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판 오스카상’ 창설 도와 아·태 영화 발전 이끌어

중앙선데이

입력 2022.08.27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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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3호 22면

[김동호 남기고 싶은 이야기] 타이거 사람들 (15) 아시아·태평양영화상

2007년 11월 호주의 휴양지 골드코스트에서 개최된 제1회 아시아태평양영화상(APSA) 심사위원들. 왼쪽부터 데스 파워 회장, 이란 자파르 파나히 감독, 인도 사바나 아즈미 배우(위원장), 필자, 미국 닉 포웰 감독. [사진 김동호]

2007년 11월 호주의 휴양지 골드코스트에서 개최된 제1회 아시아태평양영화상(APSA) 심사위원들. 왼쪽부터 데스 파워 회장, 이란 자파르 파나히 감독, 인도 사바나 아즈미 배우(위원장), 필자, 미국 닉 포웰 감독. [사진 김동호]

1994년 공연윤리위원회 위원장(지금의 영상물등급위원회)으로 재직할 당시 한호재단의 초청으로 8월 21~29일 아흐레 동안 호주를 방문했다. 주한 호주대사관과 한호재단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이효진씨가 주선했다. 이씨는 현재 미국의 워싱턴포스트(WP)에서 일하고 있다.

호주의 브리즈번·캔버라·시드니·멜버른 등 4개 도시에서 방송·영화 관련 기관과 문화시설을 방문해 책임자들과 오찬·만찬 또는 면담한 건 큰 수확이었다. 수도 캔버라에서 권병현 대사와 조영호 공보관을 만났고, 영화음향자료원을 찾아 복원작업을 살펴봤다. 시드니의 호주 영화·텔레비전·라디오학교(AFTRS)와 골드코스트의 워너브라더스 무비월드를 돌아보고 멜버른의 빅토리아 아트센터에서 멜버른 교향악단의 연주를 들었으며,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아서 설리반의 오페레타 ‘곤돌리에’ 공연을 관람했다. 브리즈번의 그리피스대 음악원에서 한국 학생 세 명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학장이 참석한 가운데 오찬을 함께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밀양’ ‘기생충’ 작품상 등 잇단 수상

지난 7월 19일 호주 브리즈번에서 필자가 추천한 ‘서편제’(임권택), ‘살인의 추억’(봉준호), ‘공동경비구역 JSA’(박찬욱),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홍상수) 등 네 편의 한국영화를 상영한 후 학생들과 일반관객들을 대상으로 강의와 질문을 받는 ‘마스터 클래스’가 열렸다. 왼쪽부터 한 사람 건너 정재훈 퀸즈랜드대 교수, 배한진 출장소장, 필자, 허만 학장, 김지희 시드니 한국문화원장과 직원. [사진 김동호]

지난 7월 19일 호주 브리즈번에서 필자가 추천한 ‘서편제’(임권택), ‘살인의 추억’(봉준호), ‘공동경비구역 JSA’(박찬욱),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홍상수) 등 네 편의 한국영화를 상영한 후 학생들과 일반관객들을 대상으로 강의와 질문을 받는 ‘마스터 클래스’가 열렸다. 왼쪽부터 한 사람 건너 정재훈 퀸즈랜드대 교수, 배한진 출장소장, 필자, 허만 학장, 김지희 시드니 한국문화원장과 직원. [사진 김동호]

무엇보다 건축미가 뛰어난 현대미술관·공연아트센터·도서관 등 문화시설과 그리피스대 등이 조화롭게 자리 잡은 브리즈번이라는 아름다운 도시 자체가 좋았다. 귀국 뒤 이효진씨의 중간 역할로 주한호주대사관이 서울에서 주최하는 모든 행사에 참석했을 뿐 아니라, 96년 부산국제영화제가 출범하면서 영화제 기간에 주한호주대사가 주최하는 ‘호주의 밤’ 행사도 매년 열었다. 그러면서 역대 호주대사와 문정관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2005년 가을 호주대사관 소개로 데스 파워를 만났다. 언론인이자 영화제작자였고 교향악단을 창단해 운영하던 호주의 저명인사였다. 파워는 호주에서 미국 아카데미영화상과 같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영화상을 창설해 아시아 각국을 순회하거나 호주 여러 도시에서 돌아가며 열겠다고 했다. 나는 아시아 각국의 영화 제작자협회가 주관해 각국을 순회하면서 개최하는 ‘아시아·태평양 영화제’가 있다고 소개하고, 호주의 한 도시에서만 여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파워는 2년 뒤인 2007년 아시아·태평양영화상(APSA)을 창설하고, 그해 11월 6일 호주 휴양지인 골드코스트에서 개최한 첫 행사에 나를 심사위원으로 초청했다. 인도의 사바나 아즈미(위원장) 배우, 이란의 자파르 파나히 감독, 중국의 톈좡좡(田壯壯) 감독, 미국의 닉 포웰 감독에 나까지 다섯 명이 심사했다. 톈과 파나히는 부산 국제영화제에 두 번 왔다. 파나히와는 2004년 러시아 소치에서 함께 심사한 적도 있다. 아즈미도 인도 시네판영화제에서 함께 심사에 참여해 포웰 감독 외에는 이미 친한 사이였다. 골드코스트에 머무는 동안 매일 새벽 바닷가 모래사장을 걷거나 뛸 수 있어 좋았다.

심사 결과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전도연)을 받았다. 주최 측과 협의해 이창동 감독과 전도연을 초청했으나 이 감독만 시상식에 참석했다. 나는 2010년 제4회 행사부터 홍보대사에 위촉되면서 매년 메인 카탈로그에 축사를 싣고 있다.

2011년 11월 22일 열린 제5회 APSA에는 홍보대사 겸 시상자로 참석했다. APSA를 브리즈번시가 주최하면서 시상식 장소도 골드코스트에서 이곳으로 바뀌었다. APSA는 2013년 제7회 시상식 때 파워가 물러나고 마이클 호킨스가 후임 회장에 취임했다.

2012년 단국대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을 설립해 대학원장을 맡았는데, 브리즈번의 그리피스영화대와 제휴해 두 대학 학생들이 함께 제작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에 따라 2014년 10월 18~22일의 닷새 동안 그리피스영화대에서 워크숍을 열었다. 박기용·김선아 교수와 여섯 명의 대학원생이 참가해 호주 학생들과 공동 작업을 했다. 특히 박기용 감독은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교환교수로 있었고, 호주에서 영화도 여러 편 제작해 그리피스영화대의 허만 반 아이큰 학장과 친했다.

반 아이큰 학장은 세계영화대학연맹(CILECT)의 핵심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 회장을 맡고 있다. 그의 추천으로 2015년 10월 15~18일 베이징영화대 개교 65주년을 맞아 현지에서 열린 ‘세계 저명 영화학교 교장포럼’에 준회원 자격으로 박기용 교수와 함께 참석해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을 소개했다. 세계적인 영화학교 교장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던 기회였다. 베이징영화대, 그리피스영화대와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의 학장·원장이 모여 학생들의 공동영화제작 협약을 맺은 것도 성과였다.

그해 제9회 APSA 심사위원장을 맡아 11월 14~28일 보름간 머물면서 파워와 좋은 시간을 보냈다. 이란의 모스토파 하루키 배우, 말레이시아의 우웨이 빈 하지사리 감독, 러시아의 알렉세이 포포그라프스키 영화학교 교수, 방글라데시의 네가 자바헤리안 감독 등 다섯 명이 심사했고 맥심 윌리엄슨과 샤논 킹이 담당자로 함께 참여했다.

심사 결과 작품상은 태국 아피찻풍 위라세타꾼 감독의 ‘찬란함의 무덤’이, 심사위원대상은 박정범 감독의 ‘산다’가 수상했다. 남우주연상은 정재영(홍상수 감독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이, 여우주연상은 일본의 키키 키린(樹木希林·가와세 나오미(河瀨直美) 감독의 ‘앙’)이 각각 받았다. ‘앙’은 한국에선 ‘앙: 단팥 인생 이야기’로 개봉했다. 내가 좋아했던 배우인 키키는 2018년 9월 15일 75세로 타계했다.

이듬해인 2016년 제10회 시상식에서 지난 9회까지의 심사위원장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하면서 다시 브리즈번을 찾았다. ‘미션’ ‘킬링 필드’ 제작자인 영국의 데이비드 퍼트남이 위원장을 맡고 인도의 시암 베네갈 감독, 호주의 제인 채프먼 배우, 홍콩의 시난선(施南生) 제작자와 나까지 모두 다섯 명이 심사했다. 그해에는 윤여정 배우가 이재용 감독의 ‘죽여주는 여자’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한국영화 네 편 상영 뒤 ‘마스터 클래스’

‘서편제’ ‘살인의 추억’ ‘공동경비구역 JSA’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왼쪽부터)이 브리즈번 ‘마스터 클래스’에서 상영됐다. [사진 각 배급사]

‘서편제’ ‘살인의 추억’ ‘공동경비구역 JSA’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왼쪽부터)이 브리즈번 ‘마스터 클래스’에서 상영됐다. [사진 각 배급사]

2019년에 개최된 제13회 APSA에 다시 초청받아 참석했다. 호킨스 회장이 특별히 한국영화 100주년 행사를 마련해 11월 19일 저녁 8시 ‘한국영화 100주년 축하의 밤’ 리셉션과 한국교민회가 주선한 공연이 열렸다. 11월 20일 오전 ‘문화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 주제의 강연과 패널 토의가 진행됐고, 오후엔 그리피스대로 장소를 옮겨 ‘한국영화의 황금기’ 주제 강연에 이어 뉴질랜드의 캐서린 피츠제럴드, 스크린 오스트레일리아의 마이클 맥도널드, 미국에서 온 영화 ‘벌새’의 제작자 조수아와 내가 패널리스트로 참가해 토론을 벌였다. 21일 저녁에 열린 제13회 APSA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작품상을 받았다.

이처럼 브리즈번을 자주 방문하면서 도시 자체에 매료됐다.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19로 APSA가 열리지 못했다. 브리즈번 시장이 바뀌면서 APSA에 대한 지원도 중단됐다. 다행히 골드코스트시가 예산지원을 약속하면서 APSA는 올해 그곳으로 복귀하게 된다.

지난 7월 15일 말레이시아에 도착해 16일 오전 현지 링컨대(LUC)에서 명예교수 위촉장을 받고 핸드 프린팅을 한 다음 오후엔 말레이시아영화제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다음날 오후 쿠알라룸푸르를 떠나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환승해 18일 아침 브리즈번에 도착했다. 그날 오전 10시 그리피스대 졸업식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다음날인 19일엔 내가 추천한 ‘서편제’(임권택), ‘살인의 추억’(봉준호), ‘공동경비구역 JSA’(박찬욱),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홍상수) 등 한국영화 네 편을 상영한 뒤 학생과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강의하고 질문을 받는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했다. 마스터 클래스에 특별히 참석한 배한진 브리즈번 한국출장소장, 김지희 시드니 한국문화원 원장과 직원들, 특히 이효진의 소개로 브리즈번에서 내내 동행해준 정재훈 퀸즐랜드대 교수에게 감사드린다.

귀국 전날인 20일 새 집행부인 트레이시 비에이라 회장, 루시 피셔 사무총장, 그리고 오랫동안 일한 재클린 맥랜든 전 사무총장과 점심을 함께하면서 APSA의 미래 계획을 들은 것도 수확이었다. 브리즈번은 찾으면 찾을수록 매력이 더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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