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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하헌기가 고발한다

"'尹 심기경호' 장예찬의 꼼수…2시 청년? 갈라치기 그만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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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헌기 더불어민주당 전 상근부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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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예찬 청년재단 이사장. 배경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만든 당 대변인 선발 토론 배틀 '나는 국대다'의 현장 모습. 젊은이들의 정치 입문 과정으로 활용됐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장예찬 청년재단 이사장. 배경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만든 당 대변인 선발 토론 배틀 '나는 국대다'의 현장 모습. 젊은이들의 정치 입문 과정으로 활용됐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지금 좌파는 (일반인들처럼) 돈 벌어본 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과거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대표가 했던 말이다. 이 발언은 1980년대 학생 운동권 출신들은 혁명 이론이나 공부했던 사람들이라 세상물정을 모른다, 반대로 제 손으로 돈 벌어 본 경험이 있는 자신들(보수 엘리트)이야 말로 현실을 잘 알아 국가를 운영할 역량을 갖고 있다는 의미였다.

최근 장예찬 청년재단 이사장이 비슷한 말을 했다. 다만 이번엔 대상이 '좌파'가 아니라 그와 같은 청년 정치인이었다. 장 이사장은 별도의 직업이 없는 청년 정치인을 향해 '여의도 2시 청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이들이 "정치 말고는 사회생활을 전혀 해본 적 없어 평범한 청년이 겪는 취업과 자립의 문제를 전혀 모른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정치와 방송 외적으로도 사회생활을 경험하며 세금을 내온 내가 보기에 여의도 2시 청년들이 우습다"는 말을 붙였다. 황교안 전 대표가 좌파를 공격하던 맥락과 똑같다.

대학 운동권 출신의 야당 중진 정치인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이인영 의원, 전 대통령(문재인) 비서실장(왼쪽부터). '학생 운동 주도' 말고는 이렇다 할 청년 시절의 사회생활 이력은 없다. 중앙포토

대학 운동권 출신의 야당 중진 정치인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이인영 의원, 전 대통령(문재인) 비서실장(왼쪽부터). '학생 운동 주도' 말고는 이렇다 할 청년 시절의 사회생활 이력은 없다. 중앙포토

정치도 일종의 전문직 

황 전 대표와 장 이사장의 발언은 정치인은 직업이 아니라는 주장을 내포한다. 황 전 대표가 그 말을 했던 2019년엔 80년대 운동권 인사들은 이미 50대였다. 더이상 '운동권 학생'이 아니라 국회의원, 공직자 등의 경력을 쌓은 직업 정치인들이었다. 장예찬 이사장이 힐난했던 청년 정치인들 중에는 이미 공당에서 지도부와 대변인을 지낸 사람들이 적지 않다. 황 전 대표나 장 이사장에게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개념이 있었다면 감히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들이 선거 때만 되면 '스토리'가 있어 보이는 외부 인사 영입쇼라는 이벤트를 반복한다. 그리고 실패한다. 정치와 무관한 영역에서 영입한 이들이 기대만큼 능력을 보여줬거나 당면한 사회문제를 잘 해소한 걸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왜 그럴까. 정치적 전문성은 따로 존재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직업으로서' 정당 활동을 하는 이들을 가리켜 사회생활 경험이 없다고 깎아내리는 건 타당하지 않다. 정당에서 월급을 받거나 기타 외부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생활을 꾸려 나가는 것은 회사 생활하는 것과 엇비슷하기 때문이다. 장 이사장은 그들이 “평범한 청년들이 겪는 취업과 자립의 문제를 전혀 모른다"고 했지만, 나만 해도 얼마 전 이사하면서 너무 올라버린 전셋값 앞에서 청년층의 가장 큰 불만이었던 지난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을 다시금 돌아봤다.

모두 만만하게 보지만 사실 정치는 일종의 전문직이다. 최고위원이나 대변인 같은 정무직 당직자를 포함해 정당 내에서의 활동을 통해 경험치를 쌓아야만 성장하고 숙련이 가능하다. 정치혐오에 빠져 있는 이들은 그 전문성을 무슨 '권모술수' 같은 것으로만 생각하지만 정치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오히려 그 반대다.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문제와 그 문제의 근원과 해법'에 대해 치열하게 탐구해야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오고 설득력 있는 메시지가 나온다. 바로 이런 전문성을 통해 이뤄낸 성과와 역량을 바탕으로 정당 내에서 더 큰 기회를 부여 받아야 인정받는 정치인으로 클 수 있다. 그렇게 경력울 쌓으며 성장하는 이들이 많아져야 정치는 더 건강해진다. 몇몇 예를 들어보자. 김부겸 전 총리는 민주당 부대변인 직을 수행하면서 정치를 시작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처음엔 국회의원 후보 선거운동원이나 비서관으로 활동하면서 정치를 시작했다.

'진짜 청년'이 따로 있나? 

장예찬 청년재단 이사장이 지난 대선 때 SNS에 올린 글. '진짜 2030'과 '댓글 다는 2030'으로 젊은이들을 나눴다. 사진 SNS 글 캡처

장예찬 청년재단 이사장이 지난 대선 때 SNS에 올린 글. '진짜 2030'과 '댓글 다는 2030'으로 젊은이들을 나눴다. 사진 SNS 글 캡처

사실 장예찬 이사장의 이번 발언은 얄팍한 꼼수에서 나온 것이라 굳이 '직업으로서의 정치'에 대한 고민까지 논할 필요도 없다. 그는 지난 대선 경선 때 윤석열 국민의힘 대서 후보 청년특보를 맡았다. 당시 SNS상에서 윤 후보의 2030 지지율이 낮다는 지적을 받자 '비아냥 댓글 쓰는 2030이 아니라 진짜 다수의 2030을 만족시키는 정책을 만들겠다'고 답했다가 뭇매를 맞은 바 있다. 당시 윤 후보는 '120시간 노동' 발언을 비롯해 청년층의 비토를 받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이런 문제를 후보에게 진지하게 직언해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장예찬 이사장은 청년 갈라치기로 후보 환심을 사는 쪽을 택했다. 아닌가. 그의 답변에는 윤 후보에게 호의적이지 못한 2030은 대다수의 평범한 진짜 청년이 아니라는 함의가 깔려 있었으니 말이다. 이처럼 '진짜 청년, 가짜 청년'을 갈라치기 하는 발언 탓에 일부 청년들은 그에게 ‘장진짜'라는 멸칭을 붙여 주기도 했다.

이번의 발화 전략도 비슷하다. 그는 대선 땐 한국 사회의 정치혐오 정서를 활용해 '평범한 청년'과 '그렇지 않은 청년'을 자신의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나눴다. 윤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청년을 '가짜'라 낙인 찍은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엔 (이른바 윤핵관에 비판적인) 당직자로 활동하는 청년은 '진짜 청년 문제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고, 직장생활 해본 (윤핵관과 가까운) 자신만이 '평범한 청년'을 대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직접적 경험이 무조건 고민의 깊이를 담보하지도 않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그의 발언은 황당한 내로남불이다. 그런 식이면 '평생 검사만 했던 대통령이라 경제 사회 교육 문제를 전혀 몰라서 국정운영이 이렇게 엉망'이라고 비판하면 답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청년의 삶에서 멀어진 청년특보 

지난해 6월 대선 출마 선언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이 모종린 연세대 교수를 만날 때 장예찬 청년재단 이사장(맨 왼쪽)이 배석했다. 그는 이후 선거 캠프에서 청년특보로 활동했다. 뉴시스

지난해 6월 대선 출마 선언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이 모종린 연세대 교수를 만날 때 장예찬 청년재단 이사장(맨 왼쪽)이 배석했다. 그는 이후 선거 캠프에서 청년특보로 활동했다. 뉴시스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 데엔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정치를 ‘위해'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에 '의해' 사는 것이다. 전자는 정신적인 의미에서 정치를 자신의 삶으로 삼는 것이고, 후자는 정치를 지속적인 수입원으로 삼는 것이라고 했다. 재미있는 점은 베버는 이 둘은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고 봤다는 거다. 실제로 정치인은 이 둘을 다 하는 게 보통이다. 장 이사장은 오직 후자만을 추구하는 것 같다. 대선 이후 공익재단인 청년재단 이사장 자리를 얻은 후에도 TV 평론을 통해 정치를 수입원으로 삼고 있으며, 윤 대통령을 향한 청년 지지율이 폭락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통령 심기경호에나 열을 올리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오후 2시 청년을 힐난하는 게 정치인으로서의 전문성을 숙련하는 경험과 대체 무슨 상관인가. 보통의 청년의 삶에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은 바로 장예찬 이사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