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자리 예산을 처음으로 삭감했다. 일자리 예산은 문재인 정부에서 5년 동안 두 배나 늘렸다. 윤석열 정부는 첫 예산 편성 작업을 하면서 실효성에 따라 정책을 정비하며 불필요하거나 낭비가 심한 사업을 조정했다. 정부가 주도하던 일자리 창출 사업은 민간 주도로 정책 방향을 대폭 수술해 감액했다. 빈 강의실 불 끄기, 공공근로와 같은 돈을 퍼부어 청년이나 노인에게 아르바이트형 일자리를 정부가 직접 만들어 제공하던 사업을 없애거나 축소했다. 정부가 주도 또는 지원하는 사업은 첨단산업 인력 확충과 디지털 전환 고용 지원, 직업훈련 등으로 선회했다.
내년 일자리 예산은 30조340억원이다. 올해(31조5809억원)보다 1조 5000억원가량 감소했다. 정부의 총지출대비 일자리 예산 비중도 올해 5.2%에서 4.6%로 줄었다.
문 정부에선 2017년 15조9000억원이던 일자리 예산을 2018년 18조181억원으로 불린 뒤 올해까지 5년 동안 98.1%나 증액했다. 이 기조가 윤 정부에서 삭감되며 방향 전환을 한 셈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일자리 예산 편성의 기본 방침을 일회성 퍼붓기를 지양하고, 국가 경쟁력 강화와 취약계층 보호, 일하는 사람에 대한 안전망 확충 등으로 바꿨다"며 "이에 따라 일자리 사업 구조조정을 하게 되고, 예산도 그것에 맞게 편성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우선 돈을 퍼부어 정부가 직접 일자리를 만들던 사업 예산을 902억원, 2.8% 삭감했다. 이런 사업은 단기 알바형으로, 예산이 끊기면 사라지는 일자리다. 문 정부에서 고용률이 높아지는 듯한 착시현상을 일으킨 대표적 사업이다.
정부는 또 청년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인건비를 지원해주던 청년추가고용장려금도 시한 만료와 함께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대학 재학 때부터 경력 설계와 직업훈련, 일경험을 제공하는 데 지원하기로 했다. 융자를 통한 고령자 고용환경 개선지원 사업도 일부 감액하거나 폐지한다. 이렇게 해서 1조4282억원, 21.9%를 줄였다.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인상했다가 고용 충격이 심각해지자 급조해서 도입한 일자리 안정자금도 폐지한다. 정부가 사기업 근로자의 임금을 대신 지급하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대표적인 정부발 노동시장 교란정책으로 비판받았다.
고용서비스 부문에서도 6.9%(1307억원) 감액하고, 실업자의 소득을 유지하고 지원하던 사업도 2.4%(3364억원) 줄였다.
대신 민간으로 직접 일자리 사업이나 고용알선 사업을 위탁하는 민간 주도형 일자리 사업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또 디지털이나 반도체, 바이오, 미래형 자동차, 나노 사업 인력 양성과 같은 첨단산업 분야의 민간 일자리 창출 지원 사업을 강화했다. 직업훈련 부문에 2486억원 증가한 2조7271억원, 창업 지원에 1050억원 늘린 2조9397억원을 편성한 까닭이다.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도 대폭 강화했다. 저임금 근로자에게 사회보험료 지원을 확대하고, 장애인에게 고용장려금과 출퇴근 비용을 지원하는 한편, 플랫폼 종사자를 대상으로 직업훈련을 강화하기로 했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급여도 올해 8000명에서 1만8000명으로 두 배 넘게 지원하기로 했다.
노동개혁 예산도 별도로 편성했다. 임금 체계 개편에 드는 비용을 지원하는 세대상생형 임금체계 확산 예산을 올해 7억7000만원에서 24억3000만원으로 늘렸다. 임금체계 개편과 근로시간 개선을 위한 현장 컨설팅 비용도 280억원 편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