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가 반한 93년생 류성실의 세계관 [더 하이엔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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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야…" "엄마…"
귀를 찌르는 전자음 속에 서로를 부르며 울부짖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이곳은 공주의 장례식장. 공주는 생을 다한 반려견, 엄마는 공주의 견주다. 커다란 스크린 속에서 공주의 관이 화장장으로 들어가자 시뻘건 불길이 일고 "아악-" 하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공주의 장례식에 참가한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며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는 감정에 휩싸였다.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수상한 류성실 작가의 개인전 '불타는 사랑의 노래'가 서울 강남구 청담동 에르메스 아뜰리에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 김상태ⓒ 류성실, 에르메스 재단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수상한 류성실 작가의 개인전 '불타는 사랑의 노래'가 서울 강남구 청담동 에르메스 아뜰리에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 김상태ⓒ 류성실, 에르메스 재단

에르메스 아틀리에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불타는 사랑의 노래' 현장의 모습이다. 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한 설치 작품을 만드는 류성실 작가의 개인전으로 소재부터 진행 형식,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까지 파격, 그 자체다. "불구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류 작가의 세계가 궁금해졌다.

제19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자 류성실 작가. 사진 에르메스 재단

제19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자 류성실 작가. 사진 에르메스 재단

93년생 아티스트의 독보적 존재감
이번 전시의 작가인 류성실은 제19회(2021년)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자다.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은 2000년부터 에르메스 코리아가 외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한국 문화예술계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시작한 프로그램으로, 국내외 미술계 인사 6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1명의 수상자를 선정하고 있다. 2016년부터 격년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번엔 역대 수상자 중 최연소인 1993년생 류 작가가 그 주인공이 됐다. 이번 전시는 수상 기념전이자 류 작가의 세 번째 개인전이다.

2018년 서울대 조소과 졸업 후 작가로 활동한 지 이제 5년 차. 짧은 작가 경력에도 불구하고 류 작가는 그간 송은미술대상전을 포함해 단체전, 개인전을 합쳐 20건에 달하는 전시 경력을 가질 만큼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미술계가 그에 주목하는 하는 이유는 그가 창조한 허구적 캐릭터들을 통해 보여주는, 전에 보지 못했던 독보적인 예술 세계 때문이다.

류 작가는 미디어아트 속 ‘1인 미디어 쇼’를 통해 예술과 비예술, 실재와 허구를 넘나드는 모호하고도 새로운 접근법을 보여준다. 실존하지 않는 인물을 만들어 유튜브에서 실제로 소통하고,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문제들을 현실 세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만화 같은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는 식이다.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빌자면 "자신의 가족사와 동시대 한국의 정치-사회적 이슈들, 그리고 전통적 형태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조합하고 재구성해, 지역성과 보편성을 모두 함축하는 작품세계를 구축"해 왔다는 것.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지금 한국 사회가 가진 소비주의적 문제점을 꼬집어 해학적 서사로 보여주는데, 그 통렬함에 작품을 보는 내내 소름이 돋을 정도다.

'불타는 사랑의 노래'에서 반려견의 장례를 치르고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모습. 사진 김상태ⓒ 류성실, 에르메스 재단

'불타는 사랑의 노래'에서 반려견의 장례를 치르고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모습. 사진 김상태ⓒ 류성실, 에르메스 재단

이번 전시는 애견상조회사가 벌이는 앞서 소개한 강아지 '공주'의 장례식에 대한 이야기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하는 자본가 '이대왕'이 코로나 19로 맞이한 수많은 죽음에서 장례 사업을 착안하고, 그 대상으로 사람보다 생애주기가 짧아 높은 회전율을 보장할 수 있는 반려견을 선택했다는 설정이다. 작가는 전시에서 지금 한국의 시대상과 이를 둘러싼 인간 군상을 포착하려 했다.

"불구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요즘 사람들이 '불멍'을 좋아하잖아요. 가만히 앉아서 타오르는 불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효과가 있는데요. 이를 다시 생각하면 뜨거운 열정을 쏟아내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불멍, 불구경으로 연결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거든요. 이번 전시에 담고 싶었던 것은 불 주변에 몰려드는 사람, 그 사람들을 보면서 계산기를 두들기는 또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여러 인간 군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관람객은 전시장 안에 세워진 거대한 담장 앞에 앉아 대형 스크린을 통해 진행되는 장례식의 조문객이 된다. 장례에 직접 참석하는 과정을 통해 관람객이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인데, 마지막엔 '진짜배기 사랑'이라는 이대왕이 만든 추도곡 합창까지 해야 한다. 담장 뒤편엔 대왕트래블(대왕에어)의 안내가 가득하다. 앞서 공주의 죽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 다른 생을 살 수 있는 하늘나라로 떠난다는 메시지를 준 탓일까. 이 안내는 다른 곳으로 떠나기 위한 교통수단을 사라는 제안처럼 느껴진다. 반려견의 죽음을 맞은 사람들에게 가능한 많은 돈을 '뽑아' 내려는 이대왕의 설계다.

화장장이 있는 장례식장을 표현한 설치 작품. 조각처럼 새겨진 인물은 이대왕이다. 사진 김상태ⓒ 류성실, 에르메스 재단

화장장이 있는 장례식장을 표현한 설치 작품. 조각처럼 새겨진 인물은 이대왕이다. 사진 김상태ⓒ 류성실, 에르메스 재단

설치작품 뒤편에선 대왕애견상조와 대왕트래블의 서사를 보여준다. 사진 김상태ⓒ 류성실, 에르메스 재단

설치작품 뒤편에선 대왕애견상조와 대왕트래블의 서사를 보여준다. 사진 김상태ⓒ 류성실, 에르메스 재단

캐릭터가 만들어가는 무한의 세계관
류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보려면 체리장·이대왕·나타샤라는 3명의 인물(캐릭터)을 미리 익혀야 쉽다. 작품의 세계관을 만들고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이자, 하나의 독립된 작품이다.
"작업의 메시지를 담는 방법은 매우 다양해요. 작가에 따라 조형에 메시지를 투영하기도 하고, 평면에 페인팅으로 담기도 하죠. 제 경우엔 그걸 캐릭터에 투영한 거예요. 인물군들이 상호작용하면서 벌어지는 서사가 흥미롭게 느껴졌거든요. 제게는 캐릭터 하나가 독립된 작업(작품)입니다."

우선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인 체리장은 가짜 뉴스를 설파하는 1인 미디어 채널을 운영하는 오피니언 리더다. 아프리카TV와 유튜브에서 활약하며 가짜 뉴스를 설파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 그 뉴스는 진실일 수도 있는, 현실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모든 걸 흐릿하게 만드는 캐릭터다. 아쉽게도 2019년 '굿바이 체리장' 작품을 통해 사망했다. 류 작가에 따르면 "하늘나라 그 어딘가에 계신다"고.

체리장의 등장에 앞서 류 작가의 작품에 가장 먼저 등장한 캐릭터는 이대왕과 나타샤다. '대왕트래블' 시리즈에서 창조된 캐릭터로, 누구보다 강력하게 노인 복지 서비스에 대해서 역설하지만 그 속내는 의문스러운 노인 전문 여행사의 사장과 직원으로 등장했다. 이대왕은 기회주의적 자본가이자 문어발식 경영인의 표본이다. '안 해본 거 없이 다 해본 끝에 성공한, 대기만성형 자수성가 인물'이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인물이다.
"자수성가·대기만성 같은 표현을 쓰는 건 자신에게 '신화'적 의미를 부여하는 거예요. 하지만 이대왕의 주장에 대해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순 없어요. 모든 캐릭터의 정체에 대해 모호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믿을 수 있는 건 그 사람의 말뿐인 거죠."

'불타는 사랑의 노래'는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연결돼 있다. 사전에 류 작가가 운영하는 홈페이지나 유튜브를 통해 2020년 작 '대왕트래블 2020'을 본다면, 이대왕이 운영하는 회사의 정체성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어 전시를 더 쉽게 즐길 수 있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택했지만, 미리 겁내거나 선입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작업할 때 항상 관람객이 어떤 마음으로 전시를 봐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요. '현대미술'이라는 말이 가지는 무게감이 너무 커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데요. 제가 작업하는 것은 작은 세계인데 현대미술이라는 아우라에 무임승차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스스로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고, 그래서 유튜브 같은 대중적인 플랫폼에 작업을 유통해왔어요. 제 작업이 너무 무겁게 읽히지 않았으면 하거든요."

작가 류성실의 세계관은 계속 확장 중이다. 전시는 10월 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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