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홈런 퍼레이드…42세 푸홀스의 '라스트 댄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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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홀스가 19일(한국시간) 콜로라도 로키스전에 대타로 나와 만루홈런을 친 뒤 더그아웃의 동료들을 향해 웃어 보이며 1루로 달려가고 있다. AP=연합뉴스

푸홀스가 19일(한국시간) 콜로라도 로키스전에 대타로 나와 만루홈런을 친 뒤 더그아웃의 동료들을 향해 웃어 보이며 1루로 달려가고 있다. AP=연합뉴스

앨버트 푸홀스(42·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앞에선 세월의 흐름도 잠시 멈췄다. 은퇴를 앞둔 메이저리그(MLB)의 '리빙 레전드'는 여전히 새로운 이정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푸홀스는 28일(한국시간)까지 올 시즌 홈런 14개를 기록하고 있다. 통산 홈런 수는 693개다. MLB 역사에서 푸홀스보다 많은 홈런을 친 선수는 은퇴한 배리 본즈(762개), 행크 에런(755개), 베이브 루스(714개), 알렉스 로드리게스(696개) 밖에 없다. 푸홀스가 남은 35경기에서 홈런 4개를 때려내면 로드리게스를 넘어 역대 4위로 올라선다. 꿈의 700홈런 고지까지는 7개가 남았다.

11년 만에 다시 뭉친 푸홀스(5번), 애덤 웨인라이트(50번), 야디에르 몰리나(4번) 트리오가 지난 4월 8일(한국시간) 홈 개막전에 앞서 나란히 팬들 앞으로 나서고 있다. AP=연합뉴스

11년 만에 다시 뭉친 푸홀스(5번), 애덤 웨인라이트(50번), 야디에르 몰리나(4번) 트리오가 지난 4월 8일(한국시간) 홈 개막전에 앞서 나란히 팬들 앞으로 나서고 있다. AP=연합뉴스

푸홀스는 2001년부터 22년간 MLB에서 뛰고 있는 베테랑 내야수다. 홈런뿐 아니라 통산 타점(3위)과 안타(10위)도 MLB 정상급이다. 이변이 없는 한 은퇴 후 명예의 전당 한 자리를 예약했다. 그는 현역 마지막 시즌을 뜻깊게 마무리하기 위해 지난 3월 세인트루이스와 연봉 250만 달러에 1년 계약했다. 은퇴를 앞두고 11년 만에 친정팀 품에 안겼다.

세인트루이스는 푸홀스를 세상에 내놓은 팀이다. 푸홀스는 데뷔 첫 해부터 2011년까지 11년간 세인트루이스에 몸 담으면서 홈런 445개를 치고 1329타점을 올렸다. 그 사이 내셔널리그(NL) 최우수선수(MVP)와 신인상을 수상했다. 2006년과 2011년엔 두 차례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세인트루이스 역사상 최고의 타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푸홀스는 2012년 LA 에인절스와 10년 2억5400만 달러에 계약해 처음으로 이적했다. 그럼에도 세인트루이스 팬들은 그를 잊지 않았다. 푸홀스가 이적 후 8년 만인 2019년 6월 세인트루이스에서 첫 원정경기를 치르자 홈 구장 부시스타디움 관중석을 꽉 채웠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로 푸홀스를 맞이했다. 그날의 감격을 잊지 못한 푸홀스는 결국 '끝'을 앞두고 세인트루이스로 돌아왔다.

복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컸다. 세인트루이스를 명문 구단 반열에 올려 놓았던 타자 푸홀스, 투수 애덤 웨인라이트(41), 포수 야디에르 몰리나(40) 트리오가 다시 같은 유니폼을 입고 모였기 때문이다. 올 시즌 세인트루이스의 개막전은 이들의 '합체'를 기념하는 이벤트로 채워졌다.

그러나 푸홀스는 '존재'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올 시즌 그는 77경기에 출장해 타율 0.274, OPS(출루율+장타율) 0.868을 기록하고 있다. 전성기 성적에는 못 미치지만, 은퇴 직전 시즌 성적으로는 충분히 훌륭하다. 이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시즌을 마친다면, 2012시즌 이후 10년 만에 OPS 0.800를 넘기게 된다.

푸홀스가 19일(한국시간) 콜로라도 로키스전에 대타로 나와 만루홈런을 친 뒤 홈 팬들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USA 투데이=연합뉴스

푸홀스가 19일(한국시간) 콜로라도 로키스전에 대타로 나와 만루홈런을 친 뒤 홈 팬들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USA 투데이=연합뉴스

특히 8월의 푸홀스는 전성기 시절 못지 않게 뜨거웠다. 월간 타율이 0.408이고, OPS는 1.361(출루율 0.463, 장타율 0.898)에 달한다. 최근 15경기에서 올 시즌 홈런 수의 절반인 7개를 몰아쳤다. 전반기 53경기에서 홈런 6개를 친 그가 후반기 24경기에서 8번의 아치를 그렸다. 지난 23일에는 팀 동료 폴 골드슈미트와 함께 10년 만에 내셔널리그 '이주의 선수'로 뽑히기도 했다. 개인 통산 13번째 수상이다. 이 상을 푸홀스보다 더 많이 받은 선수는 미겔 카브레라, 매니 라미레스(이상 16회), 본즈(15회), 프랭크 토머스(14회) 밖에 없다.

야구 인생에 남을 명장면도 추가했다. 푸홀스는 웨인라이트가 7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한 지난 19일 콜로라도 로키스전에 대타로 나와 만루홈런을 쳤다. 스포츠 기록 전문업체 엘리아스 스포츠는 "40대 타자가 만루홈런을 치고 40대 투수가 7이닝 이상 무실점을 기록해 승리를 이끈 경기는 MLB 역사상 처음"이라고 전했다. 푸홀스와 오랜 우정을 나눠 온 웨인라이트는 "난 그저 푸홀스의 대기록을 망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라고 했다.

이뿐만 아니다. 지난 20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에서 연타석 홈런을 때려내 올 시즌 세 번째 멀티 홈런(한 경기 2홈런 이상) 경기를 펼쳤다. 42세 선수가 한 시즌에 3경기 이상 멀티 홈런을 기록한 것 역시 MLB 역대 최초다. 멀어진 듯했던 '통산 700홈런' 고지가 다시 시야에 들어왔다.

푸홀스가 26일(한국시간) 시카고 컵스전이 열린 리글리필드 더그아웃에서 동료들과 함께 대화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푸홀스가 26일(한국시간) 시카고 컵스전이 열린 리글리필드 더그아웃에서 동료들과 함께 대화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세인트루이스 팬들은 서서히 푸홀스를 향해 "은퇴를 1년만 미뤄달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올 시즌 안에 700홈런을 달성하지 못하면, 내년에도 그라운드에 남아 700개를 채워달라는 의미다. 올 시즌 KBO리그에서 '은퇴 투어'에 한창인 이대호(롯데 자이언츠)의 상황과 비슷하다.

푸홀스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계획대로 하겠다"고 했다. "홈런 693개든, 696개든, 700개든 상관 없이 은퇴할 생각이다. 22년 전의 내가 나 자신에게 '이 정도로 많은 홈런을 칠 수 있겠냐'고 물었다면 '미쳤다'고 대답했을 거다. 나는 할 만큼 했다"며 웃었다.

그는 스스로를 '축복 받은 선수'라고 표현했다. "내가 MLB 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큰 행운을 누렸는지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 내 커리어는 '700홈런' 기록 없이도 충분히 놀랍고, 대단했다고 자부한다"며 "승리를 간절히 원하는 동료들과 함께 이렇게 좋은 팀에서 함께 뛰고 있는 것 자체가 좋다. 난 그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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