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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려면 수업료 필요해…실패 문책 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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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의 울산 콤플렉스(CLX) 공장 전경. 사진 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의 울산 콤플렉스(CLX) 공장 전경. 사진 SK이노베이션

정유업계 1위 SK이노베이션이 고(故) 최종현 SK그룹 회장이 제시한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 구상에, 최태원 회장의 ‘딥체인지’ 전략을 더해 그린에너지 선도기업으로 탈바꿈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창립 60주년을 맞아 30일 열린 학술행사에서다.

SK이노베이션 60주년 ‘혁신경영’ 심포지엄 #최종현 빅픽처, 최태원 딥체인지 전략 통해 #글로벌 그린에너지 선도기업으로 진화해

기업가정신학회는 이날 서울 종로구 SK 서린사옥에서 ‘SK이노베이션 60년 혁신 스토리’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고 ▶빅픽처(Big Picture)와 ▶딥체인지(Deep Change)를 성장의 핵심 키워드로 제시했다. 대한석유공사가 SK를 만나 종합에너지 기업이라는 빅픽처 아래 성장했고, 새로운 경영 환경에 대한 딥체인지 전략으로 대응하면서 글로벌 그린에너지 선도기업으로 진화했다는 설명이다.

기업가정신학회 교수진이 30일 서울 종로구 SK서린사옥에서 'SK이노베이션 60년 혁신 성장 스토리'를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세션 발표 후 종합 질의 및 토론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업가정신학회 교수진이 30일 서울 종로구 SK서린사옥에서 'SK이노베이션 60년 혁신 성장 스토리'를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세션 발표 후 종합 질의 및 토론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성장 키워드는 ‘빅피처’ ‘딥체인지’

이춘우 기업가정신학회장(서울시립대 교수)은 SK이노베이션의 역사를 세 단계로 나눠 혁신 과정을 설명했다. 우선 SK에 인수되기 전 대한석유공사 시절(1962~79년)이다. SK가 정유공장을 지어 ‘석유→석유화학→섬유제품’으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를 이루겠다고 계획한 것은 69년 즈음이다. SK는 원사 사업을 시작하면서 원사의 원료인 석유에도 관심을 가졌다.

SK는 80년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한 뒤 유공→SK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꾸며 종합에너지 기업으로 체질을 바꿔나갔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이즈음 “정유회사에서 종합에너지 회사”라는 사업 방향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사내에 자원기획실을 만들어 ‘무자원 산유국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업계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과정에서 최고경영진의 ‘실패 관리’ 역량이 성장의 자양분이 됐다. 80년대 초 SK이노베이션은 첫 해외 자원개발 투자로 인도네시아·아프리카 광구 개발에 참여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최종현 선대회장은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업료가 필요하다”며 수익의 일부를 무조건 석유 개발에 투자할 것과 실패해도 담당자를 문책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SK이노베이션은 이어 북예멘 광구 탐사 개발에 투자해 성공을 거뒀다.

1997년 ㈜유공이 회사명을 SK 주식회사로 바꾸고 세계일류 기업을 향한 제2의 도약을 선언했다. 사진은 선포식을 하는 최종현 당시 SK 회장. 중앙일보

1997년 ㈜유공이 회사명을 SK 주식회사로 바꾸고 세계일류 기업을 향한 제2의 도약을 선언했다. 사진은 선포식을 하는 최종현 당시 SK 회장. 중앙일보

성공 확률 5% 안 되는 사업에 도전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이에 대해 “일찌감치 성공 확률 5% 미만인 자원 개발에 도전한 것”이라며 “위험을 감수하는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비즈니스 밸류 체인(가치사슬) 안정화를 이뤘다”고 평가했다.

2000년대 들어 SK이노베이션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을 시도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중 경제협력 최대 프로젝트로 불리는 ‘중한석화’를 들 수 있다. 중한석화는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종합화학(현 SK지오센트릭)과 중국 1위 석유화학기업 시노펙이 만든 합작법인으로 SK이노베이션은 중한석화의 성공을 기반으로 중국에서 전기차 배터리 분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표민찬 서울시립대 교수는 “과거 중국 시장에서 잘나가던 한국 기업이 최근 고전하고 있는데 중한석화는 여전히 건재하다”며 “단순히 제품을 판 게 아니라 밸류 체인을 만들었기 때문”이라며 “이처럼 운영과 기술을 파는 방식으로 중국 사업의 틀을 바뀌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소재 등 비정유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했다. 배터리는 90년대 중반 연구개발을 시작해 현재 글로벌 5위권 기업으로 꾸준히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한편으론 ESG 경영을 강조함으로써 전동화와 순환경제 중심의 그린에너지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는 발판을 마련했다. 한준 연세대 교수는 “국내 대기업 최초로 사외이사 70% 이상으로 구성된 이사회를 구성하는 등 선진적 지배구조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임이숙 한양대 교수는 “20~30분 만에 임금 협상을 완료해 혁신적 문화를 만들었다”며 노사관계에 대해 높은 점수를 줬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지난 3월 SK이노베이션 울산공장을 방문한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 SK그룹

지난 3월 SK이노베이션 울산공장을 방문한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 SK그룹

“20분 만에 임협 타결…혁신적 문화”

이춘우 학회장은 SK가 70년대 정립한 SKMS(SK경영관리시스템)를 기반으로 하는 ‘수펙스(SUPEX)’ 정신에 주목했다. 수펙스는 ‘수퍼(Super)’와 ‘엑설런트(Excellent)’의 줄임말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수준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도전하는 정신을 의미한다. 이 학회장은 “공기업인 대한석유공사를 SK가 인수해 혁신을 이뤘다”며 “최종현 선대회장이 강조한 혁신 DNA가 최태원 회장을 거쳐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혁신 전략을 통해 SK이노베이션은 인수 이전 1조1208억원(79년) 매출에서 지난해 46조8429억원으로 42배 성장했다. 임수길 SK이노베이션 밸류크레이션센터장은 “앞으로 60년 역시 끊임없는 혁신을 바탕으로 차별적 기술에 기반을 둔 친환경 포트폴리오를 개발해 미래 성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중국 중한석화 전경. 사진 SK이노베이션

중국 중한석화 전경. 사진 SK이노베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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