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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경민의 이코노믹스

원자로 한번 수출하면 100년 넘게 돈 벌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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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또 하나의 ‘캐시카우’ 원전

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의에 참석했을 때 가장 실속 있는 만남은 페트르프알라 체코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한국 원전에 대해 적극적인 경제 외교에 나섰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공식 폐기한 윤 대통령이 원전 수출에 박차를 가하는 순간이었다. 지난 5년간 탈원전 정책으로 크게 파괴된 한국의 원전산업 생태계가 윤 대통령의 체코 원전 건설 세일즈로 부활의 신호탄을 쏜 셈이다.

체코는 2035년부터 운영허가 기간이 만료되는 기존 원전의 대체를 위해 두코바니 지역에 8조8000억원 규모로 120만 킬로와트(㎾)급 원전 1기를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체코 정부는 신규 원전 발주를 위해 사업모델 확정, 재원조달 방안 등 원전 신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안보상의 이유로 중국과 러시아의 참여를 배제한 채 한국·미국·프랑스의 3개 공급사의 참여를 추진 중이다. 이들 3개국 사업자는 안보평가 결과 문제없는 것으로 확인돼 지난 3월 최종입찰 안내서를 받았다.

수명 늘려 80년 사용하는 게 관행
해체 기간 포함하면 100년 사업

체코·폴란드 원전 수주 적극 추진
한국 원전 품질·가격 경쟁력 높아

미·불·러·중 제치려면 초격차 필요
탄소중립, 수출증대 정책 뒷받침

UAE에서 사업 역량 이미 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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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는 2024년 우선협상자 및 최종사업자를 선정하고, 설계 및 인허가 취득과정을 거쳐 2029년 건설에 착수, 2036년 상업운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실적 측면에서 한국은 미국·프랑스 등 경쟁사보다 우수한 가격경쟁력을 갖고 있다. 예산과 공사 기간 내에 준공한 아랍에미리트(UAE) 사업을 통해 증명된 사업역량과 경쟁사 대비 차별화된 수주 활동으로 수주를 따낼 가능성이 큰 편이다.

한국은 국내에 총 12기가 건설돼 30년간 안전하게 운영 중인 기존 모형(OPR 1000) 원자로 냉각재 계통에 최신 모형(APR 1400)의 안전기능을 적용한 APR 1000 노형으로 입찰에 참여하고 있다. 경쟁국인 미국의 AP 1000 원자로, 프랑스의 EPR 1200보다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한국이 유리하다. 2020년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행한 국가별 원자력 발전비용을 보면 1메가와트(㎿) 발전 비용이 프랑스는 71.10달러, 미국은 71.25달러, 한국은 53.30달러로 한국의 가격경쟁력이 훨씬 우월하다.

UAE에 수출한 APR 1400은 140만 킬로와트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대형원자로다. UAE 수도인 아부다비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원전은 한국의 기술로 만든 원자로이고 설계수명이 60년이지만 미국의 원전운용이 보여주듯이 80년 정도는 사용될 수 있는 고품질의 원전이다. 지금의 기술로는 부품 교체를 통해 80년 이상 계속 운용할 수 있지만, 설령 문을 닫는다 하더라도 한국이 할 것이고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까지 100년간 이런저런 관리 서비스로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이다.

교류 확대로 수출 기반 다져야

터 파기 공사를 시작했던 초기에 방글라데시·파키스탄 등 외국인 노동자들이 55도에 이르는 바깥 온도의 열기를 견디며 일을 했는데 놀라운 것은 한꺼번에 5000명이 일시에 식사할 수 있는 이른바 함바집 식당(공사장에 들어서는 식당)부터 마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반찬도 웬만한 식당의 뷔페처럼 충분히 먹게 하는 UAE의 공사장 식당은 1970년대 중동의 이곳저곳에서 혹독한 건설 경험을 했던 한국만의 자산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번 사업을 수주할 경우 체코는 최대 3기의 추가 원전 건설도 검토하고 있어 후속 수주사업을 획득하는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 내다 본다. 폴란드 역시 원전건설을 추진하고 있는데 2040년 국가에너지 정책 개정안 발표에 의하면 루비아토보와 코팔리노 2개 부지에 총 60만 킬로와트에서 90만 킬로와트 규모의 신규원전 6기의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2033년 신규원전 1호기의 운용을 시작으로 2043년까지 2~3년 단위로 6기의 원전을 순차적으로 건설하게 된다.

원전 수출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은 체코나 폴란드에서 수주 활동을 벌이는 것만이 아니고 각종 인프라 사업과 원자력 분야 이외의 민간 기업 간 교류를 넓혀가면 수출기반을 다지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신한울 3, 4호 이르면 2030년 가동

한국 내 사정은 어떤가. 건설이 중단되었던 신한울 3, 4호기의 신규건설이 새로이 시작된 상태다. 경북 울진에 들어설 신한울 3, 4호기는 2008년 12월 제4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반영되면서 시작되었는데 2017년 12월의 제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과 2020년 제9차 전력계획에서 제외되며 원전건설사업이 완전히 백지화돼버렸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원전건설 복원 선포에 따라 2022년 7월 5일 새 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하고 신한울 관련 주요 내용을 2022년 말 제10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반영하고, 2023년 초 주요기기 사전제작 착수하고 2023년 7월 주요기기 계약을 체결할 방침이다.

신한울 3, 4호기의 조속한 공사착수를 위해서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하는 실시계획 승인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주관하는 건설허가 등의 인허가 취득절차가 선행돼야 한다. 이 기간을 하루빨리 앞당겨야 건설이 조기에 추진될 수 있다.

한국은 현재 고리 5기, 새울 2기, 월성 5기, 한빛 6기, 한울 6기로 총 24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다. 계획 중인 신한울 3, 4호기가 2030년경 가동되면 원자력 발전이 차지하는 전력 생산량이 30% 내외가 될 것으로 예상해 에너지 위기를 맞는 재앙은 없으리라 본다.

문 정부의 탈원전 폐해 극복

원전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서라도 국내외적으로 할 일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조용히 진행 중이었던 이집트 엘다바 원전사업을 한국이 수주하는 것으로 결정돼 향후 체코와 폴란드 수주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되었고 원전건설 생태계 복원이 예상보다 더 빨리 속도를 내게 될 것으로 평가된다. 이집트 사업은 120만 킬로와트급 원전 4기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인데 원 계약자는 러시아이고 한국은 제2차 사업에 참여하는데 건설비가 3조원이 넘는다.

한수원은 터빈 건물 등 80여 개의 건물과 구조물을 건설하고 기자재도 납품할 예정이다. 한수원은 2018년부터 사업추진을 해 지난해 2차 건설사업 단독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이집트와 사업환경이 유사한 UAE에서 우수한 원전 관리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국내 원전건설에 국력을 기울여 속도 높게 원전산업 기반을 회복하는 일이다. 지난 정권에서 탈원전을 선언하는 바람에 원전건설에 참여했던 부품산업들도 많이 떠나갔는데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됐다. 이 과정에서 윤석열 정부가 국내 원전건설에 급한 대로 1000여억원을 미리 투자하기로 한 것은 바람직한 결정이었고 원전수출위원회의 발족도 원전 수출의 발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천연자원 부족한 한국의 선택

이웃 나라 일본은 총 55기의 원전을 가동하던 원자력 대국이었고 국제사회에서도 원자력에 대해 영향력이 큰 나라였다. 하지만 지진과 대형 쓰나미 재앙으로 지금은 총 9기밖에 가동을 하지 못해 전력 부족으로 정전사태를 막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천연자원이 없는 한국과 일본은 안전성을 최대한 확보하면서 30% 정도의 전력은 반드시 원자력발전으로 충당해야 한다. 일본 핵연료 정책연구회 미즈카미 토시마사 연구원은 “일본은 뉴스가 진행되는 NHK 스튜디오조차 절전 모드로 운용되고 관공서 사무실도 더위를 느낄 정도로 전기 절약을 하며 대규모 정전사태를 막기 위해 온 국민이 어려움 속에서 생활해 나가고 있다”고 토로하며 하루빨리 원자력 에너지의 복원을 소원하고 있다.

UAE에 대형원전 4기를 수출한 한국은 체코와 폴란드에 원전을 수출하면 지난 5년 탈원전을 극복할 뿐만 아니라 100년 ‘캐시카우(수익 사업)’인 원자로 수출 강국으로 올라게 된다. 나아가 프랑스와 함께 원자력 대국이었던 일본의 자리를 한국이 차지할 절호의 기회를 잘 살리게 되면서 한국경제를 뒷받침하는 기간산업이 될 수 있다. 이산화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원자력에너지는 탄소 중립 정책과 어우러지면서 원전 수출산업은 미래가 희망적이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일은 원자력 안전임을 명심해야 한다.

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