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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만 의미있다는 팬덤, 지쳐가는 아티스트…K팝은 한국 사회와 닮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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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평론가 인터뷰 시리즈 (7)

음악평론가 인터뷰 시리즈 일곱 번째로 서정민갑(49) 평론가를 만났다. 서정민갑은 2000년대 초 한국민족음악인협회 등 문화운동 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영세한 아티스트들을 돕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글을 썼다.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성공회대 문화대학원에서 문화연구 과정을 수료했다. 2004년부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 은평구 자택에서 만난 서정민갑 평론가가 음악 앨범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박상문 기자

서울 은평구 자택에서 만난 서정민갑 평론가가 음악 앨범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박상문 기자

불안 증세를 호소하는 K팝 아티스트들이 늘어나고 있다. 2017년 샤이니 종현, 2019년 카라 구하라가 세상을 떠났으며, 그 이후에도 많은 젊은 아티스트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호소한다. 상황은 더욱 악화하고 있으며, 이들을 비극으로 몰아넣고 있다. 최근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은 이 상황을 두고 “지쳤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죄짓는 것 같다”고 했다. 서정민갑 평론가는 “K팝 아티스트에 대한 기준이 계속 높아지면서 이제 아티스트들은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추고, 음악도 작곡하고, 자신만의 의견도 있어야 하고, 인성도 좋아야 하고, 과거도 깨끗해야 한다”며 “대중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은 그 수요에 부합하고자 하는데, 그 모든 게 아티스트를 누르는 짐이 된다”고 말했다. 

왜 우리는 이렇게 높은 도덕적 잣대를 아티스트들에게 들이대고 있나.  
이는 K팝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 문화 전반적으로 그렇다. 한 가지 행위를 그 사람 전체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하나의 행동만으로 그 사람 전체를 정의할 수는 없다. 누군가를 단죄하면서 그만큼 반성의 기회를 주고 있는지, 공정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맞는 이야기를 해도 다수의 대중이 공감하지 못하면 부당한 비난을 받는다. 흑인 차별에 대한 문화적 감수성을 언급했던 샘 오취리가 엄청난 비난을 받았던 것이 한 예다. 소수의 목소리나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의정부 고등학교 졸업 코스프레 행사에서 흑인으로 분장한 학생들을 비판했던 샘 오취리는 이후 쏟아지는 비난으로 방송 활동을 중단했다. 2020년 8월 논란이 불거진 당시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과문. 샘 오취리 인스타그램 캡처

의정부 고등학교 졸업 코스프레 행사에서 흑인으로 분장한 학생들을 비판했던 샘 오취리는 이후 쏟아지는 비난으로 방송 활동을 중단했다. 2020년 8월 논란이 불거진 당시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과문. 샘 오취리 인스타그램 캡처

왜 한국의 아티스트들은 지쳐가는 걸까.    
한국은 숨 막히는 사회다. 연예계든 교육이든 전반적으로 과열돼 있다. 1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있다. 한국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대하는 방식은 부모가 자녀를 부모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최고가 되기를 바라는 것과 닮았다. 팬들은 돈을 지불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의 앨범을 사고 시간을 들여 음원 스트리밍을 해서 그 스타의 음원을 음악 차트 상위에 올린다. 스타에 자신을 투영하기 때문에 바라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일종의 패배감까지 느낀다. 어찌 보면 팬들은 음악을 음악으로 즐기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1등을 해야만 의미 있다고 느끼는 거다.  
공인이라면 더 도덕적이어야 하는 게 아닐까.  
우리는 얼굴이 알려졌다는 이유만으로 스타를 항상 관찰하면서 도덕적으로도 올바른 행동을 해야 한다는 기준을 적용한다. 그러면서 어떤 잘못을 하면 다시 기회를 주는 데는 굉장히 인색하다. 스타에게 자신을 대입하면서 도덕적으로 이상적인 행동을 하길 바란다. 그러지 않았을 땐 그만큼 쉽게 실망하곤 한다. 하지만 연예인도 사람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실패할 수 있고 비난을 받으면 힘들어한다. 자신이 그런 입장이라면 그런 반응을 견딜 수 있겠느냐는 생각을 하면서 말해야 한다.  
BTS의 솔로 활동 발표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나.  
지쳤다는 이유만으로 그룹 활동을 중단하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이번 일이 K팝 시장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 멤버들의 감정적인 상태와 더불어 스타가 원할 때 활동을 중단할 수 있다는 것, 그에 대해 소속사가 동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짜 이유가 뭔지 우리는 알 수 없겠지만, 스타가 필요할 때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준 것은 틀림없다. 이것이 다른 K팝 아티스트들에게도 자신의 상태에 관해 얘기하고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에 대해 말할 기회가 되면 좋겠다. BTS의 발언이 K팝 산업 전체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아직 알 수는 없지만, 스타들이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고 팬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방탄소년단(BTS)가 6월 14일 공개한 '찐 방탄회식' 유튜브 영상. BTS 유튜브 캡처

방탄소년단(BTS)가 6월 14일 공개한 '찐 방탄회식' 유튜브 영상. BTS 유튜브 캡처

해외에서는 한국 대중음악과 K팝을 동일시하기도 하는 것 같다.  
최근 한국의 많은 회사가 K팝에 뛰어든 건 사실이다. 수익성이 좋은 분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고 언제나 그랬듯이 다양한 장르의 수많은 가수가 존재한다. K팝이 더 화려하고 트렌디 하니까 가려져 있을 뿐이다. K팝의 폭발적 성장은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지만, 그 폭발적인 성장 속도 때문에 다른 장르가 가려지고 있기도 하다.
서정민갑 평론가는 "K팝의 폭발적 성장은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지만 이 때문에 다른 장르가 가려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 19~2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CJ ENM의 '케이콘(KCON) 2022 LA' 행사에서 팬들이 열광하고 있다. 사진 CJ ENM

서정민갑 평론가는 "K팝의 폭발적 성장은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지만 이 때문에 다른 장르가 가려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 19~2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CJ ENM의 '케이콘(KCON) 2022 LA' 행사에서 팬들이 열광하고 있다. 사진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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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외에 다양한 음악도 같이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디어를 통해서든, 길거리에서든 다양한 음악을 더 많이 접할 수 있어야 한다. 미디어는 다양한 음악을 소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다.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져야 한다. 크지 않아도 된다. 작은 공간이나 시설이어도 괜찮다. 그냥 사람들이 쉽게 방문해서 다양한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한다. 개인들 역시 능동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 누구도 유행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남들을 따라 하는 건 쉽다. 간혹 ‘요즘에는 좋은 노래가 없다’라거나 ‘이 노래 왜 이제야 나왔나’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미 좋은 노래들은 많이 나와 있는데, 그 노래들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또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이 유명하지 않으면 내 취향을 남들과 공유하지 못한다. 그러면 그 마음은 곧 식어버리고 만다. 취향은 남들과 공유하면서 시너지가 생기고 그 피드백으로부터 더 나아가기 마련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알아내는 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톱 100 차트에 있는 모든 노래를 다 들어보고 어떤 게 좋은지 찾아내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 이 기사는 코리아중앙데일리 7월 21일자 5면에 보도된 영문 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코리아중앙데일리 윤소연 기자 yoon.s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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