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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 세대만 특혜" 빚투족 구하려다 역풍…전문가들 충고 [2030 ‘빚투코인’ 블랙박스]

중앙일보

입력

④말많은 회생의 길

27만 7322명. 2019년~2022년 6월 빚을 갚지 못해 법원(개인회생)과 신용회복위원회(채무조정)를 찾은 2030세대의 숫자다. 개인회생은 소득은 있지만 재산보다 빚이 더 많을 때, 채무조정은 대출금 상환이 연체됐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길이다. 신청사유별 통계를 집계하고 있지는 않지만 “최근 주식이나 가상자산 투자 실패로 인해 개인회생이나 채무조정을 신청하는 2030세대가 뚜렷이 증가하고 있다”는 게 회생법원 관계자와 파산·회생 전문 변호사들의 체감이다.

한국은행의 연이은 기준 금리 인상으로 시중 은행의 신용대출 금리가 6%를 넘어서자 현장에선 “이제 시작”이라는 말이 나온다. 가상자산과 주식, 부동산 거의 모든 자산이 별도의 반등 요인이 없는 상태에서 돈줄이 마르자 녹아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정책이사인 백주선 변호사는 “부동산은 팔리지 않는 상황에서 인상된 금리를 견디지 못한 부동산 영끌족까지 손을 들기 시작하면 가계 부채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돼 국민 전체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가상자산 투자실패로 인해 개인회생이나 채무조정 신청자 증가는 대폭발의 전조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백 변호사는 “법원과 정부의 적극적 빚 탕감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6월28일 서울회생법원이 마련한 ‘개인회생「주식 또는 가상화폐 투자 손실금」준칙(이하 준칙)’과 지난달 14일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청년 신속채무조정 특례(이하 청년특례)’ 제도는 이같은 현장 체감 온도의 반영물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회생법원은 지난달부터 “채무자가 주식·가상화폐에 투자해 발생한 손실금은 채무자가 파산하는 때 배당받을 총액을 산정할 때 고려해선 안 된다”는 준칙을 실무에 적용하고 있다. 채무자의 남은 재산을 평가할 때 가상자산이나 주식 보유액을 매입가액이 아닌 개인회생 신청 시의 현재가로 반영한다는 취지다. 법원은 준칙을 발표하면서 보도자료에 “주식 또는 가상자산 투자 실패로 경제적 고통을 받고 있는 많은 20~30대 채무자들의 경제 활동 복귀의 시간이 한층 빨라질 것”이라고 적었다.

청년특례는 신용회복위원회가 주체가 돼 다음 달부터 저신용 청년(만 34세·신용평점 하위 20% 이하)의 이자율을 연체 이전에라도 30~50% 감면해주는 제도를 1년간 한시적으로 운영한다는 내용이다. 최대 4만8000명의 청년들의 이자 부담이 1인당 141~263만원 경감될 것이라는 게 금융위의 전망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지난달 28일 국회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청년특례에) 빚투, 가상자산 투자로 빚을 진 청년들도 포함되느냐”는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투자해서 실패한 사람도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두 기관의 대책은 2030 빚투족에 대한 특혜로 읽히면서 여론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미디어리얼리서치가 지난달 17일~23일 성인남녀 38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년 채무조정 지원’에 관한 온라인 설문조사 중 ‘정부 지원을 빌미로 돈을 빌릴 우려가 있다’는 항목에서 응답자의 37.4%(1425명)가 ‘매우 동의한다’, 32.3%(1232명)이 ‘동의한다’를 선택했다. 여당인 국민의힘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영끌 빚투는 도박이나 마찬가지”“그 돈 있으면 열심히 살아도 적자만 나는 사람들을 구제해야 한다”“생각 없이 빚투한 사람들의 잘못을 왜 국민에게 떠안기냐”등의 항의성 글이 쇄도했다.

반발 여론이 비등하자 정치권에서도 견제구가 이어졌다. 황운하 의원은 같은 자리에서 “청년들의 도덕적 해이 문제가 논란이 될 수 있지 않느냐”며 “거기에 대한 대안을 제시 못 하면 선심성 정책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소속인 이언주 전 의원은 지난달 18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빚투를 혈세로 대신 갚는 것은 그 공정의 정신을 정면으로 반한다”고 주장했다.

서울 서초동 소재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의 모습. 김성룡 기자

서울 서초동 소재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의 모습. 김성룡 기자

지난해 10월21일 서울 중구 소재 신용회복위원회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10월21일 서울 중구 소재 신용회복위원회의 모습. 연합뉴스

이같은 분위기에 법원은 개인회생 제도의 보편성에, 신용회복위원회는 2030세대 한시 지원의 필요성에 무게를 두고 대응하고 있다. 성기석 서울회생법원 공보판사는 “20대까지 가상자산 및 주식 투자가 확산되면서 개인회생 신청사건에서 20대의 비율이 14.1%로 전년 10.7%에 비해 3.4%포인트 상승했다”면서도 “준칙 제정은 부동산 등과 달리 주식·가상자산 투자로 손실을 입은 채무자들의 경우 매입 가액을 청산가치에 반영해 상대적 불이익을 받던 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성 판사는 “법원 도산절차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따른 상시적인 절차”라며 “20~30대를 포함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채무자에게는 경제적으로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순호 신용회복위 사무국장은 “청년층이 금리 상승기에 과도한 채무상환 부담으로 경제활동이 위축되면 장기 연체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금융회사 건전성과 국가 경제에 모두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부채 문제에서 특정 세대를 특별 대우하는 인상을 주는 접근법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청년층이 개인회생과 채무조정 절차를 잘 이용하도록 하면 혜택은 청장년층이 다 같이 보는 것”이라면서도 “2030을 위해 과거에 공정하게 운영돼오던 준칙을 무리하게 변형한 것 아니냐는 인상을 준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부동산을 구입했든, 가상자산에 투자했든, 청년이든, 4050 세대이든 세대나 채무 발생 경위를 탕감 여부의 기준으로 삼을 이유가 없다”며 “원금 탕감을 포함한 저신용·저소득·다중채무자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파산·회생 전문가인 김관기 변호사는 “금융위나 신용회복위가 내놓은 이자 감면이나 상환 유예만으로는 채무자의 경제적 재기라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며 “일정 기간 변제하면 면책에 이르는 개인 회생 절차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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