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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때 빚 416조' 허리띠 졸라맨다…尹정부 예산 긴축 전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윤석열 정부가 출범 후 처음으로 편성하는 내년 예산을 640조원 아래로 짰다. 2010년 이후 13년 만의 예산 ‘긴축’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오는 2026년까지 50%대 중반으로 관리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문재인 정부 임기 5년 동안 확장 재정으로 급속도로 악화한 나라 살림을 정상화시키겠다는 취지다.

30일 정부는 국무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의 ‘2023년도 예산안’과 ‘2022~2026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확정했다. 이에 따르면 내년 총지출(639조원)은 올해 본예산과 비교해 5.2% 늘어난 규모다. 하지만 올해 추가경정예산(추경)을 거쳐 확대된 679조5000억원보다는 40조원 이상 줄어들었다. 새해 본예산 지출 규모가 전년도 총 지출액보다 줄어드는 것은 13년 만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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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본예산 증가율 5.2%는 문재인 정부 5년 임기 연평균 예산 증가율(8.7%)과 비교하면 3.5%포인트 낮다. 나라살림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내년 58조2000억원(GDP 대비 2.6%)으로 올해 예상치인 110조8000억원(GDP 대비 5.1%)보다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 내년 국가채무 증가 폭은 4년 만에 100조원 아래로 내려간다.

이처럼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매는 이유로는 폭증한 국가채무가 첫손에 꼽힌다. 문재인 정부에서 늘어난 국가 채무는 416조원으로 이전 두 정부(이명박ㆍ박근혜)에서 늘어난 것(351조원)보다도 많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2017년 36.0%에서 올해말 49.7%로 크게 오른다.

문재인 정권 초부터 복지 예산을 확 키웠고, 2020년부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대응을 위한 씀씀이를 늘렸기 때문이다. 이는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이어지는 만큼 방만하게 운영한 재정을 정상화시키겠다는 게 윤석열 정부의 목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우리 미래세대에게 빚더미인 나라를 물려줄 순 없다"고 했다. 내년 국가채무는 1134조8000억원으로 66조원 늘어나는 데 그친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0.1%포인트 오른 49.8%로 증가속도를 둔화시켰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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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간의 정부주도 확장재정에서 탈피, 민간ㆍ시장주도 경제로의 도약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재정의 역할을 재정립한다”며 "중장기적으로는 2026년까지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2% 이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50% 중반대에서 관리한다"고 말했다.

올해 5%대 고물가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재정지출을 늘렸다가는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날 용산 대통령실 청사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우리가 물가와 전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정부도 긴축을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밝힌 배경이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물가 상승은 대외 변수에 기인하는 측면이 크지만, 내부의 인플레이션 압박을 억누르기 위해서라도 금리 인상과 함께 재정을 긴축기조로 가져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추후 위기가 오더라도 재정으로 대응하려면 현 상황에서는 여력을 비축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예산안을 뜯어보면 윤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과 새 정부 국정과제를 실천하기 위한 지출이 새로 포함됐다. ▶군장병 봉급을 82만원에서 130만원으로 인상하고(1조원) ▶만 0세 아동 양육가구에 월 70만원을 주는 부모급여를 신설하며(1조3000억원) ▶청년원가주택과 역세권첫집 5만4000호를 공급하는(1조1000억원) 등 11조원의 예산이 들어간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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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와 서민 지원을 위한 예산은 전년보다 늘렸다.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강화에 31조6000억원, 장애인ㆍ자립준비청년ㆍ한부모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데 26조6000억원을 쓴다. 사회복지 분야의 내년 지출 증가율은 5.6%로 내년도 총지출 증가율(5.2%)을 웃돈다. 저소득층과 아동ㆍ청소년, 장애인 등 취약계층 지출만 보면 증가율이 12%에 달한다.

농수산물 비축 확대, 생계비 경감 등 민생물가 안정 지원 예산은 5조5000억원으로 늘렸다. 민간일자리 연계를 위한 직업훈련, 고용서비스 지원 강화 예산도 12조1000억원으로 증액했다.

文정부 역점사업 예산 줄줄이 깎여 

아울러 역대 최고 수준인 총 24조원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도 단행한다. 지난 정부에서 역점을 뒀던 직접 일자리 사업을 대폭 축소하고,  지역사랑상품권은 중앙정부 예산안에서 전액 삭감해 지방자치단체의 고유업무로 되돌렸다. 그린 스마트스쿨, 수소차 보급 등 전 정부의 한국판 뉴딜 사업 예산도 구조조정 대상에 올랐다. 정부는 “실제 집행률이 극히 저조하거나 활용도가 낮고, 운영ㆍ관리 방식이 전환된 사업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수그러든 만큼 코로나 방역 및 소상공인 한시 지원 예산은 군살빼기에 들어간다. 공무원 보수는 서기관(4급) 이상은 동결하고 장차관급은 10%를 반납하기로 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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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로 보면 산업ㆍ중소기업 예산(25조7000억원, -18%), 사회간접자본 예산(25조1000억원, -10.2%), 문화ㆍ체육ㆍ관광 예산(8조5000억원, -6.5%)의 감소 폭이 크다. 이는 국세 수입을 임의로 늘리기 어려운 만큼, 지출을 최대한 졸라매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추 부총리는 “절감한 재원은 국정과제 이행, 서민ㆍ사회적 약자 지원, 미래대비 투자에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이처럼 건전재정과 사회적 약자 지원, 민간 경제 활성화라는 세마리 토끼 잡기에 나섰지만, 뜻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이른바 3고(고물가ㆍ고환율ㆍ고금리) 현상에 따라 경기 침체의 골이 더 깊어질 수 있다. 경기가 꺼지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계층은 서민 등 사회적 약자다. 향후 추경 편성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1980년대 미국 폴 볼커 연준 의장 시대에 긴축 정책을 펼친 것만 크게 알려졌지만, 실상은 규제 완화와 산업 구조조정이 적극적으로 이뤄졌다”며 “긴축과 함께 거기에 걸맞는 성장 지향적인 정책을 병행해야 위기 국면에서의 탈출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박영범 교수는 “일회성 지원이 아닌, 명확한 지원 원칙과 기준에 따라 예산을 집행해야 정치권의 예산 증액 요청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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