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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근원 탐구한 화가 김차섭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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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김차섭 화백. 그의 뒤로 자갈을 소재로 한 그의 작품이 보인다. [사진 유족 제공]

생전의 김차섭 화백. 그의 뒤로 자갈을 소재로 한 그의 작품이 보인다. [사진 유족 제공]

문명의 근원을 탐구하며 한국 전위미술에 앞장섰던 김차섭 화백이 28일 새벽 별세했다. 향년 82세.

1940년 일본에서 출생한 김 화백은 1944년부터 경북 경주에서 자랐으며 경주고를 나와 서울대 미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김 화백은 1968년부터 이화여중 미술 교사로 근무했으며 이듬해 이화여고로 옮겼다. 서울대 미대 동문인 곽훈, 홍익대 미대 출신인 하종현, 박종배 등과 함께 1969년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그룹)를 창립하는 등 제도권 미술에 반발하는 실험적인 작품활동을 벌였다.

1970년 도교 판화 비엔날레, 1971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등에 참여하는 등 국내외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다 1974년 미국 록펠러 장학재단 지원자로 선정됐다. 1975년 미국으로 건너가 이화여고 동료 교사였던 부인 김명희 씨와 이듬해 결혼했으며 프랫인스티튜트에서 대학원 과정을 함께 마쳤다.

김 화백의 섬세한 판화(에칭) 작품은 당시 미국 화단의 눈길을 끌었으며 뉴욕현대미술관(MoMA), 브루클린 미술관. 버지니아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호암미술관 등 주요 기관에 소장됐다.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고인은 판화에 쓰이는 화공약품의 영향으로 눈에 상이 두 개로 맺히는 병에 걸려 한때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건강이 회복되자 1990년 귀국해 강원도 춘천의 폐교에 작업실을 차렸다. 이후 부인과 함께 뉴욕 소호와 춘천 내평리를 오가며 30여 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해왔다.

김차섭 화백의 작품. [사진 중앙포토]

김차섭 화백의 작품. [사진 중앙포토]

고인은 자연과 자신과의 관계를 살피며 인간 문명의 근원을 탐구하는 작업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2년 제14회 이중섭미술상과 2008년 제9회 이인성미술상 등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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