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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은주의 아트&디자인

RM효과, “한국이 궁금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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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은주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 뛰어난 미술품이나 예술작품을 보았을 때 순간적으로 느끼는 강렬한 감흥을 이렇게 부릅니다. 프랑스 작가 스탕달(1783~1842)이 1817년 이탈리아 피렌체 산타크로체 성당을 찾았다가 감동에 압도돼 성당을 나서는 순간 심장이 쿵쾅거리고 곧 쓰러질 것 같은 경험을 했다죠.

오래전 책에서 접하고 잊고 지내던 이 단어를 기억하게 된 것은 최근 방탄소년단(BTS) 리더인 RM(김남준) 덕분이었습니다. 지난 24일 뉴욕타임스(NYT)에 예술 컬렉터 RM 인터뷰 기사가 났는데요, 여기서 RM은 자신의 인생을 바꾸게 한 소중한 경험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2018년 투어 중 시카고 현대미술관(Chicago Art Institute)에서 모네와 쇠라의 그림을 보고 놀라운 경험을 했다”며 “그게 거의 스탕달 증후군 같았다”고 했습니다. 어릴 땐 부모님 따라 미술관에 가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던 그가 미술의 매력에 빠진 순간이었습니다.

이중섭, 나뭇잎과 두 아이, 1941, 종이에 펜, 채색, 9x14㎝. 이건희컬렉션.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중섭, 나뭇잎과 두 아이, 1941, 종이에 펜, 채색, 9x14㎝. 이건희컬렉션.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후 펼쳐진 RM의 예술사랑 여정은 이미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습니다. 거장 윤형근 작가부터 젊은 작가들까지 한국 작가들 작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하며 젊은 층을 미술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세계에 미치는 RM의 영향력은 상상 이상입니다.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7000만 명이 넘고, 인스타그램은 팔로워는 3700만 명이 넘습니다.

NYT 기사에 달린 250여 개의 댓글 또한 놀랍습니다. 뉴욕과 워싱턴·플로리다·필라델피아 등 미국 각 도시는 물론 브라질·멕시코·자메이카·폴란드·캐나다·인도·이집트·페루 등지에서 수많은 열렬한 팬들이 그로부터 얼마나  큰 영감을 받고 있는지 적은 내용이 하나하나 진지합니다. 한국 문화는 이렇게 세계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타이밍인가요. 9월 2일 서울 코엑스에서 세계적인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과 한국 대표 아트페어 키아프 서울이 동시에 개막합니다.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미술관과 재단 관계자, 수퍼 컬렉터가 한국을 찾습니다. “한국이 너무 궁금해.” 요즘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외국인 지인들로부터 이런 얘기를 가장 많이 듣는다죠. 미술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리즈를 핑계 삼아(?) “한국 미술이 궁금하다”며 지금 바깥손님들이 줄이어 입국하고 있습니다. 지난 20년간 K드라마와 K영화가 열고, 최근 BTS 등 K팝이 다져온 길 위로 한국미술의 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4년 전 우연히 찾은 미술관에서 ‘스탕달 신드롬’을 경험한 아이돌 스타 RM이 그 영향력의 반경을 키워온 여정이 놀랍습니다. 언젠간 자신의 소장품을 보여줄 전시공간을 만들겠다는 그의 꿈이 꼭 이뤄지길 바랍니다. 미술계를 비롯해 한국 문화계는 이미 BTS와 RM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