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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속 사라지는 지역영화제, 영화계 “K콘텐트 성공 발판인데…”

중앙일보

입력

지난 6월 23일 오후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올림픽메달플라자에서 2022 평창국제평화영화제 개막행사가 열리고 있다. 영화제측은 25일 영화제 개최를 중단한다고 알렸다. [연합뉴스]

지난 6월 23일 오후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올림픽메달플라자에서 2022 평창국제평화영화제 개막행사가 열리고 있다. 영화제측은 25일 영화제 개최를 중단한다고 알렸다. [연합뉴스]

강원도 최초 국제영화제로 출범했던 평창국제평화영화제가 지난 6월 열린 4회를 끝으로 문을 닫게 됐다. 영화제 사무국은 25일 “지난 4년간 평화·공존·번영을 주제로 개최했지만, 영화제 예산 지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방자치단체(강원도‧평창군)의 현실적인 문제로 더는 영화제를 유지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영화계 "국제영화제 지자체장 전유물 아냐" 

강원도 지역 국제영화제가 지자체의 일방적인 지원 중단 통보로 문을 닫는 건 지난달 강릉국제영화제에 이어 두 번째다. 지난 6월 지방선거를 치른 지 불과 두 달 만에 벌어진 일이다. 지자체들은 예산 부담, 낮은 호응도 등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영화계에선 영화제 집행위원회를 배제한 전격적인 폐지 결정에 대해 전임자 행적 지우기가 아니냐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 영화제작가협회는 17일 “국제영화제는 지자체장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성명서를 냈다.

지난 6월 23일 오후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올림픽메달플라자에서 열린 2022 평창국제평화영화제 개막행사에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과 평창영화제 문성근 이사장, 방은진 집행위원장이 참석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지난 6월 23일 오후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올림픽메달플라자에서 열린 2022 평창국제평화영화제 개막행사에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과 평창영화제 문성근 이사장, 방은진 집행위원장이 참석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문화 불모지에 국제영화제를 뿌리내리기 위해 국내외 거장 감독 및 관계자 초청, 상영작 수급 등 수년간 지역 영화제를 알리고 네트워크를 구축해온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 처사라는 게 영화계의 비판 요지다. 정상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국제영화제를 만들 땐 시‧도 의결 등 행정 절차를 거쳐 개최하는데 최근 폐지 과정을 보면 시장, 도지사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없애도 괜찮다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폐지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관계자들 간의 논의가 투명하게 이뤄졌어야 한다는 것이다.

"봉준호·박찬욱 등용문 영화제인데…"

문화적 다양성과 신인 창작자 발굴의 발판이 돼온 영화제의 가치를 수익성으로 판단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있다. 평창영화제의 경우, 최근 "타당성 없는 보조금 사업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발언이 나온 이후 강원도로부터 사전 논의 없이 23일 폐지 통보를 받았다.

강원도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평창영화제를 4회 치르면서 성과가 없진 않았다.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도 있고, 평창의 지역 특색을 살린 영화제였다”면서도 “평창영화제는 도비 18억원이 소요돼 재정 부담이 컸다”고 말했다. “영화제를 수익 사업으로 하는 건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예산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다. 김홍규 강릉시장 당선 직후 강릉시장인수위원회가 강릉영화제 폐지를 결정한 배경에도 영화제 예산(약 30억원)에 비해 수익성과 지역 호응이 낮다는 게 원인으로 꼽혔다.

2019년 11월 8일 강원 강릉아트센터에서 열린 '제1회 강릉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임권택 감독과 부인 채령이 레드카펫을 밟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11월 8일 강원 강릉아트센터에서 열린 '제1회 강릉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임권택 감독과 부인 채령이 레드카펫을 밟고 있다. [연합뉴스]

 배우 정우성(왼쪽부터), 조인성이 지난해 10월 22일 강원 강릉아트센터에서 열린 제3회 강릉국제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릉국제영화제는 이날 개막식을 시작으로 31일까지 열흘간 강릉시 일원에서 총 42개국 116편의 영화를 상영하고, 다양한 관객 이벤트를 열었다. [연합뉴스]

배우 정우성(왼쪽부터), 조인성이 지난해 10월 22일 강원 강릉아트센터에서 열린 제3회 강릉국제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릉국제영화제는 이날 개막식을 시작으로 31일까지 열흘간 강릉시 일원에서 총 42개국 116편의 영화를 상영하고, 다양한 관객 이벤트를 열었다. [연합뉴스]

이에 부산국제영화제를 세계적 영화제로 성장시킨 바 있는 김동호 강릉영화제 이사장은 “영화제의 역할은 단순히 비용과 효과를 대비할 문제가 아니다. 자국 영화를 해외에 소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지자체가) 간과한 것 아닌가”라며 지자체의 결정을 비판했다. 이어 “모든 영화제가 초창기부터 성공하는 것이 아니고 적어도 10년 이상 가야 기반을 잡는데, 최근 3년간 코로나19 상황에서 개최된 영화제의 결과로 폐지 결정을 내리는 건 근시안적”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미래 거장 인큐베이터'가 채산성 떨어지는 축제?"  

2019년 제1회 강릉국제영화제에는 일본 거장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왼쪽부터)가 김동호 이사장의 초청으로 참석했다. [사진 김동호 이사장]

2019년 제1회 강릉국제영화제에는 일본 거장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왼쪽부터)가 김동호 이사장의 초청으로 참석했다. [사진 김동호 이사장]

강릉영화제는 지역 영화 제작 지원, 평창영화제는 지역 유소년 아카데미, 순회 상영전 등 지역 문화 활성화 사업도 운영해왔다. 익명을 요구한 영화제 관계자는 “영화산업의 미래를 결정할 신인 감독은 영화제를 통해 데뷔‧육성돼왔다”며 “한국 문화산업이 세계적 수준에 올랐는데, 지자체가 영상인재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영화제를 지원하기는커녕 채산성 떨어지는 행사 정도로 치부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영화 관계자는 “영화계가 다 좌파라는 인식도 문제다. 이분법적인 정치 논리로 정권 교체 이후 일부 영화제 폐지가 결정된 게 아니길 바란다”는 의견을 냈다.
지역 영화제들의 축소‧폐지 바람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에 이어 충청북도도 올 10월 4회째를 맞을 예정이던 충북 무예액션영화제를 지난주 폐지 통보했다. 영화제 관계자는 “김영환 충북도지사 가 전임 지사 역점 사업이던 충북도 무예 관련 행사‧단체 지원 예산을 재점검, 지원을 중단한다고 결정했다”고 밝혔다. 울산시는 지난해 시작된 울산 국제영화제를 중단하고 예산 일부를 관내의 울주 세계산악영화제에 통합하기로 최근 결정했다고 시 관계자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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