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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유아인 되고, 송중기 안 되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03호 30면

서정민 문화선임기자

서정민 문화선임기자

‘사과’가 또 논란이다. 이번엔 ‘심심한 사과’다. 지난 20일 한 콘텐트 전문 카페가 웹툰 작가 사인회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자 “예약 과정 중 불편 끼쳐 드린 점 다시 한번 심심한 사과 말씀드립니다”라는 공지를 트위터에 올렸다. 이후 일부 네티즌들이 댓글을 붙인 게 논란의 발단이다. “심심한 사과, 이것 때문에 더 화나는데. 꼭 ‘심심한’이라고 적어야 했나” “아 다르고 어 다른데 심심한 사과의 말씀이라니” “제대로 된 사과도 아니고 무슨 심심한 사과?” “하나도 안 심심하다” 등등의 댓글들이다.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는 뜻의 심심(甚深)하다를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는 뜻으로 이해한 것이다. 이를 두고 네티즌들의 본격적인 갑론을박이 시작됐다. “MZ세대의 문해력 저하가 심각하다”는 의견과 “요즘 젊은 세대라면 한자 표현을 모를 수도 있다”는 의견이 맞붙었다.

모르는 단어는 사전을 찾으면 되지만
잘못된 표기법의 광고문구는 어쩌나

지난해 11월 2일에는 ‘무운’ ‘무운뜻’을 묻는 네이버 검색양이 치솟았다. 전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게 “무운을 빈다”고 했고, 한 방송 기자가 이를 “운이 없기를 빈다”고 잘못 해석해 네티즌들 사이에서 비판이 쏟아지며 벌어진 소동이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운수’라는 뜻의 무운(武運)을 모르고, 한자 없을 무(無)와 운수 운(運)을 썼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부랴부랴 검색어 서비스를 찾은 것이다.

이 두 가지 소동을 놓고 개인적인 의견을 내놓으라면 방송인 오상진씨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내용에 동의한다. “고객을 상대하는 업체가 사과를 하면서 조롱할 이유는 없으니 ‘심심한’이라는 말이 거슬리는 순간 화를 누르고 사전을 한 번이라도 찾아봤다면 이런 갈등도 없었을 것.” 그는 또 ‘심심하다’를 잘못 해석한 것을 조롱하는 사람들에겐 “문제는 지나친 자기 확신과 뭘 좀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오만이 부딪쳤을 때 발생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2000년부터 ‘제7차 교육과정’ 중 한문이 필수 과목에서 빠지면서 이후 학창 시절을 보낸 요즘 20대는 한자를 잘 모른다. 중장년층 중에도 “수능에서 한문 과목은 네 문제밖에 안 되니 알아서 ‘찍고’, 한문 시간에 영어·수학 공부하라”고 교육받은 이들은 한문에 빈약하다. 그러니 아는 체 말고, 부끄러워 말고, 오씨의 말처럼 뜻을 모르거나 이해 안 되는 단어를 보면 사전을 찾아보는 습관을 갖자.

문제는 이런 경우다. ‘무신사랑해(배우 유아인이 모델이다)’ ‘에이블리라 블리다’ ‘한두드립’ ‘행복을 만두다’ ‘당신29하던삶’ ‘새삶스럽게(이케아)’ ‘발란당하다’ ‘몽(夢)마를때 몽베스트’ ‘세금 환급, 삼쩜삼으로 쩜 쉽게’ ‘서울대공원 문자 왔서울’ 등등. 브랜드 이름과 같은 발음을 사용하거나, 맞춤법·띄어쓰기·표기법을 무시한 말장난 대잔치다.

2012년 방송된 송중기 주연의 KBS2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는 작가와 제작팀이 정한 원제가 따로 있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차칸남자’다. 방송 전 한글파괴 논란으로 비판받으면서 제목이 바뀌었다. 당시 한글단체들은 “가장 모범을 보여야 할 공영방송이 한글맞춤법에도 맞지 않는 표현을 제목으로 내건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방송국에 시정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냈고, 여론 또한 KBS가 제목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강했다.

지금은 그때와 시대가 달라지긴 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조어가 생겨난다. 개중에는 비속어를 순화시킨 표현도 있고, 깜짝 놀랄 만큼 아이디어가 참신해서 널리 사용되는 표현도 있다. ‘차칸남자’를 예술의 창조적 측면에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던 것처럼, 괴상한 한글표기를 사용한 광고용 문구가 어느 정도 이해도 된다. 원래 목적대로 눈에는 확 뜨였으니까. 그런데 브랜드 이름을 모르고, 영어를 모르고, 한자를 모르면 어떻게 읽힐까. 무엇보다 이제 막 수많은 단어를 습득 중인 아이들에게 이 문구에 적힌 단어들은 어떻게 이해되고, 어떻게 기억될까.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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