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돈 벌었어" 동료 말에 혹했다…2억 잃고 파혼 당한 대기업男 [2030 '빚투코인' 블랙박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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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빚투족 욕망을 포위한 3박자

2030세대를 ‘빚투코인’의 늪에 빠지게 한 직접적인 원인은 자신들의 욕망이었다. 그러나 서울회생법원 앞에 늘어선 2030 빚투족들은 이구동성 ‘욕망을 포위한 3박자’에 대한 회한을 쏟아냈다. 가상자산 전문 커뮤니티와 유튜브에서 “오른다”를 반복한 자칭 고수들, “직장 동료나 친구의 친구가 수억을 벌었다”는 투로 반복 재생되는 주변의 신화, 그리고 ‘1분 대출’ 로 표상되는 금융기관들의 유혹이 그 3박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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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인의 우물, 유튜브와 커뮤니티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2030들의 유일한 투자 참고서는 유튜브와 커뮤니티였다. 대기업에 다니다가 개인회생 신청 후 중소기업으로 옮겼다는 이모(31)씨는 “가끔은 ‘코인판(코인 커뮤니티)’에 나오는 대로 해 보고, 또 가끔은 ‘코반꿀(코인판에 나오는 전략을 반대로 취하면 돈이 된다는 뜻)’로도 해보면서 울고 웃었다”며 “다들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무제표와 각종 공시, 그리고 현장 실사까지 곁들인 애널리스트 보고서 등 참고서가 넘치는 주식시장과는 달리 가상자산 세계에선 ‘고수의 썰’외에 정보랄 게 마땅찮다. ‘오피셜’이 없는 상태에서 유튜버들은 하락장에서도 늘 “일시 하락 뒤엔 그래프가 솟았으니 지금도 솟을 때”라는 식의 ‘뇌피셜’을 끊임없이 송출했다. 코인 투자로 지난 1년간 4800만원의 빚을 진 중소기업 사원 성모(34)씨는 “유튜버들이 조회수를 올릴 목적으로 올린 정보를 믿은 결과”라며 “뼈저리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코인을 공부한다’는 건 코인이 반영하는 가치를 파악할 수 있을 때 성립할 수 있는 말”이라며 “경영 활동에 대한 평가나 기대를 반영하는 주식과 달리 오직 급등락하는 시세가 전부인 코인을 공부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코인의 알고리즘과 사업계획을 담은 ‘백서’가 있지만 “수많은 백서의 70% 정도는 내용이 거의 같고 거짓인 경우도 많아 있으나마나한 포장지에 불과하다”는 게 홍 교수의 말이다.

알트코인(비트코인 이외의 암호화폐) 리플과 퀀텀에 투자해 다 잃었다는 이모(31)씨는 “자신이 차트를 볼 줄 안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있지만 믿을 근거가 없었다”며 “커뮤니티에서 나오는 정보를 스스로 종합해 투자대상을 정했다”고 말했다.

믿을 수 없는 정보의 홍수를 등지고 멀리 일론 머스크를 추종한 개미들도 적잖았다. 테슬라 성공 신화를 동경해 대학 재학 중 코인 투자를 시작했다는 임모(26)씨는 “코인을 달러 지폐처럼 만들겠다는 일론 머스크의 말을 믿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사기”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1억을 빌려 도지코인 등에 부었다는 장모(31)씨는 “‘머스크가 띄워주니까 언젠가 오르겠지’라고 믿었다”며 “코인 시세가 이렇게 떨어질 거라고 전망한 유튜버는 1명도 없다”고 말했다.

(2) ‘당근(당신의 근처) 머스크’ 신화

일론 머스크는 SNS를 통해 비트코인과 도지코인에 대해 낙관적 전망을 쏟아냈다. 코인 투자자 장모(31)씨는 하락장 속에서도 "'머스크가 띄워주니까 언젠가는 오르겠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로이터

일론 머스크는 SNS를 통해 비트코인과 도지코인에 대해 낙관적 전망을 쏟아냈다. 코인 투자자 장모(31)씨는 하락장 속에서도 "'머스크가 띄워주니까 언젠가는 오르겠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로이터

시세가 급등할 때 주위에서 탄생한 ‘작은 머스크’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는 점도 함정이었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박모(35)씨는 비트코인 선물로 수억원을 벌어들인 직장 동료에 자극 받아 결혼자금 1억원을 탕진한 경우다. 박씨는 “잠시 이익을 보기도 했지만 손실 폭이 커졌고, 결혼이 다가올수록 더 많은 돈을 빌려 무리하게 투자했다”고 말했다. 결국 파혼 당한 박씨는 2억원 넘는 빚을 지고 법원 문을 두드렸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가상자산 시장에서 하나의 성공 스토리가 있을 때 알려지지 않은 5~10개의 실패 스토리가 있다”며 “고수익은 고위험의 다른 말이지만 기대가 앞서면 그 당연한 말이 귀에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작은 머스크’ 중에도 돈을 다 잃고 구제를 청한 이들이 적잖다. 리플과 퀀텀에 투자했다는 이모씨가 그런 경우다. 이씨는 “친구들도 한때 저를 보고 코인을 시작할 정도로 많이 벌었었다”며 “저 때문에 다같이 망했다”고 말했다. 2018년 1월에 종잣돈 1억원을 3억원까지 불렸던 이씨는 결국 수익률 –99%를 기록하고 9500만원의 빚을 안고 신용회복위원회에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3) 빚 권하는 사회 : 초저금리·‘1분 대출’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금융기관들은 “오를 것”이라는 믿음에 눈 먼 이들의 빈 주머니에 쉽게 돈 뭉치를 채워줬다. 최근까지도 인터넷 은행들은 “공동인증서가 없이도 1분이면 끝”이라거나 “평균 소요 시간 5분”이라며 ‘쉽고 빠른 대출’을 홍보했다. 온라인 광고에서 대출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거나 양치질을 하면서 손가락 하나로 가능한 손쉬운 일이었다.

지난해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의 여신 잔액은 2020년과 비교해 1년간 각각 27.6%, 137.2% 증가했다.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도 ‘쉽고 빠른’ 대출 앱을 경쟁적으로 내놨고 은행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나은행은 2019년 6월 “공동인증서만 있으면 3분 안에 비대면 대출이 가능하다”는 ‘컵라면 대출’을 출시했다. 하나은행에 따르면 2022년 1분기 신용대출의 91.1%는 비대면으로 이뤄졌다.

대기업 사원 김모(35)씨는 “대출 앱을 두드리면 10분 만에 돈이 입금됐고 이율도 잘 나왔다”며 “비트코인 가격이 떨어졌을 때 ‘많이 떨어졌으니까 오르겠다’ 싶어서 대출을 더 받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대출받은 총 2억원을 전부 가상자산에 투자해 다 날렸다.

지난해 3월부터 총 6500만원 대출을 받아 비트코인에 투자한 회사원 최모(34)씨는 “카드사에서 걸려온 대출 전화에 2500만원을 빌렸고, 또 SNS에서 대출 광고를 보고 조회해 보니 2300만원 대출이 나온다고 해 한도까지 대출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상준 법무법인 대건 대표변호사는 “2020년도부터 금리가 너무 낮아져 예적금이 무용지물이 된 상황에서 빌리는 절차가 너무 쉬워진 게 가상자산 시장 과열의 가장 큰 이유”라며 “최근 금리가 빌린 시점에 비해 거의 두 배 치솟으면서 개인회생을 문의하는 2030 숫자도 크게 늘었다”이라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2030 빚투족들의 절규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의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에 따르면 지난해 6월 3.75%였던 신규취급액 기준 일반신용대출의 대출금리는 1년 만인 올해 6월 기준 6.0%까지 치솟았다. 한편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25일 연 2.25%인 기준금리를 0.25%p 인상하는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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