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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정재 400만 흥행몰이…이제 북미 ‘헌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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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이정재가 감독 데뷔작 ‘헌트’ 촬영 현장에서 촬영본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이정재가 감독 데뷔작 ‘헌트’ 촬영 현장에서 촬영본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1980년대 초 격동의 한국을 무대로 총알 1만발을 쏜 첩보 액션이 세계 무대에서도 통할까. 관객 400만 흥행에 육박한 배우 이정재(50)의 감독 데뷔작 ‘헌트’(10일 개봉)가 해외 표심 사냥에 나섰다. 프랑스·독일·스위스·영국·일본·대만·홍콩·남미·중동·인도네시아·러시아 등 144개국에 판권이 판매됐다.

북미에선 12월 개봉 예정이다. 이달 초엔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 이정재·정우성이 팽팽히 맞선 모습의 영화 포스터가 초대형 전광판을 장식했다. ‘헌트’의 북미 배급은 유럽·아시아 거장의 작품을 현지에 소개해온 메이저 수입·배급사 매그놀리아 픽처스가 맡았다. “이정재 감독이 영화의 스펙터클함을 잘 전달해냈다”는 게 선택의 이유다.

‘헌트’는 1980년대 한국 현대사의 실제 사건들을 대규모 액션에 담았다.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헌트’는 1980년대 한국 현대사의 실제 사건들을 대규모 액션에 담았다.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헌트’는 80년대 전두환 군부독재 시기 실제 사건들을 토대로 두 안기부 요원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지난 5월 칸 국제영화제 최초 공개 때는 액션의 박진감에 비해 이야기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평가가 엇갈렸다. 하지만 국내 개봉 이후 멀티플렉스 예매 앱마다 실관람객 평점 9~9.5점(10점 만점)을 기록하며 흥행작이 됐다.

공동 제작사 사나이픽처스의 한재덕 대표는 “꼼꼼하고 귀가 열려 있다”는 점을 이정재 감독의 장점으로 꼽았다. ‘헌트’는 ‘공작’ ‘신세계’ 등을 제작한 한 대표가 이정재·정우성의 제작사 아티스트스튜디오와 함께 만들었다. 이정재가 처음에 주연·제작을 염두에 두고 원작 시나리오 ‘남산’ 판권을 사들인 후 4년간 직접 각색·연출까지 맡게 된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한 대표는 “원작도 재밌었지만 해외 촬영, 고증 탓에 예산이 너무 많이 들고, 주인공의 동기가 설득력이 떨어졌다. 신인 감독이 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전했는데 그 뒤 여러 버전으로 대본을 손수 고쳐나가더라”고 돌이켰다.

‘헌트’는 1980년대 한국 현대사의 실제 사건들을 대규모 액션에 담았다.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헌트’는 1980년대 한국 현대사의 실제 사건들을 대규모 액션에 담았다.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칸 영화제에서의 일부 부정적인 반응을 토대로 개봉 버전을 최종 수정한 과정에 대해서도 그는 “이 감독이 관객들이 어려워한 부분, 조금 긴 듯한 느낌을 덜어냈다. 80년대를 겪은 세대는 알지만, 해외 관객과 젊은 관객이 낯설 수 있는 초반부 장영자 (어음 사기) 사건에 관한 장면을 다 빼버리고 대사를 새로 써 후시 녹음까지 빠른 시간 내에 마칠 수 있었다”면서 특히 “베테랑 배우다 보니 현장에서 어떤 장면을 쓸지 판단이 빠르고 배우들이 원하는 걸 정확히 알아 시간 절약이 됐다. 감독을 해도 될 것 같다는 내 권유를 좋은 결과물로 증명해준 이 감독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정재의 연출력은 평단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허남웅 영화평론가는 “데뷔작 연출 면에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어둠 속에 벨이 울린다’(1971)보다도 이정재가 더 잘했다”면서 “배우 출신이면 정치적 언급에 몸 을 사릴 법도 한데 ‘헌트’는 아웅산 테러 등 80년대 신군부 집권기 고통받은 사람들의 상황을 잘 묘사했다”고 호평했다.

문화평론가 강유정 강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헌트’가 첩보영화의 교과서적인 장면을 잘 참고한 것 같다. 할리우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2014)의 독일군 암호 해독 장면, 범죄 액션 ‘히트’(1995) 시가전도 떠올랐다”면서 “김윤석(‘미성년’)·하정우(‘롤러코스터’ ‘허삼관’) 등 배우가 연출했을 때 연기자로서 장점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정재가 30년차 배우라는 경력을 잘 활용했다”고 평했다. “스스로 연기를 잘 아니까 앞으로도 배우들의 연기를 끌어낼 판을 잘 짜는 감독이 될 것 같다”면서다.

배우 정우성(오른쪽부터)과 이정재 감독, 투자·배급사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홍정인 대표가 지난 5월 19일(현지시간)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영화 ‘헌트’ 시사회 레드카펫에서 인사하고 있다. [뉴스1]

배우 정우성(오른쪽부터)과 이정재 감독, 투자·배급사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홍정인 대표가 지난 5월 19일(현지시간)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영화 ‘헌트’ 시사회 레드카펫에서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이정재는 ‘도둑들’ ‘암살’ ‘신과함께’ 1·2부 등 30여편 영화 출연작 중 1000만 영화가 4편이다. 스크린 데뷔작인 배창호 감독의 ‘젊은 남자’(1994)에서부터 주연을 맡았고, 드라마 ‘모래시계’(1995)의 과묵한 보디가드로 무명 시절 없이 스타덤에 올랐지만 독특하고 실험성 강한 작품에 거듭 뛰어들며 흥행 참패도 숱하게 겪었다. 최근 인터뷰에서 그는  “새로운 걸 해보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면서 성공과 실패를 두루 쌓은 경험치를 최근 전성기의 발판으로 꼽았다. “개인적인 데이터가 쌓이면서 ‘오징어 게임’ 같은 실험 정신 강한 시나리오도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정재는 ‘헌트’로 배우 출신 감독의 흥행 기록도 경신했다. 29일까지 누적 관객수 376만명으로, 연극 배우 출신 김도영 감독의 데뷔작 ‘82년생 김지영’(367만 관객)을 뛰어넘었다.

액션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이정재가 연기한 킬러 ‘레이’에 초점을 맞춘 스핀오프 시리즈도 글로벌 OTT 출시를 목표로 제작된다. 홍원찬 감독, 홍경표 촬영감독 등 오리지널 제작진도 참여한다. 아티스트스튜디오와 공동 제작을 맡은 원작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에 따르면, 이정재가 주연·제작에 더해 일부 에피소드를 연출하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논의 중이다. 하이브미디어코프 측은 “원작 영화 개봉 후 레이에 대한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 이정재와 스핀오프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성공하면서 글로벌 프로젝트로 확장해 제작하기로 결정했다”며 “이정재 배우 없이 불가능한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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