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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열린 감독" 이정재, 이스트우드급 될까…‘헌트’ 잇는 글로벌 액션 도전

중앙일보

입력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헌트'가 국내에 이어 해외 관객 잡기에 나선다. 사진은 그가 지난 6월 1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롤리 스튜디오의 넷플릭스 FYSEE에서 열린 '오징어 게임' 로스앤젤레스 FYSEE 스페셜 행사에 참석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헌트'가 국내에 이어 해외 관객 잡기에 나선다. 사진은 그가 지난 6월 1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롤리 스튜디오의 넷플릭스 FYSEE에서 열린 '오징어 게임' 로스앤젤레스 FYSEE 스페셜 행사에 참석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1980년대 초 격동의 한국을 무대로 총알 1만발을 쏜 첩보 액션이 세계 무대에서도 통할까. 관객 400만 흥행에 육박한 배우 이정재(50)의 감독 데뷔작 ‘헌트’(10일 개봉)가 해외 표심 사냥에 나섰다. 프랑스‧독일‧스위스‧영국‧일본‧대만‧홍콩‧남미‧중동‧인도네시아‧러시아 등 144개국에 판권이 판매됐다.

이정재 감독 데뷔작 '헌트' #400만 육박, 배우 출신 감독 흥행 1위 #140여개국 판매…12월 美개봉 #“배우 경력, 열린 귀 장점”

북미에선 12월 개봉 예정이다. 이달 초엔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 이정재‧정우성이 팽팽히 맞선 모습의 영화 포스터가 초대형 전광판을 장식했다. ‘헌트’의 북미 배급은 유럽‧아시아 거장의 작품을 현지에 소개해온 메이저 수입‧배급사 매그놀리아 픽처스가 맡았다. “이정재 감독이 영화의 스펙터클함을 잘 전달해냈다”는 게 선택의 이유다.

칸영화제 엇갈린 평가 달라진 이유? "귀 열린 감독"

‘헌트’는 80년대 전두환 군부독재 시기 실제 사건들을 토대로 두 안기부 요원의 갈등을 그린 작품. 지난 5월 칸 국제영화제 최초 공개 때는 액션의 박진감에 비해 이야기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평가가 엇갈렸다. 그랬던 영화가 어떻게 멀티플렉스 예매 앱마다 실관람객 평점 9~9.5점(10점 만점)을 기록하며 흥행작이 됐을까.

영화 '헌트' 투자배급사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은 지난 1일 '헌트'가 미국 뉴욕 맨해튼의 최고 번화가인 타임스퀘어 광장 광고판을 통해 해외 팬들을 만났다고 전했다.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영화 '헌트' 투자배급사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은 지난 1일 '헌트'가 미국 뉴욕 맨해튼의 최고 번화가인 타임스퀘어 광장 광고판을 통해 해외 팬들을 만났다고 전했다.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공동 제작사 사나이픽처스의 한재덕 대표는 “꼼꼼하고 귀가 열려 있다”는 점을 이정재 감독의 장점으로 꼽았다. ‘헌트’는 ‘공작’ ‘신세계’ 등을 제작한 한 대표가 이정재‧정우성의 제작사 아티스트스튜디오와 함께 만들었다. 이정재가 처음에 주연‧제작을 염두에 두고 원작 시나리오 ‘남산’ 판권을 사들인 후 4년간 직접 각색‧연출까지 맡게 된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한 대표는 “원작도 재밌었지만 해외 촬영, 고증 탓에 예산이 너무 많이 들고, 주인공의 동기가 설득력이 떨어졌다. 신인 감독이 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전했는데 그 뒤 여러 버전으로 대본을 손수 고쳐나가더라”고 돌이켰다.

칸 영화제에서의 일부 부정적인 반응을 토대로 개봉 버전을 최종 수정한 과정에 대해서도 그는 “이 감독이 관객들이 어려워한 부분, 조금 긴 듯한 느낌을 덜어냈다. 80년대를 겪은 세대는 알지만, 해외 관객과 젊은 관객이 낯설 수 있는 초반부 장영자 (어음 사기) 사건에 관한 장면을 다 빼버리고 대사를 새로 써 후시 녹음까지 빠른 시간 내에 마칠 수 있었다”면서 특히 “베테랑 배우다 보니 현장에서 어떤 장면을 쓸지 판단이 빠르고 배우들이 원하는 걸 정확히 알아 시간 절약이 됐다. 감독을 해도 될 것 같다는 내 권유를 좋은 결과물로 증명해준 이 감독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정재, 클린트 이스트우드 필적할 명감독 될까 

이정재의 연출력은 평단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허남웅 영화평론가는 “데뷔작 연출 면에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어둠 속에 벨이 울린다’(1971)보다도 이정재가 더 잘했다”면서 “배우 출신이면 정치적 언급에 몸 을 사릴 법도 한데 ‘헌트’는 아웅산 테러 등 80년대 신군부 집권기 고통받은 사람들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잘 묘사했다”고 호평했다.

문화평론가 강유정 강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헌트’가 첩보영화의 교과서적인 장면을 잘 참고한 것 같다. 할리우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2014)의 독일군 암호 해독 장면, 범죄 액션 ‘히트’(1995) 시가전도 떠올랐다”면서 연기 면에선 이정재가 30년차 배우라는 경력을 잘 활용했다고 평가했다.
“김윤석(‘미성년’)‧하정우(‘롤러코스터’ ‘허삼관’) 등 배우가 연출했을 때 연기자로서 장점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정재는 오히려 배우가 연출한 장점을 잘 살렸다. 결말을 알고서 두 번째 관람하니 플롯이나 이야기의 새로움보다 연기력으로 설득 당한 부분이 보였다”며 “스스로 연기를 잘 아니까 앞으로도 배우들의 연기를 끌어낼 판을 잘 짜는 감독이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이정재는 배우로서도 장르 영화에서 관습을 변주하는 연기로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도둑들’ ‘암살’ ‘신과함께’ 1‧2부 등 30여편 영화 출연작 중 1000만 영화가 4편이다. 배창호 감독의 ‘젊은 남자’(1994)로 스크린 데뷔부터 주연을 맡고, 드라마 ‘모래시계’(1995)의 과묵한 보디가드로 무명 시절 없이 스타덤에 올랐지만 독특하고 실험성 강한 작품에 거듭 뛰어들며 흥행 참패도 숱하게 겪었다. 최근 인터뷰에서 그는  “새로운 걸 해보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면서 성공과 실패를 두루 쌓은 경험치를 최근 전성기의 발판으로 꼽았다. “개인적인 데이터가 쌓이면서 ‘오징어 게임’ 같은 실험 정신 강한 시나리오도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면서다.

배우 출신 감독 최고 흥행…이정재 글로벌 액션 도전

배우 정우성(오른쪽부터)과 이정재 감독, 홍정인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대표가 지난 5월 19일 밤(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칸 ‘팔레 데 페스티벌’(Palais des Festivals)에서 열린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된 영화 ‘헌트’ 시사회 레드 카펫을 지나 인사하고 있다. 뉴스1

배우 정우성(오른쪽부터)과 이정재 감독, 홍정인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대표가 지난 5월 19일 밤(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칸 ‘팔레 데 페스티벌’(Palais des Festivals)에서 열린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된 영화 ‘헌트’ 시사회 레드 카펫을 지나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이정재는 ‘헌트’로 배우 출신 감독의 흥행 기록도 경신했다. 연극 배우로 주로 활동한 김도영 감독의 데뷔작 ‘82년생 김지영’의 367만 관객을 거뜬히 뛰어넘었다. 다음 달 토론토 영화제에선 이정재가 아티스트 스튜디오를 통해 제작자로 참여한 정우성의 감독 데뷔작 ‘보호자’도 최초 공개된다.
팬데믹 속에 435만 관객을 동원했던 액션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이정재가 연기한 킬러 ‘레이’의 탄생부터 그의 타깃이 되는 악당들과의 대결을 담은 다국적 무대의 스핀오프 시리즈도 글로벌 OTT 출시를 목표로 제작된다. 이 시리즈엔 홍원찬 감독, 홍경표 촬영감독 등 오리지널 제작진도 참여한다.

아티스트 스튜디오와 공동 제작을 맡은 원작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에 따르면, 이정재가 주연‧제작에 더해 일부 에피소드를 연출하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논의 중이다. 이정재의 현재 위상 덕분에 출발할 수 있었던 프로젝트다. 하이브미디어코프 측은 “원작 영화 개봉 후 레이에 대한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 이정재와 스핀오프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성공하면서 글로벌 프로젝트로 확장해 제작하기로 결정했다”며 “이정재 배우 없이 불가능한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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