들과의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당 관계자는 “장 의원 본인은 강력 부인하지만 어쨌든 당내에선 ‘이준석 전 대표 축출을 장 의원이 주도했다’는 식의 평가가 많기 때문에, 가처분 신청 인용 이후 대혼란이 벌어지자 장 의원이 큰 정치적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초선 의원도 “이 사태의 모든 발단이 자신에게서 비롯한 것이란 책임론을 무마하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일각에선 장 의원의 입장 표명을 권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와 연결짓기도 한다. 지난 26일 법원의 가처분 인용 이후 사퇴 요구에 시달린 권 원내대표는 지난 27일과 30일 두 차례 의원총회를 거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선(先) 수습-후(後) 거취 표명’하는 걸로 정리했다. 하지만 권 원내대표는 본인 입으로 ‘사퇴’라는 단어는 꺼내지 않았다. 그런 만큼 “장 의원의 ‘2선 후퇴 선언’은 권 원내대표로 하여금 비대위 출범 뒤 사퇴 외에 다른 선택이 없도록 퇴로를 막은 효과가 있다”는 얘기가 여권에서 나온다. 장 의원의 2선 후퇴 선언이 권 원내대표에 대한 압박용이란 뜻이다.

다만, 장 의원은 주변에 “2선 후퇴는 이준석 가처분 결정 이전부터 내가 생각해왔던 것”이라며 “지금 이 상황에서 입장을 안 밝히는 것이 오히려 윤석열 대통령에게 부담을 가중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 장핵관들 사이에선 “권 원내대표가 왜 자꾸 ‘윤심(尹心)’을 파느냐”는 불만도 컸다. 전날 의원총회에서 권 원내대표의 퇴진 문제가 논의되던 중 ‘윤 대통령과 권 원내대표가 지난 28일 만나 정국 수습 방향을 논의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게 대표적이다. 권 원내대표가 정치적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윤 대통령과의 교감 가능성에 대한 정황들이 언론에 공개되는 데 대해 '장핵관'들은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럴 정도로 양측의 거리감이 컸다는 뜻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와 장제원 의원이 지난 달 15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오찬을 마친 후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와 장제원 의원이 지난 달 15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오찬을 마친 후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결과적으로 김대기 비서실장을 정점으로 한 대통령실 내부의 신 주류, 또 윤 대통령의 친정인 검찰 출신 인사들의 힘이 더 세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장 의원의 2선 후퇴 선언이 윤핵관에서 신주류에의 권력 이동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란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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