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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막히자 바닷길 택했다…러로 튄 중국인 범인 송환작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31일 오후 1시쯤 동해항국제여객터미널에서 경찰관들이 A씨(모자 착용)를 인계받아 호송하고 있다. 사진 해양경찰청

31일 오후 1시쯤 동해항국제여객터미널에서 경찰관들이 A씨(모자 착용)를 인계받아 호송하고 있다. 사진 해양경찰청

31일 오후 1시40분쯤 강원도 동해국제여객터미널. 전날 오후 3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한 대형 카페리가 접안하자 사복을 입은 경찰관 여럿이 다가섰다. 이들의 시선은 호송관과 함께 배에서 내리는 외국인 남성 2명으로 향했다. 경찰관은 외국인 남성들이 육지에 발을 내딛자마자 체포해 호송 차량에 태웠다.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진 피의자를 상대로 이뤄진 첫 선박 송환이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이 배의 등록지가 파나마여서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의 집행 시점은 탑승시가 아니라 영해 진입 이후가 된다.

31일 오후 1시쯤 동해항국제여객터미널에서 경찰관들이 B씨를 인계받아 호송하고 있다. 사진 해양경찰청

31일 오후 1시쯤 동해항국제여객터미널에서 경찰관들이 B씨를 인계받아 호송하고 있다. 사진 해양경찰청

이날 국내로 송환된 외국인들은 그간 경찰이 범죄 혐의점이 있다고 보고 행적을 추적해 온 이들이다. 중국인 A(49)씨는 2017년 5월 한국 수산물 수산업자에게 러시아산 킹크랩을 싸게 납품하겠다고 속여 45만 달러를 편취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경기분당서는 한 피해자로부터 고소장을 접수하고 수사에 착수했으나 A씨가 외국으로 떠난 뒤여서 조사하지 못했다.

러시아인 B(38)씨는 2019년 9월 울산 염포부두 화물선 폭발 사고와 관련해 업무상과실치상 등 혐의로 입건돼 있었다. 250여명이 다치고 울산대교와 항만시설이 파괴된 대형사고였다. 해경은 선박의 1등 항해사였던 B씨가 화물 탱크에 적재된 화학제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폭발에 책임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수사에 착수한 울산해경서는 B씨가 러시아로 돌아간 상태여서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다.

처벌 위해 국내송환 추진 

이들을 처벌하기 위해선 국내로 데려와야 했다. 한국은 형법 제2조에 ‘대한민국 영역 내에서 죄를 범한 내국인과 외국인에게 형법을 적용한다’고 해 속지주의를 택하고 있다. 한국 영토 내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면 외국인이더라도 한국 형법에 의해 처벌하겠다는 선언이다. 외국인이 외국인에 대해 저지른 범죄도 그 장소가 국내라면 마찬가지다. 이를 근거로 경찰청은 이들에 대해 인터폴 적색수배를 요청하는 한편 국제공조를 이어왔다.

A씨가 먼저 꼬리를 밟혔다. 지난해 가을 경찰청은 A씨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는 비행편에 탑승할 것이란 첩보를 입수했다. 러시아 인터폴에 긴급 공조를 요청했고 A씨의 신병을 확보했다. 그러나 바로 국내로 데려오진 못했다. 러시아에서 붙잡혔지만, A씨가 중국 국적인 터라 외교적으로 풀어야 할 부분이 많아서였다. 블라디스토크에서 한국으로 오는 항공편이 중단된 점도 한몫했다. 인천~블라디스보스토크 항공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이 확산하면서 중단됐다가 올해 1월 제한적으로 열렸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해 하늘길은 지난 3월 두 달 만에 끊겼다.

하늘길 막히자 바닷길 택했다 

 지난 4월 23일(현지시간) 러시아 연해주(州) 블라디보스토크 항 전경. *기사 내용과 관련없는 사진 연합뉴스

지난 4월 23일(현지시간) 러시아 연해주(州) 블라디보스토크 항 전경. *기사 내용과 관련없는 사진 연합뉴스

그러는 사이 B씨의 행적이 포착됐다. 경찰은 적색수배로 인해 일자리를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B씨에게 “국내로 들어와 수사받으라”는 뜻을 전했고 기나긴 설득에 B씨는 자수를 택했다. 문제는 여전히 닫힌 하늘길이었다. 해경이 ‘묘수’를 냈다. 시간이 더 걸리지만, 선박을 통해 국내로 송환하자는 제안이었다. 동해~블라디보스토크 여객선의 운항이 지난 7월부터 재개한 점에 착안했다. 법적 검토를 마치고 러시아 수사당국과 선사 측이 동의하면서 23시간에 걸친 ‘바다 송환’이 성사됐다. 경찰청과 해경청은 지난 29일 블라디보스토크로 경찰 호송관과 통역 등을 보내 A씨와 B씨의 신병을 인계받았다.

경찰청과 해경청은 국외도피사범에 대한 국내 송환에 힘이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중국 공안과의 공조해 보이스피싱 조직 총책을 송환하는 등 국외도피사범의 송환 건수가 늘어나는 데다가 선박 송환이란 새 방식을 도입하면서다. 하만식 해경청 외사과장은 “적색 수배자를 바다로 안전하게 송환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강기택 경찰청 인터폴국제공조과장은 “앞으로 국외도피사범 추적에 대해 인터폴 및 국내 기관 간 공조 네트워크를 강화해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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