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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수㎞ 줄섰다…평창 산골마을에 5000명 몰린 사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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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계촌마을에서 열린 제8회 계촌 클래식 축제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윌슨 응 지휘 국립심포니와 멘델스존 협주곡 1번을 연주하고 있다. 사진 나승열

27일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계촌마을에서 열린 제8회 계촌 클래식 축제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윌슨 응 지휘 국립심포니와 멘델스존 협주곡 1번을 연주하고 있다. 사진 나승열

보기 드물게 날씨가 좋았던 27일 오후, 평창의 해발 700m 계촌마을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현대차정몽구재단이 주최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주관, 강원도가 함께하는 예술마을 프로젝트인 제8회 계촌 클래식 축제 첫날 협연자로 임윤찬이 참가하자 몰린 인파다. ‘임윤찬 신드롬’은 공연 시작 전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새벽에 출발한 사람들도 상당수였고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수㎞는 족히 돼 보였다. 언덕 너머까지 길가에 주차한 차량 줄은 더 길었다. 피크닉 가듯 돗자리를 지참한 인파에는 남녀노소 구분이 없었고, 가끔 애완견까지 보였다.
 주최 측은 임윤찬 출연 소식이 알려지면 외지인들이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무료입장권을 발매하기로 했다. 지난달 신청 사연을 받아 이달 초 개별 통보한 티켓 수보다 많은 3500개의 좌석을 준비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몰렸다. 이날 5000명이 몰린 것으로 추산된다. 입장권이 필요 없는 주민들과 입장권이 없는데도 무작정 계촌마을을 찾은 사람들을 합친 숫자다.

5000여 청중은 임윤찬과 국립 심포니가 연주를 조용히 경청하고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임윤찬 무대 뒤 시벨리우스 교향곡 3번도 집중해 감상했다. 사진 나승열

5000여 청중은 임윤찬과 국립 심포니가 연주를 조용히 경청하고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임윤찬 무대 뒤 시벨리우스 교향곡 3번도 집중해 감상했다. 사진 나승열

주최 측 추산 5000여 명의 청중이 제8회 계촌 클래식 축제를 관람했다. 새벽부터 출발한 관람객들이 입장전 긴 줄을 이뤘다. 사진 나승열

주최 측 추산 5000여 명의 청중이 제8회 계촌 클래식 축제를 관람했다. 새벽부터 출발한 관람객들이 입장전 긴 줄을 이뤘다. 사진 나승열

계촌클래식공원 별빛 무대는 짙은 녹색 숲이 배경이었다. 청중 뒤쪽의 큰 개울에서 맑은 물이 흘렀다. 2부에 등장한 임윤찬은 윌슨 응이 지휘하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멘델스존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했다. 5000 청중은 공연이 시작되자 일제히 침묵하며 경청했다.

지난 20일 김선욱 지휘 KBS교향악단과 함께한 롯데콘서트홀 연주와 비교하면 마이크로 음을 증폭시키는 야외 공연 특성상 중저음보다는 고음이 우세했다. 자연스러운 울림은 아니었지만 피아노의 세부가 더욱 도드라지게 들려서 임윤찬의 타건 하나하나가 살아 있었다. 좌우 두 개의 대형 스크린에는 피아니스트의 표정이 비쳤다. 쪼갠 리듬의 경계선을 뚜렷이 하는 절도와 힘, 격정적인 부분에서 나풀대는 머리칼도 잘 보였다.

제8회 계촌 클래식 축제 무대에 선 임윤찬. 쇼팽 ‘녹턴’ Op.9-2, 라흐마니노프 ‘라일락’, 베토벤 ‘엘리제를 위하여’ 등 세 곡의 앙코르를 선사했다. 사진 나승열

제8회 계촌 클래식 축제 무대에 선 임윤찬. 쇼팽 ‘녹턴’ Op.9-2, 라흐마니노프 ‘라일락’, 베토벤 ‘엘리제를 위하여’ 등 세 곡의 앙코르를 선사했다. 사진 나승열

낭만적인 2악장에서는 피아노 소리에 귀뚜라미와 풀벌레 소리가 함께 들렸다. 늦여름 계촌은 해가 지니 쌀쌀한 초가을이었다. 맑은 공기와 음악에 오감이 또렷해졌다.

현란한 3악장에서 관객들은 임윤찬의 기교에 감탄하는 모습이었다. 멋진 피날레에 갈채가 쏟아졌다. 임윤찬은 앙코르를 세 곡 연주했다. 첫 곡은 쇼팽 녹턴 Op.9-2. 주위의 풍경을 사진 찍듯 응결시키는 건반의 힘이 느껴졌다. 두 번째는 라흐마니노프의 ‘라일락’. 셋잇단음표로 라일락의 향기를 표현한 이 곡으로 작곡가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드러냈다. 마지막은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였다. 밤하늘에 울려 퍼지는 간명한 멜로디에 외강내유 베토벤의 고독이 반짝이고 있었다.

제9회 계촌 클래식 축제에서 윌슨 응 지휘 국립심포니와 멘델스존 협주곡 1번 협연을 마치고 5천 관중에게 인사하는 피아니스트 임윤찬. 사진 나승열

제9회 계촌 클래식 축제에서 윌슨 응 지휘 국립심포니와 멘델스존 협주곡 1번 협연을 마치고 5천 관중에게 인사하는 피아니스트 임윤찬. 사진 나승열

앞서 1부에서는 클라리네티스트 채재일과 피아니스트 아비람 라이케르트가 거슈윈 ‘랩소디 인 블루’ 등을 섬세한 기교로 연주해 뜨거운 앙코르 요청을 받았다. 이들의 앙코르곡 ‘고향의 봄’을 들으며 청중들은 저마다 추억을 되새기는 모습이었다

2부 임윤찬의 협연 뒤에는 윌슨 응과 국립심포니는 시벨리우스 교향곡 3번을 연주했다. 우아하고 애수에 찬 2악장이 울려 퍼지는 순간 주변을 둘러보니 강원도 산골 마을에 클래식 음악을 들으러 온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점이 새삼스러웠다. 임윤찬 팬들은 그의 연주가 끝난 뒤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교향곡에 귀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임윤찬의 인기가 일시적인 신드롬이 아니라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으로  이어질 것 같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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