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환자 절망 빠졌다…'황우석 사건 판박이' 충격적 논문조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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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병보다 절망적 질병은 많지 않습니다. 우선 치료제가 없고요. 흔한 질병이지만 본인과 가족의 고통이 극심하죠. 증상이 드러나기 20년 전부터 진행이 시작된다는 점도 무섭습니다. 2017년 제2차 보건의료기술육성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설문조사에서 우리 국민은 극복해야 할 질환으로 치매를 최우선순위에 꼽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치매 환자 4명 중 3명이 알츠하이머성 치매입니다.

[정글]

가운데 이미지는 임상적으로는 정상으로 보여도, 알츠하이머병이 이미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진은 2019년 5월 19일 조지타운대병원 신경과 스콧 터너 교수가 뇌 PET 스캔 이미지를 비교 설명하고 있는 모습. 사진 AP=연합뉴스

가운데 이미지는 임상적으로는 정상으로 보여도, 알츠하이머병이 이미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진은 2019년 5월 19일 조지타운대병원 신경과 스콧 터너 교수가 뇌 PET 스캔 이미지를 비교 설명하고 있는 모습. 사진 AP=연합뉴스

자료: 제2차 보건의료기술육성 기본계획, 2017

자료: 제2차 보건의료기술육성 기본계획, 2017

의학자들은 오래전부터 특정 단백질인 ‘아밀로이드 베타’를 알츠하이머 발병 원인으로 의심해 왔습니다. 치료제 개발도 일찌감치 시작됐죠. 글로벌 제약회사들은 매년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미국 국립보건원은 알츠하이머 연구 지원에만 한해 4000억원 이상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치료제 개발은 제자리걸음입니다.

세계적 제약사 바이오젠이 지난해 6월 출시한 아두헬름(Aduhelm, 성분명 아두카누맙)은 최초의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큰 관심을 받았다. FDA가 조건부 허가했으나 유럽의약품청이 승인을 반대하면서 사실상 상용화가 힘들어졌다. 알츠하이머병 최초 치료제라는 영예로운 자리는 여전히 공석으로 남아 있다. 아두헬름은 아밀로이드 베타를 타깃으로 하는 약제다.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세계적 제약사 바이오젠이 지난해 6월 출시한 아두헬름(Aduhelm, 성분명 아두카누맙)은 최초의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큰 관심을 받았다. FDA가 조건부 허가했으나 유럽의약품청이 승인을 반대하면서 사실상 상용화가 힘들어졌다. 알츠하이머병 최초 치료제라는 영예로운 자리는 여전히 공석으로 남아 있다. 아두헬름은 아밀로이드 베타를 타깃으로 하는 약제다.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알츠하이머병 관련 획기적 연구로 평가받았던 논문이 조작됐다는 폭로가 터져 나왔습니다. 2006년 출판된 이 논문은 당시 학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죠. 2200건이 넘는 연구가 이 논문을 인용했습니다. 그래서 학계에선 이 조작된 논문이 알츠하이머병 연구를 수렁 속으로 몰아넣었다고 비판합니다. 알츠하이머병 논문 조작이 치료제 개발을 원점으로 돌려놓은 것일까요.

알츠하이머병은 단백질 찌꺼기 때문?

알츠하이머병은 1906년 독일 병리학자 알로이스 알츠하이머가 발견했습니다. 알츠하이머는 퇴행적 치매 환자 아우구스트 데터가 사망한 후 부검을 시행해 어떤 단백질 찌꺼기가 뇌에 껴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1984년 과학자들은 이 단백질 찌꺼기의 주요 구성요소가 ‘아밀로이드 베타’라는 걸 확인합니다. 문제는 아밀로이드 베타가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키는 원인인지, 아니면 알츠하이머병이 낳은 결과인지 알기 힘들었다는 점입니다. 아밀로이드 베타 탓에 뇌세포가 망가져 치매 증상이 나타난다는 가설을 ‘아밀로이드 베타 가설’이라고 합니다.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연구가 진행됐지만 직접적 증거를 찾기는 쉽지 않았죠. 아밀로이드 베타는 ‘허상’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과학자들도 있었죠.

아밀로이드 베타라는 단백질이 덩어리를 이루면서 신경에 독소를 뿜어내 뇌세포가 망가진다는 가설이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으로 알려져 왔다. 아밀로이드 베타를 통제하기 위한 수많은 연구들이 이뤄져 왔지만, 100년 넘는 알츠하이머병의 역사에서 아직 치료제 개발은 성공하지 못했다. 미국 국립보건원

아밀로이드 베타라는 단백질이 덩어리를 이루면서 신경에 독소를 뿜어내 뇌세포가 망가진다는 가설이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으로 알려져 왔다. 아밀로이드 베타를 통제하기 위한 수많은 연구들이 이뤄져 왔지만, 100년 넘는 알츠하이머병의 역사에서 아직 치료제 개발은 성공하지 못했다. 미국 국립보건원

학계를 놀라게 한 획기적 연구

그러던 중, 알츠하이머병 연구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 논문이 2006년 네이처에 실립니다. 아밀로이드 베타의 특정한 타입이 기억 손상을 일으킨다는 직접적 증거를 보여준 사상 최초의 논문이었죠.

네이처에 실린 캐런 애쉬 교수의 아밀로이드 베타 연구 논문 제목. 수많은 연구자들이 이 논문에 자극을 받아 후속 연구를 진행했지만, 이와 비슷한 결과를 성취해내지 못했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최근 이 논문의 핵심 데이터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네이처에 실린 캐런 애쉬 교수의 아밀로이드 베타 연구 논문 제목. 수많은 연구자들이 이 논문에 자극을 받아 후속 연구를 진행했지만, 이와 비슷한 결과를 성취해내지 못했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최근 이 논문의 핵심 데이터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 연구에선 아밀로이드 베타 *56이라는 특정한 타입의 단백질을 어린 쥐에게 주입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린 쥐가 간단한 미로도 찾지 못하고 헤맸습니다. 뇌세포를 들여다보니 기초적 인지 능력에 손상이 생겼다는 게 확인됐습니다.

논문 저자인 캐런 애쉬 미네소타대 신경과 교수는 이 연구로 치매 연구의 노벨상이라는 포탐킨상을 수상했습니다. 논문 발표 뒤 2주도 안 돼 받은 상이었죠. 논문은 지금까지 2273회 인용됐습니다.

당시 거의 0에 가깝던 미국 국립보건원의 아밀로이드 관련 연구 지원금은 지난해 2억8700만 달러까지 늘었습니다. 이 연구는 알츠하이머병 연구의 신기원을 열었다고 평가받았습니다. 알츠하이머병 학계의 주도권도 아밀로이드 베타 가설 쪽으로 크게 기울었습니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 속 세포에 아밀로이드 베타 덩어리가 엉겨붙은 모습을 묘사한 그래픽. 미국 국립보건원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 속 세포에 아밀로이드 베타 덩어리가 엉겨붙은 모습을 묘사한 그래픽. 미국 국립보건원

노벨상 수상자이자 알츠하이머병 전문가인 스탠퍼드대학교 토마스 쥐트호프 교수는 “이 연구는 아밀로이드 베타 가설 지지자들이 목이 타게 기다려온 원인 물질을 발견했다고 선언한 것”이라며 “실로 중대한 발견으로 학계를 완전히 뒤집어놨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연구자들이 이후 이를 본뜬 연구를 거듭 수행했는데도 비슷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 겁니다. 원인 물질을 찾았다지만 치료제 개발도 성공하지 못했죠.

미국판 황우석 사건 발발

지난해 이 천재적 연구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나옵니다. 논문 부정을 전문적으로 잡아내는 ‘조작 사냥꾼’ 매슈 쉬랙 미국 반더빌트대 신경과 조교수가 제기한 의혹이었습니다. 그는 애쉬 교수의 논문들을 집중적으로 점검한 결과 다수의 이미지 조작 사례를 발견했다고 했습니다. 특히 2006년 나온 핵심적 연구에도 조작 사례가 있었다고 했죠.

미국 학술지 사이언스가 전문가 감수를 받아 조사한 결과 논문이 조작됐다는 게 확실하다는 분석을 최근 내놨습니다. 논문에 나오는 핵심 이미지가 복제됐다는 겁니다.

이 논문의 노란색 하이라이트 부분 이미지가 복제됐다는 게 전문가 감정을 통해 확실시되고 있다. 그래픽 이가진

이 논문의 노란색 하이라이트 부분 이미지가 복제됐다는 게 전문가 감정을 통해 확실시되고 있다. 그래픽 이가진

사이언스는 쉬랙 교수 분석을 토대로 논문의 핵심 이미지를 살폈습니다. 여기 등장한 한 이미지가 비정상적으로 유사해 보였죠. 두 이미지에 각각 빨간색과 초록색을 입혀서 비교해봤습니다. 그리고 크기와 방향을 정교하게 맞춰서 합체해 봤죠.

만약 두 이미지가 같다면 합체한 이미지는 빨간색과 초록색을 섞은 노란색으로 나타납니다. 이미지가 같지 않다면 빨간색과 초록색으로 얼룩덜룩하게 나타나죠. 합체한 결과 이미지는 거의 온전한 노란색으로 도배됐습니다.

논문 조작의 증거로 제시된 이미지. 그래픽 이가진

논문 조작의 증거로 제시된 이미지. 그래픽 이가진

두 이미지 간 상관계수는 0.98로 나타났습니다. 상관계수가 1이면 완전히 동일하다는 의미이고 0이면 완전히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0.98은 사실상 같은 이미지라는 걸 가리키죠. 이미지를 복사해서 붙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의미입니다. 이 논문뿐 아니라 애쉬 교수의 다른 논문에서도 이미지 조작의 흔적이 나타났습니다. 핵심 데이터의 조작이라는 점에서 줄기세포 논문 조작으로 대한민국을 뒤집어 놓은 황우석 사건과 판박이입니다.

애쉬 교수는 미국 논문 검증 사이트에 “이미지는 데이터 처리 과정에서 나타난 디지털적 오류”라고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여러 조작 흔적이 다른 논문에도 나타난 상태라 책임을 피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현재 애쉬 교수가 속한 미국 미네소타대학교와 미국 국립보건원이 자체 조사를 진행 중입니다.

알츠하이머병 연구는 원점으로 돌아간 것일까

이번 일을 놓고 학계의 의견은 갈립니다. 한쪽에선 논문 조작으로 아밀로이드 베타 가설에 기반을 둔 수많은 연구가 물거품이 됐다고 주장합니다. 쥐트호프 교수는 “국립보건원의 지원과 학계의 노력에 즉각적이고 명백한 손해를 끼쳤다”며 “많은 연구자가 그 논문을 토대로 연구와 실험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논문 조작이 아밀로이드 베타 가설과 알츠하이머병 연구에 큰 타격을 주지 못할 거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박기형 가천대 길병원 가천뇌건강센터 교수는 “논문이 조작됐다고 해서 아밀로이드 베타 가설이 완전히 부정됐다고 보기는 힘들다”며 “이 연구 전에도 이미 가설을 지지하는 연구 결과들이 쌓여 있었고, 지금도 이 가설을 토대로 진행된 임상 시험이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결과가 발표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조작된 논문이 알츠하이머병 연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 책임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쉬랙 교수는 “알츠하이머병 연구 중에서도 핵심적인 논문이 조작됐다”며 “그 사실은 현재 우리가 알츠하이머병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신랄하게 비판했죠.

만약 아밀로이드 베타 연구에 퍼부어진 돈이 다른 원인의 규명에 쓰였다면, 어쩌면 지금 더 희망적인 결과들이 나왔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시점에서는 아밀로이드 베타뿐 아니라 다른 많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정설에 가깝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니까요.

뇌를 망가뜨리는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은 대체 뭘까. 최근 연구에 따르면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발생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즉 원인 하나만 통제해서는 병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중앙포토

뇌를 망가뜨리는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은 대체 뭘까. 최근 연구에 따르면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발생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즉 원인 하나만 통제해서는 병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중앙포토

박기형 교수는 “알츠하이머병 치료가 어려운 건 병리 기전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이기 때문이다. 그 기전에 따라 아밀로이드 베타가 쌓이고, 타우 단백질의 엉킴도 일어나고 염증도 생기고 신경세포 퇴행도 발생하고 세포 사멸 기전도 활성화되고 면역 시스템도 비정상적으로 과활성화된다”고 설명합니다. 박 교수는 “이 때문에 어느 하나의 치료제가 나온다고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학계에서 기대하지 않고 있다. 여러 가지 약제가 같이 개발돼 함께 사용해서 조절하려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이해의 폭은 조금씩 넓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논문 조작의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는다면 다시 의학계는 먼 길을 돌아갈 수밖에 없겠죠. 그만큼 막대한 연구비는 낭비될 것이고, 치매 환자와 가족의 고통은 더 커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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