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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희 제보'에 "밀정" 쏴붙인 野…정권마다 '내부고발자' 논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2일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했다. 이날 야당 의원들은 전 위원장의 감사원 제보자 색출 작업을 벌였다. 김성룡 기자

지난 22일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했다. 이날 야당 의원들은 전 위원장의 감사원 제보자 색출 작업을 벌였다. 김성룡 기자

“영화 ‘밀정’을 봤느냐. 이번에 꼭 보라. 일제시대에 내부 분열책을 만든 것 아니냐.”(더불어민주당 박성준 의원)
“그걸 왜 제게 묻느냐.”(국민권익위원회 임모 기조실장)

지난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선 ‘밀정’이란 단어가 툭 튀어나왔다. 밀정은 ‘비밀을 정탐하거나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의 비위 의혹을 감사원에 제보한 내부자 색출작업을 벌였다. 제보 당사자로 임 기조실장이 지목됐다. 야당 의원들은 ‘밀정’‘프락치’‘승진청탁’ 등의 단어를 쓰며 임 실장을 몰아붙였다. 임 실장은 제보를 부인하면서도 “부패방직권익위법에 의하면 공익신고자 비밀규정이 있다. (제가 제보자란) 말을 퍼트린 사람은 공익신고자법 위반 소지가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맞받았다. 전 위원장은 이를 가만히 지켜보다 “위원장으로서 송구스럽다, 저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고개를 숙였다. 정무위원회의 여당 의원은 “제보의 사실 여부를 떠나 공익신고자 보호 주무부처인 권익위의 국회 보고에서 제보자 색출 작업이 벌어졌다는 것 자체가 유감”이라고 했다.

권익위가 공익신고자 문제로 정국의 중심에 섰던 건 이번뿐이 아니다. 역대 정부에서도 ‘내부 제보자’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국정농단 사태와 같이 정권이 기울었던 시기나, 정권이 교체된 직후 전임 정부를 겨냥한 제보가 많았다. 여야는 그때마다 이해관계에 따라 “공익 신고”와 “정권 줄대기 폭로”라 맞섰다. 정권의 시기와 상관없이 예상치 못한 고발도 터져 나왔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문재인 정부때다.

文정부 집권 2년 차에 대형 폭로터져 

문재인 정부는 권력이 서슬 퍼렜던 집권 2년 차부터 두 건의 대형 폭로와 마주했다. 청와대 특별감찰반 출신인 김태우 전 수사관(현 국민의힘 강서구청장)과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퇴직)의 내부 고발이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민정수석 시절 그의 밑에 있었던 김 전 수사관의 폭로로 조 전 장관과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은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과 ‘환경부 블랙리스트’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 전 장관은 1심 재판 중이고, 김 전 장관은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뒤 지난 광복절에 가석방됐다.

지난 2020년 7월 3일 '유재수 감찰무마 혐의'를 받고 있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왼쪽)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수수 등 혐의에 관한 4회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날 ‘감찰무마 의혹'을 폭로한 김태우 전 검찰수사관이 증인 신분으로 재판에 출석했다. 뉴스1

지난 2020년 7월 3일 '유재수 감찰무마 혐의'를 받고 있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왼쪽)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수수 등 혐의에 관한 4회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날 ‘감찰무마 의혹'을 폭로한 김태우 전 검찰수사관이 증인 신분으로 재판에 출석했다. 뉴스1

김 전 수사관의 폭로 당시에도 이번 ‘권익위 제보’ 때와 마찬가지로 제보자에 대한 ‘프레임 전쟁’이 벌어졌다. 당시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온통 흐리고 있다”고 반발했다. 민주당에선 김 전 수사관의 비위 의혹을 물고 늘어졌다. 김 전 수사관의 ‘공익신고자 인정 여부’를 놓고 박은정 당시 국민권익위원장과 조 전 장관의 의견도 엇갈렸다. 박 전 위원장은 당시 중앙일보에 “김 전 수사관이 공익신고를 했고 공익신고 내용이 거짓임을 알고 신고했다고 볼 수 없는 이상 법적으로 공익신고자가 맞다”는 입장을 밝히며 청와대에 정면 반발했다.

박근혜 정부에선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이 내부 고발자 역할을, 이명박 정부에선 민간인 사찰과 관련해 장진수 전 주무관의 폭로로 관련자들이 징역형에 처해졌다. 폭로로 정국이 소용돌이치며 이들 역시 대가를 치렀다. 김 전 수사관은 공무상 비밀누설혐의로 고발당해 지난 8월 항소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장 전 주무관도 유죄를 피하지 못해 공직과 연금을 박탈당했다. 신 전 사무관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뒤 병원에 한 달 간 입원했다.

지난 2019년 1월 당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및 소속 의원들 국회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기재부 의혹을 폭로했던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의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뉴스1

지난 2019년 1월 당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및 소속 의원들 국회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기재부 의혹을 폭로했던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의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뉴스1

“메신저보단 메시지에 집중해야”

공익신고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메시지(공익 신고 내용)’가 아닌 ‘메신저(공익 신고자)에 대한 공격에 대해선 우려를 표명했다. 다만 공익신고를 한 뒤 반대 정당으로 정치에 입문하는 경우 공익신고의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전 수사관은 문재인 정부의 비위를 폭로한 뒤 21대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에 입당했다. 총선에 출마했지만 낙선했고, 올해 지방선거에서 강서구청장에 당선됐다. 당선 직후 집행유예를 받아 직을 잃을 위기에 처해 논란이 일었다.

공익제보자 지원 단체인 호루라기재단의 이영기 이사장은 “우리나라에선 공익의 정의를 둘러싸고 정파마다 이해관계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해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며 “공익신고와 공익신고자에 대한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양홍석 변호사는 “고위직에 대한 내부 제보는 자정 작용의 필요성을 위해 그 자체로 보호돼야 한다”며 “여전히 한국사회의 공익신고는 부족하다. 활성화를 위해 제보자의 신원보단 제보 내용에 초점을 맞춰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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