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석준 “사법불신 책임 통감”…800원 횡령 해고 “마음 무겁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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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첫 대법관 지명자인 오석준(60·사법연수원 19기) 후보자가 2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형평성 논란이 된 ‘800원 횡령 해고’ 판결 논란에 대해 “살피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마음이 무겁다”고 밝혔다. 오 후보자는 이날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가 회복되지 못한 현 상황에 책임을 통감한다”면서도 “사법부 구성원 모두는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려는 시도에도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29일 국회에서 열린 오석준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오 후보자가 선서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800원 對 85만원’논란…오석준 “마음 무거워”

오 후보자는 29일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과거 버스기사의 800원 횡령 사건에 관해 “그 분이 제 판결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며 “나름대로 사정을 참작하려 했으나 살피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고 유감을 표했다.

오 후보자는 2011년 12월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 재판장으로 운송수입금 800원을 횡령한 버스기사 해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17년 동안 버스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버스요금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당시 행정소송 재판장이었던 오 후보자는 “노사합의서에 ‘운전원의 수입금 착복은 금액을 불문하고 해임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었다.

이에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오 후보자의 판결로 A씨가 10년간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막노동으로 5명의 가족을 부양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재판 과정에서 가족이 생계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사정 등은 심리하지 않았나”고 추궁했다. 오 후보자는 “제가 오랫동안 재판을 하면서 나름대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소송 당사자의 사정을) 참작하려 했으나 미처 살피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며 “(버스기사 판결은) 그런 대표적인 사례다. 유념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버스회사 측 변호사가 오 후보자의 고등학교 후배이자 사법연수원 동기라는 점에서 친분에 따라 손을 들어준 것 아니냐”고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오 후보자는 “이 사건 외에도 자신이 심리한 3~4건의 민사소송을 맡았는데 승소한 건 버스기사 횡령 사건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법관에겐 민사사건에서 그런 (선후배) 관계에 있는 분들이 대리인으로 오는 것은 이례적이지 않다”며 “저희들이 그런 것에 영향은 거의 안 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2013년 2월 변호사로부터 85만원 향응을 받은 검사의 면직은 “사회통념상 가혹하다”며 취소한 판결과 대비돼 “유전무죄, 무전유죄”, “사회적 약자에게 유독 가혹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특히 야당은 당시 검사는 유흥업소 성매매 의혹도 있는데 징계를 취소한 건 상식적이지 않다고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오 후보자는 “사건 경위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드릴 것도 있지만, 지적하신 취지는 십분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연합뉴스

1년 후배 ‘코드인사’ 논란에…오석준 “尹 전화 와도 끊겠다”

오 후보자는 윤석열 대통령과의 사적 인연에 따른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 논란에 대해서는 “유념하고 명심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1년 후배인 오 후보자는 함께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서울고법 부장판사일 때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재직하던 윤 대통령과 자주 만나는 등 친분이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오 후보자는 “저는 술을 좋아하진 않는다”며 “(윤 대통령과) 대학교 다닐 때와 그 이후의 만남에서도 식사를 하게 되면 술을 같이 나누긴 했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에게) 전화가 와도 끊겠다”고 답해 장내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앞서 오 후보자는 국회에 낸 서면 답변서를 통해 “유달리 친분이 있지는 않다”고 했다.

김명수 대법원 겨눴나 “재판 독립 침해 시도에 맞서야”

오 후보자는 이날 모두 발언에서 “사법부 구성원 모두가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려는 어떤 부당한 시도에 대해서도 단호히 맞서야 하고, 스스로 편향에 빠지지 않도록 한시도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정한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첫 사명”이라며 “국민들의 눈에 법관과 사법부가 독립적이고 중립적으로 보여야 한다”고도 했다. 오 후보자의 이같은 발언은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후 제기된 편향성 지적, 작년 초 불거진 김 대법원장의 거짓말 파문 등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냐는 해석도 나왔다.

오 후보자는 김명수 체제에서 시행된 법원장 후보추천제와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법원장 후보추천제가 ‘재판을 지연하고 열심히 하는 법원 분위기를 흐리게 된다’는 지적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한다”며 “판사들이 선거라든가 투표에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고, 법원장 추천제라는 것은 그 소속 법원에서 대부분 장기간 내지 종신 근무하는 형태에서 뽑는게 취지에 맞는 것 같다”고 했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를 놓고서는 “사건처리가 늦어지게 되고 통계를 신경 안 쓰게 되니까 폐단이나 부작용이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 후보자는 서울 광성고와 서울 법대를 졸업했고, 1987년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90년 서울지법 서부지원에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오 후보자가 이날 인사청문회 이후 국회 임명 동의(재적 과반수 출석, 출석 과반수 찬성)를 통과하면 윤 대통령이 최종 임명하게 된다. 오 후보자는 내년 9월에 퇴임하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후임으로도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