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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인구 축소 시대, 돌봄 시스템부터 개혁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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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진호 아주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최진호 아주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한국은 예상보다 빠르게 ‘인구 축소 국가’가 됐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1년 합계출산률은 0.81명으로 2020년(0.84명)에 이어 또다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2021년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국내 거주 내국인과 외국인을 합친 총인구는 5174만 명으로 집계돼 1년 전보다 9만1000명 감소했다. 1948년 대한민국 수립 이후 첫 인구총조사가 실시된 1949년 이래 72년 만에 처음이다. ‘인구는 항상 증가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하는 통계다.

한 국가의 인구수는 인구의 자연 증가와 국제간 인구 이동에 따라 결정된다. 2070년에 자연 증가는 마이너스 51만 명까지 확대되고, 국제 순이동은 4만∼6만 명 선에 머무를 전망이다. 장래 총인구는 해가 갈수록 더 가파르게 줄어들 것이 확실하다. 통계청은 지금 추세대로 인구가 감소하면 2070년 총인구는 3766만 명으로 쪼그라들 것으로 예상한다.

건국 이후 처음으로 총인구 감소
한번도 경험 못한 부작용 걱정돼
육아 휴직제도 전면적 개편 필요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총인구 감소는 생산연령인구의 축소를 동반하면서 사회 전반에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다. 경제는 활력을 잃어 경제성장률이 0%에 수렴할 것이다. 부양 부담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가 되면서 다음 세대가 큰 어려움을 떠안을 것이다.

이러한 인구 축소 시대를 맞아 일각에서는 노동력 부족을 완화하기 위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이민을 받을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노동력 부족이 언제부터 가시화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우선 한국은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이 낮아 노동력이 부족해지면 우선 여성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다. 또 65세 이상 고령층에서도 일하려는 욕구가 커 정년연장을 통한 노동력 공급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막 인구 축소 시대에 돌입한 한국에서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필자는 두 가지를 제안하려 한다. 첫째, 우리의 인구 패러다임을 성장에서 축소로 바꿔 매사에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국가와 지방정부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재정과 인프라의 낭비를 최대한 방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인구영향 평가제도’를 도입해서 대규모 사업이나 프로젝트의 경우 20∼30년 후의 상황을 예측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근본적으로는 이러한 위기를 초래한 초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의 정책 개입을 더 강화하고 효율화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저출산 대책을 시행한 지 16년이 지났지만, 출산율 지표가 오히려 더 하락하는 현상이 심각하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그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다 동원했으나 효과가 없으니 이제 우리가 무엇을 더 할 수 있느냐는  회의론이 들린다. 그런데 과연 그동안 우리는 해야 할 일을 정말 제대로 해 온 것일까.

얼마 전 초등학교 5세 입학 논의 과정을 보도한 신문 기사 한 줄에서 그동안 우리가 간과한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줬다. ‘초등 저학년은 방과 후 돌봐 줄 사람이 없어 학원 뺑뺑이를 돌려야 하는 경우도 많은데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맘 놓고 맡길 곳이 필요하다.’ 한 학부모단체 대표의 이런 절규는 돌봄 시스템이 아직도 얼마나 취약한가를 그대로 보여줬다.

참으로 허탈하다. 지난 세월 우리는 출산율 제고의 기본 중에서도 기본인 돌봄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그 많은 예산을 어디에 쓴 것일까. 새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서 원점으로 돌아가 인구 정책의 큰 틀을 다시 세워야 한다.

당연히 초등 방과 후 돌봄과 육아 휴직제도의 전면적 확대를 포함한 돌봄 시스템을 거의 완벽하게 구축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초등 방과 후 교실 확대는 맞벌이 엄마의 경력단절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자격 있는 교사의 채용으로 청년층 일자리 제공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인구 정책의 핵심인 양질의 일자리 제공을 위해서는 어렵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동과 교육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먼저 개혁 추진의 청사진을 제시하기 바란다.

지금은 인구 정책의 리셋이 필요한 시점이다. 단기간에 해결 가능한 미시적 정책부터 시작하자. 장기적으로 구조를 바꿔야 하는 거시적 정책에 이르기까지 정교한 로드맵 마련이 시급하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진호 아주대 사회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