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방산·원전 시장 열어준 중동·아프리카에 인도적 지원 늘려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채인택
채인택 기자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한국은 지금 글로벌에서 어떤 국가로 자리 잡고 있는가. 유럽과 중동에서 연속으로 대형 사업을 수주했다는 뉴스를 들으면 ‘쾌속질주 2022년’ 느낌이 든다.

한국로템·한화디펜스·한국항공우주산업(KAI)가 지난달 27일 폴란드 군비청과 K2 흑표 전차 980대, K9 자주포 648문, FA-50 경공격기 48대 수출을 위한 기본 계약을 맺은 데 이어 이달 26일에는 57억6000만 달러 규모의 1차 이행계약을 체결했다. 25일엔 한국수력원자력이 3조원 규모의 이집트 엘다바 원전 2차 측 건물·구조물 건설과 기자재 공급 계약을 맺었다.

아프리카·중동 기후변화 타격
테러, 분쟁, 빈곤 등 재난 겹쳐
식량·백신·보건으로 품어야
중견국 역할하며 청년엔 기회를

한국국제협력단(KOICA) 사업으로 장하연 주과테말라 대사(오른쪽)가 백신용 주사기를 현지 보건부에 기증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국제협력단(KOICA) 사업으로 장하연 주과테말라 대사(오른쪽)가 백신용 주사기를 현지 보건부에 기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를 유럽과 중동·아프리카에 진출한 쾌거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도 있어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한국은 국제사회에 어떤 걸로 가는 정을 보여야 할까?

이번 8월에 겪은 이상기후에 갈등과 분쟁, 그리고 인권침해와 인도주의적 위기로 얼룩진 ‘슬픈 지구’의 모습에서 답이 엿보인다.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 고온에 가뭄·홍수는 북미·유럽은 물론 중동·아프리카와 아시아 곳곳에서 맹위를 떨쳤다. 국제협약기구인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에 따르면 기후변화 피해의 90%는 아프가니스탄·부르키나파소·에티오피아·남수단·파키스탄 등 가난한 나라가 입는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비정부기구(NGO)인 국제위기감시기구(ICG)는 ‘2022년 주목해야 할 10대 분쟁’으로 아프가니스탄·에티오피아·예멘·미얀마와 혼란한 내정의 아이티, 그리고 극단 이슬람주의자가 날뛰는 아프리카 등을 꼽았다. 한결같이 가난한 나라다.

특히 지난 15일로 탈레반의 카불 입성, 30일로 미군 철수 각각 1년을 맞은 아프가니스탄은 가난, 기상재해, 갈등, 분쟁, 테러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고 있다. 식량·보건서비스 등이 태부족이지만 미국 등 서방의 제재는 언제 끝날지 모른다.

국제인도주의 기구인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의 크리스틴 치폴라 아시아·태평양 지역국장은 “전국적으로는 식량·의료서비스 부족으로 출산 10만 명당 638명의 산모가 사망해 모성 사망률이 세계 최악”이라고 홈페이지에서 절규했다. 그는 “카불 거리엔 오늘도 가재도구를 들고나와 먹을 것과 바꾸려는 사람을 볼 수 있다”며 국제사회의 식량·의약품 긴급 지원을 호소했다.

한국 불교 신자들의 순례지로 한때 인기를 끌었던 미얀마는 어떤가. 25일로 군부의 로힝야족 인종청소 5주년을 맞았던 미얀마는 1년 6개월 전인 지난해 2월 1일 발생한 쿠데타로 무슬림(이슬람 신자) 로힝야족은 물론 불교도 주민도 민주주의와 인권이 압살당하고 있다. 이웃 방글라데시 등으로 탈출한 70만 로힝야 난민은 여전히 귀향을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한국 지원으로 보강한 캄보디아 앙두엉 병원. [뉴시스]

한국 지원으로 보강한 캄보디아 앙두엉 병원. [뉴시스]

박지해 ICRC 서울사무소 공보관은 “미얀마 현지 직원들이 보건의료 접근성 향상과 재활·지역사회 지원 등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 중”이라고 현장 상황을 전했다. 이웃이라는 이유로 70만 로힝야 난민을 껴안은 인접국 방글라데시는 2022년 국제금융기금(IMF) 전망치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362달러에 불과한 가난한 나라여서 국제사회의 관심이 절실하다.

한국이 중동·아프리카·동남아시아에 온갖 상품과 서비스를 들고 경제적으로 진출했다고 자부심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오랜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그런 상품과 전 세계에 팔 수 있는 국가에 중견국의 책무를 요구한다. 정부개발원조(ODA) 확대가 대표적이며 민간 참여도 당연한 일이 돼가고 있다.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코로나19 확진으로 북아프리카 튀니지 출장을 취소한 대신 27∼28일 아프리카개발회의(TICAD)에 화상으로 참석해 이집트·세네갈 등 10개국 정상과 회담했다. 기시다 총리는 정부·민간이 아프리카에 3년간 300억 달러를 지원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일본은 1996년 이 회의를 처음 연 이래 2013년까진 5년마다, 그 뒤론 3년마다 정례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 8위인 1조2596억 달러의 무역액을 기록한 한국은 90년대의 일본보다 경제·문화 국력이 못하지 않다. 그만큼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할 일이 많다.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은 “아프리카는 지정학적 힘”이라며  7~11일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콩고민주공화국·르완다를 순방하며 코로나19 백신과 식량 지원을 약속했다. 한국은 백신과 식량은 물론 그보다 더한 것으로도 서로 도울 수 있다.

글로벌 사회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은 지금이 한국의 ‘글로벌 더불어 살기’를 확대할 기회다. 한국이 이웃의 절규와 눈물을 외면한 채 이익만 보고 달려드는 ‘경제 동물’을 면할 소중한 기회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대대적으로 확대하는 건 물론 일부 유럽국가처럼 해외 봉사로 병역을 대신하는 방안도 있다. 대학 입학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1년씩 해외 활동 기회를 주는 ‘글로벌 갭이어’ 제도를 마련해 정부나 대학이 지원하면 어떤가. 이는 한국이 경제 규모나 국민의 활력에 걸맞은 ‘글로벌 행위자’로서 본격적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본격적인 글로벌 국가로 달려가려면 전 세계에 한국 시각으로 글로벌 뉴스를 다루는 국제방송을 설립하는 등 정교한 기획이 필요하다. 현재의 한국의 능력을 직시하는 지도층의 시각과 의지·결단은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