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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꼼수 판박이, 尹의 공정과 어긋나"…與당헌 개정 비난 쇄도

중앙일보

입력

"판결의 핵심은 당헌에 '비상상황 규정'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비상상황을 전제로 비대위원장을 의결한 것이 절차위반이라는 뜻으로 보인다.상임전국위 소집과 전국위 의결을 통해 '비상상황'규정을 당헌에 포함시키면 된다."(장예찬 청년재단 이사장)
법원이 주호영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직무집행을 정지시킨 지난 26일 윤석열 캠프 청년본부장 출신의 장 이사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당시 이 글엔 "꼼수 부리다가 이 망신을 당했는데 또 꼼수냐"는 댓글이 여럿 달렸는데, 주말을 거치며 장 이사장의 아이디어가 실제 '현실'로 바뀌고 있다.
 국민의힘이 문제가 된 당헌ㆍ당규를 재개정해 비상대책위원회를 새로 출범시키기로 결정키로 하면서다. 그러자 당내에서도 “꼼수 개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국민의힘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이 당초 ‘이준석 지도부’를 해산하고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킨 근거로 삼은 건 당헌 제96조 1항이었다. ‘당 대표가 궐위되거나 최고위원회의 기능이 상실되는 등 당에 비상상황이 발생한 경우’에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킬 수 있다는 규정이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대표가 당 윤리위원회 중징계로 6개월 동안 당적이 제한된 점 ▶최고위원들(배현진ㆍ조수진ㆍ윤영석)이 ‘줄사퇴’를 한 점 등을 들며 지난 5일 상임전국위원회에서 “당의 현 상황이 비상상황에 해당한다”고 유권해석했다. 이 상임전국위 의결을 근거로 16일 주호영 비대위가 공식 출범했다.

그러나 법원은 26일 이 대표가 낸 가처분 신청 판결문에서 “국민의힘에 비대위를 설치해야 할 정도의 ‘비상상황’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못박았다. 비대위 출범 근거 자체가 없다는 판단으로, “(이준석을 몰아내기 위한)의도된 비상상황”이라는 이 대표의 주장을 인정한 것이다. 법원은 ▶당 대표에 대한 당원권 6개월 정지 징계는 ‘(당헌상)궐위’에 해당하지 않고 ▶사퇴하지 않은 최고위원들이 남아있어 최고위가 기능을 상실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특히 법원은 권성동 원내대표가 애초에 이 대표에 대한 징계를 ‘궐위’가 아닌 ‘사고’로 규정하고 당 대표 직무대행을 수행하고 있던 점 등을 들며 국민의힘 측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법원은 “일부 최고위원들이 국민의힘의 지도체제 전환을 위해 비상상황을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이는 지도체제 구성에 참여한 당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써 정당민주주의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17일 오후 서울남부지법에서 당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을 정지해 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 사건의 심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17일 오후 서울남부지법에서 당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을 정지해 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 사건의 심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그러자 결국 국민의힘은 27일 긴급의원총회에서 법원이 문제삼은 당헌 제96조의 ‘비상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고쳐서 다시 새로운 비대위를 구성하겠다고 결정했다. 박형수 원내대변인은 “현재 비대위에 대해서 이 대표가 가처분 신청을 한다면 지금 (비대위원장의 직무를 정지시킨)법원의 논리와 똑같은 논리로 가처분이 인용될 가능성이 높다”며 “그래서 관련 당헌ㆍ당규를 명확히 개정한 후 새로운 비대위를 구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 원내대변인은 “최고위원 2분의1 이상이 사퇴한다든지, 선출직 최고위원이 전원 사퇴한다든지 등 (비상상황을 판단할)구체적인 규정을 넣을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당내에선 ‘당 대표가 중징계를 받을 경우’ 등의 문구가 당헌에 포함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재선의원은 “법원의 정치적인 결정에 따라 지도부 공백이 발생했기 때문에 새로 지도부를 꾸리기 위해선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법원이 비대위원장 임명권자에 ‘당 대표 직무대행’을 추가한 지난 9일 전국위원회의 당헌 개정은 문제삼지 않은 만큼, 당헌을 추가로 개정해 절차적 하자를 치유한 뒤 다시 비대위를 꾸리겠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당내에서도 해당 당헌 개정이 “당 대표를 몰아내기 위한 꼼수 개정”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향후 당내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개정 당헌을 근거로 당 대표의 하위 직책인 최고위원들이 지도부를 형해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의총에서도 중립 성향으로 분류되는 3선 의원이 “(당헌을 어설프게 개정할 경우)앞으로도 몇 명이 작당을 하면 당 대표를 몰아낼 수 있게 된다. 이런 부분을 잘 감안해서 개정을 해야 한다”는 우려를 표했다고 한다. 한 초선의원은 “일을 저질러놓고 사후에 수습하는 ‘어거지’ 당헌개정”이라며 “이런 식이면 앞으로 필요할 때마다 당헌에 담긴 한 단어 한 단어를 마음대로 고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당헌 개정이 그간 더불어민주당의 '당헌 80조' 개정에 대해 비판해온 당의 기조에도 모순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5선의 조경태 의원은 28일 기자회견에서 “불리하다고 당헌ㆍ당규를 고치는 건 그토록 비판해왔던 민주당과 다를 바 없는 내로남불식 처방이자, 윤석열 대통령이 주장했던 공정과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3선 하태경 의원은 페이스북에 “당이 민주주의도 버리고 법치주의도 버리고 국민도 버렸다”고 썼다. 아무리 코너에 몰렸다고 해도, 당헌 당규를 누더기로 만들고, 꼼수로 꼼수를 덮어서는 안된다는 주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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